미역국마저 깊고 웅장한, 가을 강릉엔 '미식 로드'가 열린다 [ESC]

이유진 2022. 10. 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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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미식 여행
장칼국수 등 노포들 향연..스웨덴 맛을 로컬화한 이색
10~11월 커피·누들·와인 축제 등 먹거리로 들썩
강릉 제주해인물회의 광어모듬물회.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강릉 음식? 의견이 갈린다. 토박이, 외지인 가리지 않고 “맛있는 것들이 많다”와 “맛있는 식당이 없다”는 이야기가 교차했다. 답은 현장에 있을 것이다. 10월 커피 축제와 11월 누들 축제, 같은 달 와인 축제까지 전국의 객들을 맞이하느라 바쁜 강릉으로 향했다.

해변의 ‘단백질 로드’

강릉은 북으로 양양, 남으로 동해시와 접한다. 주문진, 경포, 정동진·옥계권역으로 나뉜 동해안 쪽 해안길을 따라가면 각종 해산물과 두부 같은 ‘단백질 로드’를 만날 수 있다. 이 중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해변 인근에 신흥 맛집 강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커피 거리 안쪽 경강로의 ‘미트컬쳐’는 강원도 감자 퓌레와 잼, 오이를 함께 먹는 스웨덴식 미트볼이 현지의 맛 그대로라고 했다. 인근 새벽 어시장에서 셰프가 직접 입찰받아 온 생물 생선으로 만드는 ‘오늘의 생선’, 동해안 생골뱅이로 재해석한 프랑스식 달팽이 요리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릉 안목해변 ‘미트컬쳐’의 대표메뉴. 정통 스웨덴식 미트볼(오른쪽)과 생물 청어를 절여 만든 스웨덴식 에피타이저 ‘헤링’(왼쪽). 헤링은 병조림으로도 따로 판매한다.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강릉 태생의 오너셰프 최종원(39)씨는 미국 코네티컷, 서울, 두바이의 호텔 양식당을 거쳐 스톡홀름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과 미쉐린 레커멘드(추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10여년 만에 연어처럼 한국으로 돌아왔다. 강릉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 것이 2019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4년간 일했는데, 그 도시 느낌이 강릉과 비슷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꼭 고향인 강릉에 로컬 레스토랑을 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강릉의 해산물과 감자로 만든 음식들도 맛있지만 셰프가 아끼는 메뉴는 오랜 노하우를 총동원해 구워내는 스테이크. 초가을인 지금 막 살이 오르기 시작해 담백한 ‘방어 콜드 파스타’도 맛이 있다. 동해안의 생물 청어를 피클로 만든 스웨덴식 애피타이저 ‘헤링’은 비린내가 전혀 없다. 머스터드 씨앗과 서양 허브인 딜이 조화를 이루고 바삭거리는 빵 조각과 함께 입안에서 불꽃놀이 같은 맛의 향연을 펼친다. 인근 농가의 복숭아 낙과를 와인에 졸여 만든 디저트 복숭아는 입안을 씻어준다. 유럽식 메뉴를 로컬 푸드로 재해석한 셰프의 열정을 만나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워낙 ‘핫플’이라 자리 선점은 필수. 앱으로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033-921-5439)

강릉이 고향인 최종원 ‘미트컬쳐’ 오너셰프는 연어처럼 1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로컬 푸드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사천면 진리해변길의 ‘제주해인물회’는 제주 해녀 출신 1대 사장 구춘희(68)씨의 비법으로 유명한 물회집이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물질을 해온 실력과 노하우를 음식에 쏟아부었다. 활어를 잡아 바로 썰어주는 바닷가 다른 횟집들과 달리, 이 집은 숙성을 택했다. 매출의 절반이 넘는 메뉴는 멍게비빔밥. 주인공 멍게는 다시마와 천일염으로 2~3일 숙성해 감칠맛을 책임진다. 새콤달콤매콤한 소스는 구씨가 직접 담근 장과 동치미가 비법인데, 아들 홍성우(39) 대표가 비율을 보완하며 완성했다. 함께 나오는 소박한 미역국이야말로 주인공 뺨친다. 깊은 맛이 웅장하다. 건미역이 아닌 염장미역을 세척해 쓰는데, 진득진득한 깊은 맛이 지친 여행자의 심사를 어루만진다. 조연인 반찬들도 모두 깔끔하고 정갈하다.(033-644-0156)

