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연쇄 살인마의 어떤 연애

서울문화사 2022. 10.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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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고 미숙한 화초와의 연애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나는 잘 알려진 화초 연쇄 살인마다. 시작은 거대한 알로카시아였다. 오피스텔을 떠돌다 처음으로 볕이 잘 드는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드디어 집에서 화초를 키울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였다. 고양이를 오래 키웠으니 그깟 화초 따위는 당연히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피스텔에서 화초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친구들에게 선물로 받은 작은 다육식물조차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오피스텔의 문제점은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다육식물의 사체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으며 다짐했다.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절대 내 집에 식물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 날은 왔다. 앞뒤 창을 열면 한강에서 마포대로로 빠져나가는 바람 때문에 유령이 파티라도 여는 듯 집 안의 종잇장이 마구 날아다니는 아파트였다. 남향이었다. 나는 전세 계약을 하자마자 화초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큰 화분을 하나 들이려 하는 데 뭐가 좋을까?” 친구는 말했다. “역시 알로카시아지. 그걸 죽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 나는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거대한 화초도 배달이 가능한 가게들이 막 생기던 시절이었다. 인터넷 화초 상점에는 거의 내 키에 가까운 알로카시아들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라도 하듯이 아름다운 곡선을 뽐내고 있었다.

맙소사, 미스코리아라니. 화초를 보면서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아름다운 화초를 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곤 한다. 남성이라는 동물들의 육체에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없다. 매일매일 ‘쇠질’(무산소운동)을 하고 프로틴을 삼키며 가슴과 엉덩이 근육을 키워도 남성의 육체는 결국 재미없는 직선에 가깝다. 남성의 몸을 식물에 비유하자면 그냥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정도나 떠오를 따름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몸에도 곡선이 있긴 하다. 뱃살이다. 식물로 따지자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자화자찬에 가깝다.

내가 화초를 키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곡선’이었다. 나는 매우 직선적인 사람이다. 이를테면 나는 유선형의 자동차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폭스바겐 골프의 직선적인 옛 모델을 살까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 하나는 몇 년 전 ‘각그랜저’를 샀다. 기름도 많이 먹고 수리비도 많이 드는 옛날 자동차를 오로지 디자인 때문에 산다는 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바보 같은 짓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1970년대 이후로 자동차 디자인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가 1970년대 생산했던 ‘포니’를 그 시절 디자인 그대로 다시 생산한다면 나는 두말없이 카드를 내밀 것이다.

