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인 30대 주부'에서 '숲 해설사 된 은퇴남'까지.. '내 책을 말합니다' 선정작 <1~6편>

2022. 9. 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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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이 조선일보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내 책을 말합니다’ 이벤트에서 최종 선정된 12편의 책을 소개합니다. 저자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 직접 소개하는 글입니다. 여느 프로 작가 뺨치는 글솜씨에 놀라고, 자신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의지와 집념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우선 여섯 권의 책 소개글을 올립니다.

심선혜의 <당신을 막내딸처럼 돌봐줘요>

<아무튼, 주말> 독자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심선혜의 '당신을 막내딸처럼 돌봐줘요'

한 사람을 일으키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할까. 몇 년 전 서울대학교 암병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 답을 알고 계셨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던 날, 난생 처음 만난 할머니께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불쑥불쑥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왜 내가 암에 걸렸지?’ 원망스럽다고. 뭘 시작하려고 해도 자신이 없다고. 가족들 걱정시키는 것도 싫다고.

이미 암을 경험한 선배인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이어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두 손을 꼭 잡아 온기를 나눠주셨다. 할머니는 내 눈물이 잦아드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말을 꺼내셨다.

“아기 엄마, 나 그냥 진짜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들어줘요. 딸이 하나랬지? 애 이름이 뭐예요?”

“율이예요.”

“그렇구나. 그럼 지금부터 딸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고 나를 돌봐요. 율이가 첫째고, 내가 막내딸이라고 생각해요. 율이보다 나를 더 먼저 돌봐줘요. 남한테 애쓰지 마요. 지금은 우선 나한테만 애써요.”

암 진단을 받은 서른두 살 여름, 나는 막 세 돌이 지난 아이의 엄마였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환자가 어린 딸을 돌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항암 부작용 탓에 변기를 껴안고 속을 비워내다가도 얼른 입을 헹구고 아이를 위해 밥을 차렸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는 전날 항암치료를 받은 몸으로 아이를 태우고 눈썰매를 끌었다. 동네 비탈길에서 눈썰매 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 차마 집에 가자고 잡아끌 수 없었다. 어린 애가 엄마 아프다고 눈치 보고 주눅들까 봐 그렇게 씩씩한 척했다.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누가 날 좀 이해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시간.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왜 스스로 돌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무조건 참고 견뎌야만 한다고 나를 다그쳤을까. 자원봉사자 할머니의 ‘막내딸처럼 돌보라’는 한마디가 그런 나를 일으켰다. 그날 이후로 울기만 하지는 않았다. 누가 알아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체념하지 않았다. 아이 먹고 남은 걸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대나무밭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심정으로 매일 밤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모여 책이 되었고, 그때 할머니의 따뜻한 위로가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이제는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암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많이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시 암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베개 밑에도 깔고 잔다. 남들에게는 안 보이지만 불안감은 늘 손 닿을 곳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기는커녕 처음처럼 선명하다. 그럴 땐 내 마음에 꼭 알맞은 위로를 스스로 건넨다. 글을 쓰며 나를 돌본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누군가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막내딸처럼 소중히 돌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 만난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나도 누군가를 글로나마 일으킬 수 있기를.

장성지의 ‘노래가 있는 숲 해설’

<아무튼, 주말> 독자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장성지의 '노래가 있는 숲해설'

올해로 백수 10년차다. 은퇴지침서 ‘60부터 청춘’은 ‘놀던 물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안 해보고 못 해봤던 이것 저것을 저질렀다.

노래 공부를 했다. 가요를 배워서 CD 한 장 만들고, 성악을 배워서 친구들과 콘서트라는 것도 해본 뒤 유튜브에 추억을 남겼다. 합창공연도 해봤다. 친구 아들 딸 결혼축가, 환자 위문 공연 등 즐겁고 재미있고 보람있고 흐뭇했다.

숲해설 공부를 했다. 숲해설 실습자료를 만들 때 찾아보니 시, 소설을 인용한 숲해설은 많은데 노래와 연관된 것은 안 보였다. 공부한 것 두 가지를 한꺼번에 엮으면 노래가 있는 숲해설? 그래 이거다!

가요, 가곡, 오페라, 판소리 등 1500여 곡을 뒤져서 나무, 풀, 꽃이 나오는 노래와 숲지식을 엮어 계절에 맞춰 월별로 1년치를 정리했다. 산림청 고시를 거쳐 숲해설가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과정이 끝나자마자 자격증과 자료는 곧바로 장롱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고교동문회 행사에서 동문회신문 편집인 후배를 만났다. 장소가 숲과 계곡이 멋진 충북 괴산 화양구곡이라 자연스럽게 나무, 풀 얘기를 하니 바로 “형, 그거 써 주이소”라고 했다. 이래서 자고 있던 자료는 깨어났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1년간 동문회 월간신문에 연재했다.

