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 찬 이슬 맺히는 한로..산에는 억새·습지엔 갈대 축제 [다시 보는 24절기]

2022. 10. 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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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낮 일교차 10도 이상 차이 '쌀쌀'
여름새 제비 떠난 자리 겨울새 기러기 둥지
누렇게 고개 숙인 벼이삭·툇마루엔 늙은호박..
단풍객 홀린 또다른 비경 은빛 '억새의 바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꽃말은 '신의'·'믿음'
제주도 오름 주변에 펼쳐진 억새 풍경. [123rf]

[헤럴드경제=이운자 기자] 8일 한로(寒露)는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드는 24절기 중 17번째 절기로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를 말한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침·저녁 공기가 많이 쌀쌀해지면서 식물 잎사귀 끝에는 찬 이슬이 맺힌다.

하루가 다르게 스산해지는 아침 기온으로 전깃줄이나 처마 밑에서 관찰되던 제비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 빈자리에는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겨울새인 기러기와 두루미 떼가 하늘과 솔밭을 차지한다. 가장 귀찮은 존재는 텃새인 까치다. 수확을 앞둔 단감이나 대추, 사과 등을 호시탐탐 노리며 농부들과 숨바꼭질한다. 때론 총성까지 더해 유혈(?) 사태를 부르기도 한다.

주변이 어수선해도 밤사이 찬 이슬을 뒤집어쓴 벼 이삭은 매일 더 단단해지며 고개를 떨군다. 겨울 김장을 앞둔 배추는 성글던 속을 빽빽이 채워 나가고 쑥갓과 쪽파, 대파, 무 등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간다. 텃밭 한구석이나 창고 지붕, 담장 등 남는 자투리 공간에는 하얀 박과 샛노란 늙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그림에서나 보는 시골 정취를 뿜어낸다. 턱없이 낮은 쌀 수매가로 숯검정이 된 농부의 마음과 달리 풍년은 올 한 해 동안 쏟아낸 땀방울의 대가로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벌판은 풍요로우면서도 헛헛하다.

충청남도 서산의 한 농가에서 재배 중인 김장배추.

드문드문 녹색의 여운이 남아있는 논둑 주변으로 가을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한로가 오기도 전에 코스모스는 이미 꽃잎을 떨군 지 오래고 내년을 위해 씨앗을 묻는다. 길가와 논둑 한 모퉁이를 돌 때면 예고 없이 마주하게 되는 보라색 쑥부쟁이꽃과 억새 역시 하늘하늘 연신 몸통을 흔들어 대며 반긴다.

그러다 문득 방금 본 풀이 억새인지 갈대인지, 이 둘은 왜 매번 헷갈리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억새와 갈대는 볏과 여러해살이풀로 겉모습만 봐서는 쉽게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촌 격인 부들은 그나마 생김이 달라 구분하기 쉽다.

생김새가 비슷한 갈대(왼쪽)와 억새. 물억새를 제외하고 산에서 자라는 건 억새다. 갈대는 습지나 냇가 등 물이 있는 곳에서만 자란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꽃자루가 다르다. [123rf]

〉〉〉산에는 억새…방심 금물! “물억새도 있어요”

억새는 산과 들에서 무리 지어 자라며 대부분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 억새의 이름은 잎이 가늘고 질겨 지붕 이엉으로 묶어 쓰여 ‘억센 새풀’로 불린 데서 유래한다. 억새의 꽃자루는 한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번지르르한 결을 지닌다. 반면, 갈색인 갈대는 줄기를 타고 엇갈리게 꽃자루가 만들어지며 헝클어진 모양새다. 또 잎의 가장자리가 칼처럼 날카로워 손을 베이기 쉽상이다. 산 정상이나 오름 등 물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억새는 보통 성인의 허리춤보다 약간 높게 자라며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이보다 크다. 물론 이것만으로 억새와 갈대를 100% 단정해 구분하긴 어렵다.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기 때문이다.

〉〉〉물가엔 갈대…변덕 심한 여성 비유, 꽃말은 ‘신의’·‘믿음’

반수생 식물인 갈대는 물이 있는 습지나 갯가, 호숫가 주변 모래땅에서 자란다. 대나무와 생김이 비슷해서, 냇가에 울타리처럼 자라는 모양을 담은 그리스어인‘Phragma’에서 이름이 유래됐다는 갈대. 자갈색과 담갈색을 띠는 갈대는 높이 1~3m로 크게 자라며 9월 개화한다. 가는 줄기에 비해 잎이 무성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속성을 지녔다. 흔히 변덕이 심한 여자의 마음을 ‘갈대’로 비유하는 이유다. 하지만 갈대의 꽃말이 ‘신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는 아무리 모질게 바람이 들이쳐도 쉽게 꺾이지 않는 것과 관련이 깊다. 또 억새가 눈 호강에 그친다면 갈대는 어린순은 식용으로, 큰 대의 이삭은 빗자루로, 대는 발의 소재로 잎에서 뿌리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친환경 소재다.

〉〉〉습지 한 가운데 웬 핫도그?…부들부들 ‘부들’ 꽃말은 거만

너무 부드러워 이름마저도 부들이라 불린다.재미있는 사실은 부들의 꽃말 중 하나는 '거만'이다. [123rf]

잎이 부드러워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진 부들은 물가나 연못 가장자리와 습지에서 볼 수 있다. 흔히 연못에서 적갈색의 긴 타원형 핫도그처럼 생긴 열매를 지닌 식물이 바로 부들이다. 꽃꽂이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부들은 가을이나 겨울쯤 열매가 솜털이 터지듯 부서지면서 안에 있던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가을날 함박눈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부들 잎은 방석으로 만들고 화분은 지혈, 이뇨제 등으로 사용한다. 부드러운 촉감 때문에 이름 붙여진 부들의 꽃말은 ‘순정’과 ‘거만’이다.

단풍의 계절 10월, 활엽수는 붉은 치마를 두르고 민둥산과 오름엔 은빛 억새가 출렁이며 감성을 흔든다. 어떤이는 억새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붉은 낙조를 마주한 채 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갈대든 억새든 무슨 상관인가. 꼭 억새축제장을 찾지 않아도, 제주 산굼부리나 오름에 오르지 않더라도 발길 닿을수 있는 지근거리로 떠나보자. 의외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눈이 닿는 우리 주변에 자신을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

yi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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