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 살코기는 가고 쫀득 껍데기는 와라

기자 2022. 9. 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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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에서 구워지는 돼지 껍데기. 값은 싸지만 달착지근한 양념에 재워 잘 구워내면 구수하고 달달한 맛을 낸다.
먹태껍질튀김.
생닭발.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씹고 싶은 맛 ‘껍데기 요리’

조리법따라 색다른 맛 육류부터

독특한 식감 자랑 어류껍질까지

마니아층 두터운 별미 중에 별미

한국인 대표 술안주 돼지껍데기

中 남방·日 오키나와에선 냉채로

美·태국은 튀겨서 스낵처럼 즐겨

‘난 네게 반했어(I’ve got you under my skin)’란 팝송이 있다. 1937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본 투 댄스(Born to Dance)’에서 버지니아 브루스(Virginia Bruce)가 처음 불렀다. 이후 프랭크 시내트라, 포시즌스, 네네 체리 등 잊을 만하면 다른 가수들에 의해 계속 불리던 노래다.

에이브릴 라빈은 앞을 뚝 잘라내 버리고 ‘언더 마이 스킨’을 앨범 이름으로 썼고, 독일 팝스타 사라 코너 역시 동명의 노래를 히트시켰다. 노래 제목은 대중문화 쪽에서 관용구가 됐다. 동방신기도 2008년 발매한 4번째 앨범 ‘미로틱’의 타이틀 곡 ‘주문’에서 이 가사를 썼다가 논란을 겪기도 했다. 참고로 이 노래를 작곡한 레미&트롤센은 사라 코너와 동방신기에게 각각 곡을 제공했다.

어떤 감정을 ‘피부 속까지 느낀다’는 이 말을 우리식으로 의역하자면 ‘뼛속까지 느낀다’, 뼈저리다, 은혜에 대해선 ‘각골난망(刻骨難忘)’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음식 칼럼에 두서없이 노래에 관한 언급을 한 이유는 식재료 ‘스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이번 주제가 바로 껍데기(skin)인 까닭이다. 물론 피부에 양보하라는 스킨푸드와는 의미가 다르다. 오히려 피부가 인간에 양보하는 음식이다.

인간은 가축이나 해산물, 작물 등의 가죽이나 껍질 부위도 많이 먹는다. 육류의 껍데기는 값이 싼 허드레 음식(심지어 사골 뼈보다 싸다)이지만 씹는 맛이 좋고 구수한 맛이 있어 나름대로 마니아 층이 두텁다. 복어나 아귀, 민어, 돔 등 생선에서도 껍질 부위에 지방이 몰리고 독특한 식감을 낸다는 이유로 별미로 친다. 작물 중에서도 껍질 부위에 비타민과 안토시아닌 등 특별한 영양소가 몰려있는 경우가 많아 깎아 버리지 않고 따로 식재료로 쓰기도 한다. “껍데기는 가라”고 했던 신동엽 시인과는 달리, 오늘의 푸드로지 주장은 “껍데기는 와라!”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아무래도 돼지 껍데기. 사실은 껍질이나 가죽이라고 해야 옳은 말이다. 껍데기는 주로 조개처럼 단단한 외피를 이르는 단어인 까닭이다. 아무튼 돼지 껍데기는 식재료로 널리 유통된다. 돼지가죽은 소가죽에 비해 얇아 피혁제품으로 잘 쓰지 않는다. 구이용이나 볶고 삶는 용도로 껍데기 그대로 벗겨서 팔거나 오겹살에 붙은 채 썰어낸다. 오겹살은 삼겹살에 껍데기가 한 개 층이 더 있는 부위를 이르는 말이다.

서양에선 젤라틴을 얻어내는 용도로 돼지 껍데기를 썼다. 하리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젤리는 대부분 돼지 껍데기에서 추출해 낸 젤라틴으로 제작한다. 다만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아랍권에서 파는 젤리는 한천(우뭇가사리를 이용한 우묵)을 이용한다.