고백하자면 배운 것 아는 것은 조금, 책과 인터넷에서 베낀 것은 아주 많이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뭐 어때, 높은 사람들도 베끼던데” 하면서 격려해 주던 친구 덕분에 용감하게 끝낼 수 있었다. 황새기 새끼같이 허접하게 썼는데도 굴비두름을 엮었다고 성원해 준 지인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내친 김에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겨우 A4지 12장 분량으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마침 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해결해 주었다. 이렇게 손바닥만한 55쪽 짜리 앙증맞은 ‘내 책’이 태어났다.

수백만원 본전 찾을 욕심에 지인들을 만나 책을 강매할 계획은 코로나가 망쳐 버렸다. 우편으로 다 보냈으니 본전은 커녕 발송비까지 더 들었다. 그러나 모두 ‘재미있다, 고맙다, 부럽다’며 좋아했고 비대면 시대에 최고의 소통수단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논어의 한 구절을 50여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실감했다는 것.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아주 작아도 문화유산을 남겨야 된다는 것. 돈, 명예 등등은 다 사라지겠지만 노래와 책은 지인들의 마음속에도 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 숲처럼 푸르게, 노래하며 즐겁게. 늘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손수천의 ‘그림에 젖어’

<아무튼, 주말> 독자 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손수천의 '그림에 젖어'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서 한 젊은 여성 화가는 평론가의 이러한 비평을 듣고 가볍게 넘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한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화가 요나는 자신의 작품이 더는 팔리지 않게 되자 친구와 제자들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요나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이 된 한 친구가 화가를 찾아간다. 요나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자세로 죽어있었다. 곁의 텅 빈 캔버스에는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고독을 뜻하는 ‘솔리테르(solitaire)’로 읽어야 할지, 연대를 뜻하는 ‘솔리데르(solidaire)’로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소설은 끝난다.

그림에는 재능이 없지만 두 화가의 슬픈 이야기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서 결심했다. 깊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술 에세이를 써보자고. 또한 내적 고독이든 외적 연대든 상관없이 나의 감상과 감정이 이끄는 글을 마무리한 후 스스로가 단단(solide)해지자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외젠 카리에르의 ‘아픈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아픈 아이는 고열 때문에 옷을 반쯤 벗겨놓았고 다리에도 생기가 없다. 또한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울린 건 아이의 왼손이다.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로하는 듯 엄마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다. 인파로 붐비는 휴일의 미술관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본 어느 아이가 자신의 부모에게 ‘저 아저씨 울고 있어요’라며 걱정스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고마워서 힘껏 안아주고 싶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아이는 왼손으로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리라.

내가 쓴 ‘그림에 젖어’는 나를 위로해줬던 아이의 왼손 같은 명화 95점에 대한 나만의 감상문이다. 이제 깊이라고는 없는 감상과 감정의 파편들을 독자라는 가장 무서운 평론가에게 널리 소개하고 싶다. 만약 내 책을 읽은 이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잠깐의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김상미의 <비밀생중계>

<아무튼, 주말> 독자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김상미의 '비밀생중계'

코로나로 인해 열심히 짰던 계획들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여러 번 번복되었습니다.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으로 다시 저장되는 계획서를 보며 이 바이러스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종료없는 무한 리부팅’의 상태에 빠뜨려 지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란 무력감이 들었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전시, 공연도 가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새로운 상상력을 수집하던 성향을 가진 제겐 너무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다니지 않아도 내 주변엔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상상력을 주는 책들을 많다는 것을 깨닫고 책과 함께 방구석 사색여행을 시작했죠. 18세기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작가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훌륭한 가이드였습니다. 방구석 사색 여행을 통해 조각보처럼 펼쳐진 단편 소설집을 소개합니다.

수록된 단편 ‘책복원가’는 내 방 책장 가장 구석에 있던 책에서 시작된 사색입니다. “저 책을 꺼내 본 게 언제였나? 난 왜 일 년이 가도 손길 한번 주지 않는 저 책을 버리지도 않고 갖고 있을까? 새로운 책을 꽂을 자리가 없다면서 왜 그곳에 책을 두어 먼지가 쌓아가길 기다리고 있는 건가?”란 생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어느 노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단편 ‘언어공주’는 영화는 물론 조카가 보는 게임 중계 영상 등 욕이 일상화된 미디어의 모습에서 심각성을 깨닫고 미세먼지에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듯 정신건강을 해치는 욕을 흡수하는 청정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썼습니다. 이밖에 새벽녘 엄마의 밥상 차리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저 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써내려간 이야기 ‘소리를 찾아서’, 열화상기에 적힌 체온을 보면서 ‘내 영혼의 상태가 측정이 된다면 지금 난 얼마일까?’란 상상에서 쓴 ‘SOUL 측정 카페’, 언제부턴가 어려운 부탁이나 불편한 감정을 대화보다는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전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걸 보면서 이러다 앞으로 얼굴을 직접 보고 하는 대화가 체험 상품으로 나오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 ‘분더캄머대화관’ 등이 수록돼 있습니다.