당연히 내 집도 직선으로 넘친다. 동그란 갓을 지닌 조명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깔끔한 직선이다. 나는 그게 조금 지겨웠다. 인테리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 집을 채웠는데도 항상 부족한 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는 집을 꾸밀 때 종종 큰 그림을 잊어버린다. 각각의 아이템을 선정하고 구매하면서도 그 아이템들이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못한다. 내 집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아이템들로 채웠는데 뭔가가 빠져 있었다. 곡선이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날카롭고 딱딱했다. 자연스러운 곡선을 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화초를 들이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알로카시아는 실로 아름다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로카시아 오도라. 하트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잎이 부드러운 곡선의 줄기로부터 뻗어 나오는 알로카시아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할 것 같은 고대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나는 알로카시아에 물을 주며 기쁨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마지막 크로스워드퍼즐을 채운 듯한 기쁨이었다. 나는 알로카시아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자랑을 했다(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이었다). 마침 화초 인테리어가 트렌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나는 마침내 커다란 식물을 키우는 ‘인테리어 힙스터’의 일원으로서 훌륭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몇 달 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알로카시아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알로카시아는 죽었다. 완전히 죽어버렸다. 문제는 나였다. 겨울이 오자 알로카시아가 시들시들해졌다. 나는 그게 물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열흘에 한 번 적당히 물을 줘야 한다는 친구의 조언을 잘못 이해한 탓도 있었다. ‘적당히’라는 단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다. 당신에게 ‘적당한 운동량’과 PT 선생에게 ‘적당한 운동량’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PT 선생에게 적당한 운동량이라는 건 당신에게는 1시간 뒤 샤워실에서 후들거리며 주저앉아 “내가 왜 이런 고문을 돈을 주고 당하는 것인가”라며 꺼이꺼이 우는 정도의 운동량을 의미한다. 맞다. 이건 처음으로 하체 운동을 한 날 내가 겪었던 일이다. 당신도 아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의 적당히와 나의 적당히도 달랐다. 관엽식물은 과습에 취약하다. 나는 그걸 몰랐다. 알로카시아가 비실비실해지는 듯한 느낌이 오면 아낌없이 물을 먹였다. 그래도 비실비실해지면 더 물을 먹였다. 건조한 겨울이니 그만큼 물이 더 필요할 거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어느 정도 멀쩡하던 알로카시아는 속으로 곪고 있었다. 어느 날 알로카시아의 굵은 줄기 부분을 손으로 찔렀더니 스펀지처럼 꺼져버렸다. 속에서 시커먼 액이 흘러나왔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조의를 표했다. “이미 죽었네. 속이 다 썩은 거지. 물을 대체 얼마나 준 거야?”. 나의 지나친 사랑이 알로카시아를 죽였다. 나의 지나친 관심이 알로카시아를 죽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연애를 할 때도 사랑을 좀처럼 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상대방이 좋든 싫든 마구 퍼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떠났던 지난 연인들을 떠올렸다. 내 사랑에 질식해서 죽기 전에 떠난 그들은 정말이지 현명했다. 그들의 속도 알로카시아처럼 시커멓게 곪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한다. 같은 실수를 영원히 반복하며 살아간다. 내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에도 나는 몇몇 사람을 내 비뚤어진 사랑으로 질식하게 만든 다음 떠나보냈다. 나는 알로카시아의 죽음으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나는 화초를 키우는 일에서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집에는 화초를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모든 화초는 내 손에 죽을 운명이었다. 화초 연쇄 살인마의 역사는 끝내야만 했다.

결국 끝내지 못했다. 지금 내 집 창가에는 거대한 떡갈고무나무가 있다. 해외 인테리어 잡지들이 원흉이었다. 몇 년 전부터 온갖 힙한 인테리어 잡지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떡갈고무나무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오래전부터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화초의 형태 그 자체였다. 즉각 검색에 들어갔다. 키우기 쉽다고 했다.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했다. 알로카시아도 키우기 쉽고 생명력이 끈질기기로 유명한 화초였다. 나는 그걸 죽였다. 나는 같이 사는 고양이도 8kg짜리 대형 포유류로 키운 사람이다. 손주들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던 외할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나는 결국 넘치는 사랑으로 떡갈고무나무를 죽일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양재꽃시장으로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떡갈고무나무를 샀다. 그저 내 집의 인테리어에 가장 어울릴 것 같다는 욕망 하나 때문에, 나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의 떡갈고무나무는 집에 들인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굳건하게 살아 있다. 나는 어쩌면 과거의 실패로부터 뭔가를 배운 걸지도 모른다. 나는 화분의 흙이 모하비사막처럼 말라붙어 건조한 비명을 내지르기 전까지는 물을 주지 말라던 조언을 마침내 받아들이고 실행했다. 사랑이라는 건 무작정 퍼주기만 해서는 곤란한 감정이라는 것을 40대 중반의 나이에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시 연애를 시작해볼까 생각 중이다. 창가의 떡갈고무나무가 살아 있는 한, 나의 여전히 서툴고 미숙한 연애에도 희망은 있을 것이다.

글쓴이 김도훈

오랫동안〈씨네21〉에서 영화기자로 일했고,〈GEEK〉의 패션 디렉터와〈허핑턴포스트〉편집장을 거쳐《이제 우리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물건들이 공존하는 그의 아파트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김도훈 나라다.

에디터 : 심효진  |   글 :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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