돼지 껍데기는 손질만 잘하면 부드럽고 쫀득거리는 식감이 뛰어나 소주 안주로 좋다. 씹는 맛에다 감칠맛까지 있어 여느 고기보다 낫다는 이도 있을 정도. 값은 싸지만 달착지근한 양념에 재우면 돼지갈비 이상 구수하고 달달한 맛을 내니, 주머니 가벼운 직장인과 학생들의 술안주로 환영받는다. 요즘은 콜라겐이 많다는 이유로 피부에 좋다는 설이 있어 젊은 층이 일부러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콜라겐은 고분자 단백질인지라 먹어서 쉽게 흡수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맛도 영양가도 좋다. 돼지 껍데기는 살코기 부위보다 살짝 칼로리가 높은 대신 지방 함량이 많아 특유의 지방맛(Oleogustus)을 즐기기에 딱이다. 지방맛은 ‘제6의 맛’이라 불리는 기름진 맛을 의미하는데 비가 오거나 으슬으슬할 때 ‘기름기가 당긴다’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돼지 껍데기는 사각형으로 잘라 철판이나 석쇠에 구워 먹기도 하지만 매콤하게 양념을 얹고 볶아먹기도 한다. 양파와 고추, 마늘 등을 넣고 볶으면 시중에서 파는 육류 볶음 요리와 비슷하지만 값은 저렴하다. 허름한 전통시장 등에서 오래전부터 취급하던 메뉴다. 지방층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이 좀 더 부드럽다.

돼지 껍데기는 은근히 대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취급하는 음식 재료다. 중국에선 가늘게 채 썬 돼지 껍데기를 팔팔 삶아 나온 젤라틴을 굳혀 투명한 묵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재료가 많이 든 머리 고기 수육처럼 보이는데, 족발 부위로 만들면 족편(足片)이 된다. 동파육이나 툰제(豚蹄) 같은 요리에도 껍데기가 붙어있다.

중국 남방과 비슷한 식생활 문화권인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도 돼지 껍데기를 냉채로 즐긴다. 러시아와 동유럽에도 돼지 껍데기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 먹는 요리가 있다. 가장 많이 다루는 방식은 튀김이다. 돼지 껍데기를 살짝 말렸다 기름에 튀겨내면 바삭한 과자처럼 된다. 미국의 포크 라인드(Pork Rinds), 스페인과 필리핀의 치차론(Chicharron), 태국의 깝무, 일본 오키나와 안다카시 등이다. 식재료로도 쓰이고 그냥 간식 스낵처럼 먹기도 한다. 최근 세대에겐 공연히 탄수화물이 죄인 취급을 받는 나머지 ‘살 안 찌는 과자’로 인기를 끈다. 요즘 한국에서도 출시됐는데 돼지 껍데기란 말이 거슬렸는지, 성분을 강조한 ‘콜라겐 팝’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돼지 이외의 껍데기는 닭이 대표적이다. 닭껍질은 전기구이 치킨이나 프라이드 치킨에서 가장 바삭한 부위로 선호층이 꽤 있다. 닭껍질도 튀기면 맛이 좋다. 대만 치파이나 국내 옛날식 통닭 전문점은 물론, 글로벌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KFC에서도 껍질튀김을 취급할 정도다. 백숙 상태의 닭껍질도 골라 먹는 이들이 있다. 아예 닭껍질을 거둬모아 양념에 무쳐낸 닭껍질백반을 파는 기사식당까지 있다.

닭발 역시 사실 껍데기를 먹는 요리다. 닭발 뼈를 에워싼 보들보들한 껍질은 녹진한 지방맛이 가득할 뿐 아니라 감칠맛까지 품어 국물을 내는 용도로도 쓴다. 닭발에 매콤한 양념을 입혀 매운맛으로 먹거나, 전남 일부 지역에선 아예 날것을 다진 회로도 즐긴다.

일본에선 야키도리(燒鳥)에 닭껍질을 자주 쓰는데 ‘가와(皮)’라 해서 따로 메뉴가 있다.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놓으면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 덕에 인기 메뉴 중 하나다. 일본에는 닭껍질로 말아 만든 만두(도리가와교자)도 인기다. 요즘은 저변이 넓어져 우리나라에서도 맛볼 수 있다.

소 껍데기는 두껍고 용도가 많아 식용으로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소가죽 밑 피하지방층에 있는 수구레를 즐겨 먹어왔다. 가죽과 진피 사이에 붙어있는 수구레는 꽤 훌륭한 국밥 재료다. 푹 삶아서 소고기 국밥에 넣거나 따로 건져내 무침으로 먹는다. 대구 달성군이나 경남 창녕이 수구레로 유명한데 현지에선 소구레라 부른다.

