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고 풀고, 또 묶고 풀고..뒤죽박죽 주택시장
2002년 '투기과열지구'로 본격 규제 시작
2003년엔 세금규제 목적 '투기지역' 신설
침체기 2010년대 초 규제지역 모두 해제
2016년 박근혜 정부 '조정대상지역' 도입
문재인 정부는 '3종 규제지역' 집중 지정
尹 정부, 최근 침체기 들어서자 다시 풀어
"중첩된 규제 대신 '1종·2종'으로 정리를"
집값이 많이 오르거나 새 아파트 청약시장이 과열되면 정부는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이란 명칭으로 지역을 정해 규제를 한다. 이른바 ‘규제지역 3종 세트’다. 이런 지역에선 집을 살 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렵다. 이런 곳에 집을 가지고 있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새 아파트 청약 조건도 까다롭다. 재건축·재개발을 할 때도 규제가 많아 사업 진행이 어렵다. 그래서 규제지역으로 특정지역을 묶거나 풀 때 해당지역 주택시장은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정부가 최근 이런 규제지역을 대폭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26일 0시부터 안성·평택·양주·파주·동두천 등 경기도 외곽지역과 세종을 제외한 지방 전지역을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조정대상지역보다 강도 높게 규제하는 ‘투기과열지구’에선 인천과 세종시를 제외했다.
시장에선 침체된 시장이 다시 살아날지 관심이 크다. 규제지역에서 해제되면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쉬워지며, 세금 및 각종 거래 규제가 대폭 완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규제완화 대상 지역 중엔 반도체산업의 중심지역인 평택, GTX 개통 등 개발 호재가 많은 파주와 양주, 부산 해운대, 대전 서구 등 지방 인기지역 등 투자 수요를 자극할만한 지역도 포함돼 있다.
▶규제지역 풀어도 하락하는 집값=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쪽이다. 그동안 대부분 지역의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고, 급격한 금리인상이 예고된 상황이기 때문에 주택 수요자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살 여건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실제 윤석열 정부 들어 규제지역에서 이미 풀린 지역 상황이 그랬다. 정부는 지난 6월30일 대구 수성구, 대전 동구·중구·서구·유성구, 경남 창원 의창구 등 6개 시군구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고, 대구 동구·서구·남구·북구·중구·달서구·달성군, 경북 경산시, 전남 여수시·순천시·광양시 등 11개 시군구를 ‘조정대상지역’에서 제외했다. 50여일이 지난 현재 이들 지역의 아파트값은 모두 보합세거나 하락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예컨대 6월 0.52% 하락했던 대구시 아파트값은 7월 -0.48%, 8월 -0.54% 변동률을 기록했다. 9월 주간 기준으로 첫째 주(-0.14%), 셋째 주(-0.35%) 낙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달서구의 경우는 셋째 주만 하락 폭이 -0.74%나 된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지역을 풀어 집을 사라고 유도해도 경기 여건, 지역 주택 수급상황 등에 따라 매수세가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지금 주택시장 상황이 정말로 대세 하락기여서 정부가 어떤 지역이든 다 풀어도 침체가 이어질 지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나뉜다. 정부조차도 서울 등 수도권 인기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푸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그러니 이번 규제지역 해소 결과에 대해 시장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과에 따라 정부는 다시 규제지역 지정을 늘릴 수도 있고, 안정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이젠 규제지역 해제 대상을 서울 및 수도권으로 본격적으로 옮길 수 있다.
따져보면 역사적으로 규제지역 지정과 해제는 시장 변화에 큰 변수는 아니었다. 규제지역으로 묶었는데 집값이 더 오르는 경우가 많았고, 규제지역을 풀었는데도 변함없이 하락하는 경우가 더 흔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규제지역을 가장 활발하게 지정한 정부가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던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였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집값이 급등하니 규제지역 지정을 많이 한 건 어쩌면 당연한데, 시장에선 정부 정책의 실패로 여긴다. 규제지역을 지정하면 해당지역이 일시적으로 거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곧 다시 올랐고, 규제를 피해 주변지역이 들썩였다. ‘풍선효과’란 말이 유행했던 것도 두 정부 똑같았다.
▶집값과 따로 노는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3종 규제지역 가운데 제도가 가장 먼저 시작된 건 2002년 3월 도입된 투기과열지구다. IMF외환위기를 지나 2001년 이후 분양시장이 과열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해 분양권 전매 요건 강화 등 규제를 가한 게 출발이다.
투기과열지구는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택가격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거나, 주택 투기 우려가 있으면 국토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지정할 수 있었다. 집을 살 때 대출 조건인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낮춰 대출을 어렵게 했고, 재건축 재개발사업 조합원 지위 양도를 제한하는 등 규제 내용을 계속 강화했다.