늘 괴짜스런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나에게 “선생님도 꿈이 있어요?”라고 묻더군요. ‘꿈=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이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꿈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음을 반증하는 흥미로운 질문이었죠. 망설임 없이 “당연히 있지!”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제 꿈은 ‘알수 없는 창조가’입니다. 그것이 글씨체든 책이든 ‘나’다운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지만, 그 진짜 이야기는 삶의 마지막이 돼서야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죠. 이 책을 소개하는 순간도 알 수 없는 창조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저의 여정에 친구가 되어주세요.

김민경의 <나는 관계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아무튼, 주말> 독자 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김민경의 '나는 관계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민경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계신 분들과, 마음을 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들고 싶은 분들을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책을 말합니다>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큰맘 먹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얼마 전 아들과의 갈등으로 저를 찾아오신 어떤 어머님 말씀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거 필요 없다! 그 돈으로 네 옷이나 사 입어라. 맛있는 거나 사 먹어라!”

자식에게 자그마한 뭔가를 부탁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부모님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계십니다. 특히 저를 찾아주신 어머님처럼 60대 이상의 부모님들이 그런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스스로의 마음이 무너지면 아이들까지 돌볼 수 없다는 심정으로 평소에도 힘든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억누르며 오랜 세월 지내오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세대의 부모님들은 겸손이 제일 큰 미덕이었습니다. 누가 칭찬을 해도 “아닙니다, 과분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당연했고, 힘드냐고 물어보면 일단은 아니라고 먼저 손사레를 쳤습니다.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꿋꿋하게 인내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숙이는 것이 더 인정받았던 세대를 살아왔기에, 비록 자녀들 앞이라 하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부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보통의 직장 사회에서는 결국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간 그리 밀접한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족은 좀 특별합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부모님이면 그래도 나를 좀 이해해주고 이 정도는 봐 줘야하는 거 아니에요?’ 자녀들은 대체로 이런 심정일 겁니다. 부모님들 또한 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고 애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대체 왜 그러는 거니?’ 하며 섭섭하게 여기게 되는 거죠.

가족이나 주변인들로부터 얻는 기쁨과 위안도 크지만, ‘관계’에서 받는 상처도 굉장히 큽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지라, 세 명 이상이 모이기 시작하면 크고 작은 오해나 갈등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꽤나 마음고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관계’는 이렇게나 미묘한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제가 15년 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분들을 만나왔는데, 결국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이 ‘관계’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유독 힘들어하는 분들의 특징과 상처받은 마음을 씻어내는 법을 주로 설명 드리고, 이 위태위태한 인간관계를 끊어내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드리기 위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자주 받고, 또 그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하며, 더 큰 상처가 두려워 갑작스럽게 관계를 단절하는 일이 많은데, 역설적이게도 그 관계에 목말라하며 지금도 혼자 방법을 찾고 계실 많은 분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해결책이 되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임석재의 <오늘의 아빠>

<아무튼, 주말> 독자이벤트 '내 책을 말합니다'에 선정된 임석재의 '오늘의 아빠'

그때, 그 대학생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2005년, 육아수당 지급과 산모카드(출산육아지원 바우처카드) 발급을 국회에 제안해 주목받았던 정외과 남학생 말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사 모든 일에는 복선이 있는 듯하다. 육아에 1도 관심 없던 정외과 4학년 남학생이 ‘육아수당’ 지급과 ‘산모카드’ 발급을 제안해 국회에서 진행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이후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이를 직접 체험하고 3권의 육아 에세이까지 내게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체험해본 육아는 나를 모두 비워내야 할 만큼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에 타인에게 권하기는 쉽지 않지만, 다시 한 번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하고 싶을 만큼 설명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었다.

남성에게 출산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육아는 가능한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24시간에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극적인 희로애락이 있다. 독서 관련 글을 쓰고 때때로 강의를 진행할 정도로 책읽기,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를 적극 활용해 아이의 성장과 나, 그러니까 아빠의 성장을 담고 치유하며 반성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2018년 3월부터 13개월간 육아휴직을 했다. 아빠육아가 슬슬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섣불리 행(行)하는 자는 없을 무렵이었다. 주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시간은 참 빠르다. 의(義)는 반드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당시 5살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9살, 육아휴직의 그날로부터 거의 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몇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평범한 40대 남자 직장인의 육아휴직 이야기 <아빠의 육아휴직은 위대하다>, 복직 후 이야기 <가장 보통의 육아>, 그리고 일상 이야기 <오늘의 아빠>로. 직접 체험해보니 육아는 어른과 아이 모두의 성장 과정이었고, 공감(共感)이라는 감정의 치유와 정화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와 같이 지금 오늘 이 순간 육아를 하는 부모,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길잡이 에세이가 되길, 내 아이의 빛나던 성장기가 그리운 중‧장년 모두에게 추억의 에세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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