멍게비빔밥.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이 집은 동해안산 양식 멍게를 주로 쓰는데 작년에는 동해안 멍게가 다 죽어버려 완도산을 쓰기도 했다. 지난달 말, 가게를 찾았을 땐 오징어 물회가 없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어획량이 줄고 낙찰가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오징어가 비싸다고 음식에 적게 넣거나 비싸게 값을 받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가게 앞 바닷가에 앉아 있던 강아무개(73) 선장은 말했다. “기름값이 비싸서 배 몰고 나가봤자 당최 손해래요. 노란 가자미, 광어, 돌참치, 도다리가 잡히는데 지금은 고기가 없고 해파리만 어마어마해요. 물 온도가 뜨세서.” 기후위기 탓에 동해안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먹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동해안에서 대중적으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장치(벌레문치)는 동해안 수심 300~500m에서 서식하는 심해성 어종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생선인데 뱃사람들은 이걸 말려서 무를 넣고 찜으로 해먹곤 했다. 주문진항 인근 ‘월성식당’의 장치찜은 혀가 얼얼한 매운맛이 아니라 맛있게 매운 찜이다. 큼직하게 들어간 강원도 감자가 별미다. 손님들이 감자값을 더 줄 테니 많이 달라고 할 정도로 포슬포슬 맛이 있다. 술술 넘어가는 생선살은 술을 부르고, 매콤한 양념은 밥을 부른다.(033-661-0997)

주문진 시장3길 ‘월성식당’의 장치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해물 이외에도 ‘강릉 단백질 로드’에 순두부가 빠질 수 없다. 경포호 부근 초당동 주민센터 앞뒤 골목 전체가 강릉 초당순두부 거리다. 초당동은 조선 중기 시인 허난설헌과 허균의 아버지, 초당 허엽(1517~1580)의 호를 땄다. 허엽이 처음 동해 물을 간수로 써서 순두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분명한 건 그 이전부터 강릉 사람들은 두부를 만들어왔고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는 것이다. 초당두부마을에서는 지금도 매일 새벽 콩을 갈고 가마솥에 삶는 전통방식으로 두부를 만든다. 요즘엔 순두부젤라또가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달지 않으며 담백한 맛이 쌀젤라또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gnfoodtour.com 참고)

시내 탄수화물 로드

강릉의 해변이 ‘단백질 로드’라면 남대천 남북쪽 시내에는 막국수, 장칼국수, 감자옹심이 노포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국적 브랜드로 성장한 ‘삼교리동치미막국수’는 1976년 주문진 삼교리에서 창업주 최종숙씨가 시작했다. 이곳의 동치미 국물은 1년 이상 저온저장한 무를 이용해 달고 시원한 맛이 특징.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이곳을 방문해 막국수를 두 그릇이나 먹은 뒤 “돈 많이 버시라”는 사인을 남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구정면 본점 말고도 남항진 분점 등이 있는데, 점포마다 휴일이 다르니 확인하는 것이 좋다.(본점 033-651-8830)

토속음식인 장칼국수와 감자옹심이는 강릉 토박이들이 자주 찾는 향토음식이다. 된장, 막장, 고추장을 풀어 만드는 진한 맛의 장칼국수는 40~50년 전통의 강호들이 건재하다. 강릉시 경강로의 ‘벌집’, 대학길의 ‘금학칼국수’는 모두 노포의 느낌이 물씬 나는 옛 건물이 인상적이다. 벌집엔 토핑으로 소고기 볶음(호주산)이 올라가고, 진한 맛의 김치를 푸짐하게 내준다. 금학칼국수에서는 콩나물밥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두 집에 관한 비교 논쟁이 벌어지곤 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릴 뿐, 비교는 불가하다.(벌집 033-648-0866, 금학칼국수 033-646-0175)

감자수제비 격인 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내린 뒤 녹말이 가라앉으면 반죽을 만들어 빚는다. 집집마다 옹심이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국물맛의 비법 등이 달라 특색을 가진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금성로 중앙시장은 점점 젊어지는 중. 이곳의 커피빵, 수제어묵고로케, 프랑스 고메버터를 사용해 만든 ‘강릉샌드’도 젊은이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강릉 탄수화물 로드’에서 뺄 수 없는 품목이 되어가고 있다.

구정면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경강로 ‘벌집’의 장칼국수. 다진 소고기 토핑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토성로 ‘강릉 감자 옹심’의 감자옹심이. 국물맛이 시원하다.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강원도의 힘, 강릉 효모의 힘

이젠 강릉 하면 커피 못지않게 유명한 음료가 수제맥주다. 2015년 문을 연 경강로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들은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장해 이젠 대형마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강릉원주대 앞 율곡초교길 음식거리 안쪽에 자리잡은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은 2017년 문을 열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손님이 끊겼다가 2021년 방탄소년단(BTS)의 지민, 슈가, 정국이 다녀간 뒤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들이 마셔보고 극찬한 흑맥주는 방탄소년단의 팬인 ‘아미’들의 사랑을 받아 출시와 동시에 품절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생산 중인 흑맥주는 다음달 중순에나 만나볼 수 있다.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의 대표 맥주들. 앞줄 왼쪽부터 막걸리 ‘블랑 드 강릉’, 다크 초콜릿과 커피, 카라멜, 건포도 등의 맛이 나는 ‘퓨리 임페리얼 스타우트’, 강릉 곶감에서 효모를 배양해 만든 ‘호랑이 곶감’, 한국 산초를 넣어 만든 부드러운 벨기에 바이젠 ‘홍장 벨지안 화이트’. 뒷줄은 생산량이 적어 한 사람당 2잔만 주문할 수 있는 사워 맥주 스타일의 ‘포레스트 바질 2019 빈티지’. 캔 디자인은 강릉의 상징인 호랑이를 모티프로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이정용 선임기자lee312@hani.co.kr