‘투기지역’은 2003년 기획재정부에 의해 도입됐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가 아닌 세제를 책임지는 기재부가 지정한 게 특징이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집을 팔 때 양도소득세가 공시지가 기준이 아닌 실거래가 기준으로 부과된다. 주택시장이 과열될 때 양도세를 강화하면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양도세를 규제하면 시세차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 투기수요가 적극적으로 덤비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런데 투기지역은 모두 투기과열지구에서 나왔다. 투기과열지구 중에 집값 상승 추세가 더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을 기재부가 투기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으로 동시에 지정됐던 대표적인 곳이 노무현 정부 당시 이른바 ‘버블세븐’으로 불렸던 곳이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목동과, 분당, 평촌, 용인(수지구)이었다. 당시 이들 지역은 규제지역 폭탄을 맞았다고 평가됐지만 집값은 오히려 더 크게 올랐다. 버블세븐은 당시 인기지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당시 서울 전역 등 수도권 대부분이 현재 조정대상지역처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까지 상승세는 계속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시장 분위기는 주춤했다. 금리가 급등하고 매수 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침체된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꾸준히 해제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래는 급감하고 단지별로 급매물이 늘어났다. 당시 정부는 2011년 12월과 2012년 5월 서울 강남권에 마지막 남았던 투기과열지구과 투기지역을 각각 모두 해제했다. 규제지역은 비로소 모두 사라졌다.
그럼에도 집값은 2013년 말까지 반등하지 않았다. 당시엔 광교, 파주 등 2기신도시 입주도 본격화했다. 규제지역을 해제해도 쏟아진 입주물량과 집값 하락 전망에 주택매수심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다시 열린 규제지역 전성시대=규제지역이 사라진 주택시장에 다시 새로운 규제지역이 나타난 건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11월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집값과 과열된 청약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1·3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그 대책의 핵심이 ‘청약 조정대상지역’을 신설해 청약시장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해당지역 과열 정도에 따라 1년 6개월~소유권 이전 등기 시까지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서울 전역과 경기 및 부산 일부 지역, 세종시 등이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다.
이후 정부는 청약 조정대상지역의 규제 내용을 계속 강화했다. 새로운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조정대상지역의 세부 내용엔 청약만이 아니라 주택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세부 규제가 더해졌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한발 더 나간다. 집값 상승세가 본격화하자 8·2대책을 발표하면서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을 부활시켰다. 조정대상지역이라는 규제지역이 있지만 지역별로 규제 강도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과적으로 조정대상지역 중에서 집값 상승 우려가 더 심각한 곳은 투기과열지구로, 투기과열지구 중에서도 더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는 지역은 투기지역으로 단계를 나누는 식이었다.
당시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전역과 경기도 과천시, 세종시 등에 지정됐다. 투기지역은 그 중에서도 집값 상승폭이 더 큰 서울시 강남·서초·송파·강동·용산·성동·노원·마포·양천·영등포·강서구와 세종시에 지정했다. 이른바 ‘3종 규제지역’이 완성된 것이다.
이들 3종 규제지역은 문재인 정부 내내 30번 가까운 부동산 규제 정책을 내놓으면서 더 강화되고 전국토로 확대된다. 정부는 2021년 8월 경기도 동두천시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이로써 조정대상지역은 112곳까지 늘어났고, 투기과열지구는 49개, 투기지역은 16개까지 증가했다. 전국 236개 시군구 가운데 절반 가까운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는 기록을 세운다.
정부가 이렇게 전 국토를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다보니 시장에선 “정부가 집값이 오를 지역을 찍어 준다”고 조롱할 정도였다. 규제지역으로 지정한 지역은 계속 주택수요가 몰리고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오르는 지역이 규제가 가장 강한 투기지역이고, 그 다음 상승폭이 큰 지역이 그 다음으로 규제가 강한 투기과열지구며, 적당하게 인기가 있는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이라는 이야기도 중개업자들 사이에 회자됐다. 웬만한 지역이 다 규제지역이니 규제지역 효과가 사실상 없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개선 필요한 규제지역=주택시장은 현재 변곡점을 맞고 있다. 급등하던 집값이 올 들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거래량이 급감하고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면서 하락하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집값 상승기에 지정했던 규제지역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 지정하는 규제지역을 집값 하락기엔 풀어달라는 것이다.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를 약속했던 윤석열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귀기울 수밖에 없다. 사실 정부는 지난 6월30일 첫 번째 규제지역을 완화할 때만 해도 집값이 다시 뛸까 노심초사했다. 당시 회의 내용엔 “국지적으로 집값 과열의 여파가 잔존 한다. 주거선호지역 및 일부 비규제지역 등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지속되는 등 시장 상황이 매우 예민하다”고 설명돼 있다. 그래서 당시 대구, 대전, 경북, 전남 등 주택수요가 많지 않은 지방 일부지역만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구에서 해제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조금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정부는 이번에 세종을 제외한 지방 모든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조정대상지역을 60곳으로 줄였고, 투기과열지구는 39곳으로 축소했다. 투기지역도 15곳으로 감소시켰다.
정부가 규제지역 완화를 계속 추진할까?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중엔 아직 시장 상황이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 이르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특히 서울은 당분간 공급이 부족해 수급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언제든 반등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꽤 많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규제지역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역, 투기지구 등 제각각 다른 내용의 규제지역을 지정하다보니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이 크고, 시장 안정화 효과도 떨어진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정규제지역이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역, 투기지구 뿐 아니라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고분양가관리지역 등 너무 많고 중복·파면화돼 혼란스럽다”며 “규제 강도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역, 투기지구 순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조정대상지역이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 참여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만큼 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도 “현재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1종 규제지역’으로 묶고, 투기지역을 ‘2종 규제지역’ 나누든지 좀 더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막연하게 ‘주택시장 안정화’라는 목표로 무차별적으로 지정하거나 해제하는 건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지역은 공급적 측면에서 신축 주택에 대한 규제나 청약제도 운영에 대한 것으로 규제 내용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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