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부르는 '막장 예능', 욕하면서 보는 이유는?

이혜운 기자 2022. 10.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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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분노유발자 등장하는
매운맛 예능 왜 많이 볼까

#1. “나 임신 6개월 때 술 마시고 와서 때리고, 나는 그게 잊히지가 않아.”

아내가 눈물을 쏟아낸다.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두 딸의 아빠가 된 남편. 우울증으로 의욕 없는 아내 때문에 육아, 가사를 모두 짊어지게 된 그는 더 이상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 싶지 않다. 이 프로그램 제목은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리얼 토크멘터리’로 불리는 이 방송은 지난 26일 방영 후 순간시청률이 5.6%까지 치솟으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결혼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사례” 등의 댓글이 달렸다.

13세 어린 아내에게 "국은 있어야지"라며 꼰대 짓을 하는 남편. 최근 리얼리티 예능에는 분노를 유발하는 캐릭터가 한 명씩 등장한다. /MBN

#2. “야, 얼음물. 근데 국은 없냐? 더워 죽겠는데 국은 있어야지.”

열아홉 살에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13세 연상 남자와 결혼한 여자. 혼전 임신 후 집안의 반대에 가출로 대응했고, 남편은 미성년자 납치범으로 오해까지 받아가며 결혼했지만, 일상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와 혼자 에어컨 나오는 자동차로 도망가 휴식을 즐기는 남편 모습에 시청자들은 분노한다. 십대들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MBN 예능 ‘고딩엄빠 2′의 한 장면. 이 영상엔 “도망쳐라. 한 살이라도 젊을 때”라는 댓글이 달렸다.

TV만 틀면 누군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한다. 리얼리티 예능이다. 그러나 최근 트렌드가 바뀌었다. 출연자는 여전히 일반인이되, ‘빌런(악당)’ 캐릭터다.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매운맛 예능’이 늘고 있다.

리얼리티 예능이 유행하던 초기만 해도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달달한’ 예능이 많았다. 친구들을 배려하며 아빠와 여행을 다니는 예닐곱 살 남자 아이들(MBC ‘아빠 어디가’), 아내를 웃게 하려고 애교를 부리는 남편(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등. 이런 예능에 시청자들은 “저런 아이 낳고 싶다” “난 저런 남자랑 결혼할 거야”라며 호응했다.

지금은 반대다. 너무 자극적인 설정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대본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고딩엄빠’ 출연자 중 하리빈은 “방송 내용이 과도하게 조작됐다”며 항의했고, 이에 제작진은 “상호 합의하에 일정 부분 제작진 개입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출연자들의 행동에 대해 별도의 요구를 하거나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왜 막장 예능들이 인기일까.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누군가를 험담하는 순간 인간은 정신적으로 쾌감을 느끼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올라가는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이 주는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이다. SBS 플러스의 연예 예능 ‘나는 솔로’ 역시 마찬가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마치 싸움 구경을 하는 듯하다”고 했다.

둘째는 ‘시대 현실 반영’이다. 연애, 결혼, 육아에서 갈등 장면만 보여줘 예능이 비혼을 조장하는 것 같지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로그램이 갈등을 과도하게 유발한다기보다, 현실에서 실제로 갈등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셋째로 높다. 이혼율 증가와 출산율 감소 등의 사회적 현상이 ‘결혼 공포’라는 형태로 예능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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