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판때기가 5억?".. 그림 하나에 40년 우정이 '와르르'

박돈규 기자 2022. 9.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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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아트(ART)
세 친구, 이순재·백일섭·노주현
방백 활용한 코미디에 웃음 두배
연극 '아트'의 배우 백일섭, 이순재, 노주현(왼쪽부터)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나인스토리

“이거 비싸냐?”(마크)

“5억!”(세르주)

연극 ‘아트’는 피부과 의사 세르주(노주현)가 경매로 샀다는 그림 한 점을 보여주며 무대를 연다. 유명 화가가 그린 ‘걸작’이라는데 배경 전체가 흰색이다. 또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흰색 대각선이 보인다나 어쩐다나. 오랜 친구 마크(이순재)가 “이 하얀 판때기를 설마 5억원이나 주고 산 건 아니지?”라며 못마땅한 감정을 토해내자, 상처 받은 세르주도 화를 낸다. 물렁해서 자기주장이라곤 없는 친구 이반(백일섭)은 어느 쪽도 편들 수 없어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그림”이라고 했다가 점점 진창에 빠진다.

‘아트’는 40년 우정이 그림 한 점 때문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야기다. 5억원짜리 그림은 이 우스꽝스러운 논쟁의 방아쇠일 뿐이다. 세 남자의 허영심과 우월감, 질투와 애증이 연쇄 폭발한다. 장르는 블랙 코미디. 문제의 그림만큼이나 단순한 응접실 무대에서 세 인물의 겉과 속, 위선과 위악, 심리 변화를 흥미롭게 밀어붙인다.

연극 ‘아트’ 공연이 끝나고 배우 백일섭, 이순재, 노주현(왼쪽부터)이 커튼콜을 하는 모습. 그들 뒤에 문제의 5억원짜리 그림이 걸려 있다. /박돈규 기자

이 연극은 방백(傍白)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무대 위 다른 인물에겐 들리지 않고 오직 관객만 들을 수 있는 대사 말이다. 예컨대 마크와 말싸움에 한창이던 세르주는 ‘딩동!’ 벨소리와 함께 객석을 바라보며 “저 녀석은 항공 엔지니어인데 늘 잘난 척해요. 마음에 안 들면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대단한 지식인이죠”라며 속마음을 들려준다. 방백은 관객과 내통하며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준다. 마크가 “넌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껍데기만 보고 있다”고 지적할 때 이반이 “땅콩 먹을래?”로 받는 유머 감각도 훌륭하다.

국내 최고령 배우 이순재와 백일섭, 노주현은 라이브 시트콤 같은 능청과 리듬감으로 이 블랙 코미디를 더 달콤하고 상냥하게 만든다. 이순재는 직진하고, 백일섭은 둥글고, 노주현은 얄밉다. 50년 이상 연기 밥을 먹은 배우들의 관록이 묻어나는 무대다. 다만 고령으로 이따금 대사를 놓치거나 발음이 잘 들리지 않는 게 흠이다.

가로 150㎝, 세로 120㎝ 크기에 온통 하얀 그림 한 점은 아무 말 없이 관객을 빨아들이는 제4의 배우라 할 수 있다. 중반부터는 이 그림이 등·퇴장할 때마다 조건반사처럼 웃음이 번진다. 그림 제목을 ‘하얀 거짓말’로 붙이면 어떨까. 이 풍자극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을 성종완이 연출했다. 국내에서는 배우를 바꿔가면서 오래 흥행해온 연극이다. 세 친구의 성(性)을 바꾼 ‘여자 아트’도 있었다. 이번엔 이순재·백일섭·노주현 ‘시니어팀’ 외에도 최재웅·김재범·최영준·박정복 등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12월 11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극 '아트'는 마크(이순재), 이반(백일섭), 세르주(노주현)가 흰색 바탕에 흰색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을 따라간다. 오랜 시간 서로에게 품어온 감정들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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