김상현(52) 대표는 20여년 전부터 전통주를 연구했고 10년 넘게 맥주를 생산해왔다. 혼자서 한달에 평균 1톤 정도만 맥주를 만드는데, 판매하기엔 지극히 적은 양이다.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은 맥주와 막걸리를 함께 생산하는 양조장으로서 유일하게 생산 허가를 받았다. 66㎡(20평) 남짓한 양조장에는 김 대표가 만든 13가지 맥주와 1종의 막걸리가 익어간다. 이 집 술의 특징은 수입 효모가 아니라 직접 생산한 자체 효모를 쓰는 데 있다. 강릉의 배, 곶감, 솔잎으로 김 대표가 직접 발효시켜 만든, 자식 같은 균들이다. “상업적으론 안정적인 발효가 가능한 수입 균을 쓰는 게 맞죠. 하지만 누군가 불편해도 그렇게 가야 하는 길도 있는 법이니까요. 처음엔 균들이 힘이 없어서 숙성되는 데 석달까지 걸리곤 했지만 지금은 균들도 힘이 생겨 한달 정도면 맛있는 맥주가 됩니다.” 부인의 고향인 강릉은 김 대표에게도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막걸리 ‘블랑 드 강릉’(하얀 강릉)은 강릉의 쌀, 물, 사과 추출 효모만으로 빚었는데 청주처럼 맑은 빛을 띠며 화이트 와인에 가까운 신맛을 낸다. 자연발효로 4년 동안 숙성시킨 맥주와 ‘영 비어’라 일컫는 무숙성 에일을 혼합한 뒤 바질을 넣어 만든 ‘포레스트 바질 2019 빈티지’는 그야말로 강한 산미를 가진 내추럴 와인에 가까운 맛이다. 생산량이 극히 적어 매장에서도 개인당 2잔까지만 주문할 수 있다. 그밖에도 라거, 벨기에 스타일의 바이젠 맥주, 강릉 곶감으로 효모를 배양해 만든 에일, 솔잎과 배에서 효모를 추출하고 배양해 만든 페일에일 등이 있다.

“술을 배우겠다고 오는 분들이 있지만 돈을 벌려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힘든 길이에요. 대량생산은 하지 않을 생각인데, 이 맥주를 마시러 강릉까지 찾아오시도록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안주로는 김 대표가 역시 심혈을 기울여 화덕에서 구워내는 각종 피자를 추천한다. 발효에 푹 빠진 그는 앞으로 한국식, 일본식, 독일식 술빵을 만들어 함께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033-655-1357)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 김상현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lee312@hani.co.kr
강릉초교길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에서 4년 동안 숙성시킨 맥주와 무숙성 에일을 혼합해 만든 ‘포레스트 바질 2019 빈티지’와 화덕에서 구운 마르게리타 피자. 이정용 선임기자lee312@hani.co.kr
가을 강릉 수놓는 먹거리 축제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강릉 커피축제는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강릉올림픽파크 강릉아레나에서 연다. 친환경 축제로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야 하며 텀블러가 없는 입장객에게는 생분해 종이컵을 제공하고 퇴장 때 수거할 계획이다. 7일 오후엔 개막 행사로 바리스타 총 200명(온라인 100명, 오프라인 100명)이 각자의 추출 방식으로 다양한 커피를 내리는 핸드드립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8일엔 라테아트 경연대회, 9일엔 핸드드립커피 경연대회를 열고 10일엔 사이펀 기구를 활용한 커피 추출을 선보이는 ‘강릉 사이포니스트 챔피언십’을 개최한다. 베이커리 라운지와 푸드트럭존도 준비해 커피와 디저트까지 맛볼 수 있다.
강릉 와인축제는 11월4~6일 강릉시 도심 관광지인 월화거리에서 열린다. 올해 처음 여는 이번 와인축제 기간 중에는 전통시장의 먹거리와 와인을 함께 선보이는 시음 홍보행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월화거리에서는 강릉 누들축제가 열린다. 강릉에서 유명한 장칼국수, 막국수, 짬뽕, 감자옹심이칼국수 등 강릉 토속 면요리를 알리는 자리다. 셰프들이 즉석에서 쿠킹쇼를 열고 관람객이 바로 시식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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