어류도 껍질 부위가 맛있다. 민어 껍질을 데쳐서 내면 묘한 식감이 나는데 이를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다. 이 맛이 꽤 인기가 좋아 민어 코스 요리에 빠뜨리면 불평이 나오는 메뉴다. 그 자체로 충분히 두껍고 탱글탱글한 복어껍질이나 아귀껍질도 별미로 꼽힌다. 국내에선 보통 그냥 주지만 일본에선 반드시 돈을 받고 팔며, 값도 비싸다.

껍질 맛있기론 돔도 빠지지 않는다. 참도미에 뜨거운 물을 끼얹어 껍질만 익혀낸 회를 일식에선 ‘마쓰가와 타이(소나무껍질 돔)’라고 하는데 부드러운 회와 졸깃한 껍질의 식감 대비가 굉장히 좋다. 명태도 껍질만 거두어 따로 튀겨낸 것이 안줏감으로 인기가 많다. 환형동물인 개불이나 극피동물인 해삼은 사실 껍데기만 먹는 것이다. 알맹이만 먹는 조개류와는 정반대다. 피자도 만두도 껍데기가 제일 맛있다는 이들이 제법 있다. 껍데기는 꼭 버려야 할 것 같은 부위지만 은근히 맛이 좋다. 마음에 꼭 든다. 정말 ‘언더 마이 스킨’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돼지껍데기 = 당산오돌 본점. 껍데기의 고급화를 선언한 집. 웬만한 지갑만큼 두꺼운 껍데기를 낸다. 두툼하기도 하니 전용 웨이트로 눌러 둘둘 말리지 않게 부드럽게 구워낸다. 양념이 달지 않고 구수해서 좋다. 짝짝 붙는 식감을 제대로 살렸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37길 6. 두툼한 껍데기 1만5000원.

◇수구레 = 권오순수구레해장국. 소고기 하면 횡성이니 수구레 역시 잘 다룬다. 잡내가 아닌 진한 풍미가 제대로 든 수구레국밥을 돌솥밥과 함께 내준다. 수구레는 밑 손질을 잘해 부들부들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며 국물은 빨갛지만 막상 그리 매운맛이 강하지는 않다. 강원 횡성군 횡성읍 횡성로 269. 1만 원.

◇생닭발 = 유달먹거리타운. 원래 닭발은 연골과 콜라겐으로 이뤄진 껍데기만 먹는 음식이다. 주로 화끈한 양념에 볶아먹지만 이곳은 생닭발을 회로 무쳐주는 집이다. 식도로 닭발뼈까지 두드려 그냥 떠먹으면 되니 먹기 편하다. 익힌 닭발도 판다. 전남 목포시 신흥로 108. 1만5000원.

◇오겹살 = 천이오겹살. 삼겹살 부위에 껍데기 그대로 붙어있는 것이 오겹살이다. 씹는 맛이 더 좋다. 냉동 삼겹살과 오겹살로 근 20년간 합정동 골목을 지켜온 집이다. 생오겹살을 구워내면 속은 부드럽고 껍데기 부분은 더욱 쫄깃해진다. 냉동 오겹살도 있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7길 12. 1만 원.

◇닭껍질 = 다루마. 닭껍질을 꿰어 숯불에 구우면 제 기름으로 튀겨지듯 바삭한 식감을 낸다. 연골, 다리살, 가슴살, 가죽 등 닭의 다양한 부위를 직화 꼬치로 맛볼 수 있는 정통 야키도리 집이다. 가라아게(닭튀김) 등 안주용 요리도 다양해 한잔 곁들이기에 좋다. 경기 파주시 경의로 1050 111호. 도리카와 6000원(2꼬치).

◇동파육 = 차이나하우스. 제주 드림타워 맛집으로 소문난 레스토랑이다. 정통 중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베이징 오리와 훠궈, 동파육에다 다양한 식사류를 맛볼 수 있다. 장시간 부드럽게 조려내 양념이 제대로 스며든 껍데기가 씹는 맛이 좋다. 제주시 노연로 12 제주 드림타워 3층. 금산 동파육 4만2000원.

◇껍데기 = 참숯축구공탄구이. 프로축구 선수 출신 사장님이 자신만만하게 돼지 껍데기를 구워주는 집. 실제 껍데기 구이 자격증이 벽에 붙어있다. 정말 부드럽고 졸깃한 껍데기만의 장점을 기막히게 잘 살려낸다. 온통 축구 테마 인테리어에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이벤트도 펼친다. 파주시 산내로 104번길 5-19.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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