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버지가 사줬던 로봇, 여전히 인생 No.1 장난감"

전효진 기자 2022. 10. 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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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마니아층에 국한됐던 키덜트(kidult·장난감 선호 등 어린이 취향 가진 성인) 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골치 아픈 현실을 피해 동심(童心)의 공간에서 안식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성인이 늘면서다. 새롭고 독특한 걸 추구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키덜트 시장 유입도 한몫했다. 이른바 ‘MZ 키덜트’다.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완구 등 전통적으로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산업뿐 아니라 가전, 명품, 식품 등 성인들이 소비하는 제품을 만드는 산업에도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떠오른 키덜트를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이상훈 개그맨. 2011년 KBS 공채 26기 개그맨, 키덜트 유튜브 채널‘이상훈TV’ 운영 /채승우 객원기자

9월 16일 경기도 양주 두리랜드 인근 ‘후니버셜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레고로 만든 광화문 모형뿐 아니라 성인 키만 한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피규어 등 4500여 개의 장난감이 백화점 진열 상품대를 보듯 깔끔하게 전시돼 있었다. 키덜트(kidult·장난감 선호 등 어린이 취향 가진 성인)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이곳은 평일인데도 천안에서 미국 텍사스까지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키덜트 유튜브 채널 ‘이상훈TV’를 운영하는 개그맨 이상훈씨가 20세 때부터 약 20여 년 동안 3억원 이상을 들여 모은 장난감을 전시한 피규어 박물관이다.

이씨는 2018년부터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 나온 캐릭터나 피규어, 장난감 등을 소개하는 키덜트 전문 유튜브 채널 ‘이상훈TV’를 운영하고 있다. 9월 20일 기준 구독자는 43만3000명으로, 국내 키덜트 시장에서 손꼽히는 ‘덕후’로 통한다. 그는 “요즘에는 키덜트에 대한 인식 자체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오히려 마니아 혹은 전문가로 인식되기도 한다”면서 “자신의 소장품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고 공유하며 소통을 하는 등 양지로 나와 건전한 취미 생활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앞으로도 장려돼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성인이 된 후 장난감을 모으게 된 계기가 있나.

”어렸을 때 기억 중 내가 소장하고 있던 레고를 어머니가 갑작스레 다 버리셨었던 적이 있다. 이별할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 가지고 놀지는 않더라도 강제로 떼어놓는 느낌이 너무 아쉬웠다. 그런 기억을 묻어두고 살다가 20세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사고 모으기 시작했다. 또 한번은 부모님이 변신 로봇을 보관해뒀다가 군대 제대 후 나에게 주셨는데, 그때 전율이 온몸에 끼쳤다.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 모으는 장난감들의 가격대는 어떻게 되는가.

”30만~40만원대를 많이 모으는데, 430만원짜리 옵티머스 프라임이 가격으로 치면 제일 비싸다. 하지만 변신 로봇 중에 실제로 초등학교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제일 아끼고 좋아한다. 만화 영화 ‘전설 용사 다간’에 나온 ‘스카이 세이버’ 변신 로봇인데, 소장품 중 가장 허름하지만 많은 돈을 줘도 못 바꾼다.”

그 장난감에 얽힌 추억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초등학교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이다.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 후 3년간 병원 생활을 하셨는데, 그때 병원 앞 문방구에서 사주신 장난감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철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애증의 로봇’이기도 하다. 누워 계시던 아버지도 생각이 난다. 애틋하고 죄송하고 그렇다.

추억이 깃든 장난감은 정말 소중하다. 430만원짜리 옵티머스 프라임 장난감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스카이 세이버’를 선택하겠다. 내 손때가 묻은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이건 아마 다른 키덜트들도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피규어 박물관 ‘후니버셜 스튜디오’. 이상훈씨가 모은 4500여 개의 피규어 등 장난감이 전시돼 있다. / 채승우 객원기자

키덜트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유튜브 등) 키덜트가 양지로 나온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나는 원래 피규어 등 장난감을 모으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이런 취미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개그맨 유상무씨 덕분에 용기를 냈다. 어쩌면 아내에게 내 취미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서 한 것도 있다. 쓸데없는 일이 아닌, 진심이 담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초반부터 반응이 좋을지는 생각을 못 했다. 당시 마블 영화가 인기가 많아 주목받게 된 것 같다.”

장난감 리셀 시장의 가격은 널을 뛰기도 하는데.

”그래서 키덜트족으로 입문할 때는 정보 검색만이 답이다. 커뮤니티나 중고 장터도 시세를 계속 검색해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도록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내 생활을 다 하고, 남는 돈을 취미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과거에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150만원을 번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나름의 룰을 정해 30만원어치만 피규어를 샀다. 장난감을 모으는 등 취미 생활에 인생의 모든 리스크를 걸지는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어른이 왜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놀이 문화로 자리잡을 것 같다. 1990년대 만화영화였던 포켓몬, 디지몬 이런 건 요즘 아이들도 알고 있지 않나. 아빠랑 아들이 같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생기고 추억도 공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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