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수요동물원] 인형같은 새끼토끼를..악마가 된 몽구스들

정지섭 기자 2022. 9. 20.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돋보이는 습성 때문에 사람의 감정이 쉽게 이입되는 동물들이 있어요. 몽구스도 그런 경우입니다. 몽구스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독사 코브라와 일대일로 맞붙어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뱀의 독니 공격을 재빠르게 피하며 결국은 뱀을 쓰러뜨리는 용맹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수많은 동물다큐멘터리와 도감을 통해 익숙한 장면입니다.

몽구스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토끼를 쓰러뜨린 뒤 여전히 목숨이 붙어있는 토끼를 포식하고 있다. 포식자의 탐욕과 먹잇감의 공포에 질린 눈이 카메라 렌즈에 고스란히 잡혔다. '/Latest Sightings facebook 동영상 캡처

작고 연약해보이지만, 겁없고 용감한 불굴의 무사 말이죠. 그런 몽구스의 모습을 다음의 동영상에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몽구스의 사냥·포식 장면을 잡았는데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연보호구역에서 촬영된 동영상(Latest Sightings 인스타그램) 우선 한 번 보실까요?

이 귀엽고 똘망똘망한 새끼토끼가 있어야 할 곳은 거칠고 황량한 사바나가 아닌 어린이동물원이나 반려동물가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살아있는 짐승이라기보다 백화점 장난감코너에 진열된 인형같아요. 동·남아프리카 특산종인 덤불멧토끼의 새끼입니다. 그러나 이 가련한 새끼토끼가 있는 곳은 포식자들이 즐비한 초원의 덤불 숲 언저리입니다. 어쩐 일로 어미와 떨어져있던 새끼토끼가 맞닥뜨린 것은 한 무리의 몽구스들입니다. 몸색깔과 모양새로 봐선 몽구스 중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남방애기몽구스로 보입니다. 덤불멧토끼는 다 자라면 몸길이가 70㎝에 육박하는 중대형 토끼예요. 몽구스보다 덩치가 세 배는 큽니다. 동영상 속 새끼도 몽구스보다 최소 한 배 반은 더 커보여요.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라말라 자연보호구에서 몽구스가 자신보다 몸집이 큰 토끼새끼를 잡아먹고 있다. /Lastest Sightings facebook 동영상 캡처

하지만 덩치가 생존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예닐곱마리의 몽구스들이 토끼를 둘러싸고 벌이기 시작하는 살육장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용맹하고 패기넘치는 몽구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피와 살을 탐닉하는 잔혹한 육식짐승에 지나지 않을 뿐이죠. 토끼가 울부짖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으며, 포식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공포의 울부짖음입니다. 저 인형 같은 몸에서 나오는 울부짖음도 어쩌면 저리 고울까요? 공포에 질려 땅바닥에 붙어있는 것 외에 할 줄 모르는 토끼를 탐색하던 놈들이 공격을 시작합니다. 주 공격수 역할을 맡은 듯한 놈이 토끼의 하복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경험칙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항문과 복부로 이어지는 이부분만 제대로 공략하면 포식자들의 최애 부위로 식감도 좋고 영영도 풍부한 내장부터 선제적으로 먹어치울수 있습니다. 리카온과 하이에나는 영양이나 얼룩말을 쓰러뜨린 뒤 멀쩡하게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내장부터 끄집어냅니다. 이 무자비한 사냥법을 몽구스들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어요.

남아프리카 말라말라 자연보호구에서 여러마리의 몽구스가 덤불멧토끼 새끼를 에워싸고 습격하고 있다. /Latest Sightings facebook 동영상 캡처

처연하게 울부짖는 토끼의 몸통을 파고들더니 털이 붙어있는 살점을 쭉 찢어갑니다. 이번엔 다리가 찢겨나가고, 내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토끼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끼익 끼익 울기만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숨통을 끊고 안락사를 시켜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몽구스들은 목숨이 붙어있는 토끼의 울부짖음에 아랑곳않고 산채로 포식을 즐겼습니다. 이 잔혹한 살육극의 주인공 몽구스는 뱀만 먹는 동물이 아닙니다. 토끼나 쥐, 뱀과 도마뱀, 달팽이부터 곤충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잡아먹는 사냥꾼이죠.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동부지역부터 남부, 그리고 인도와 아라비아에 분포돼있고, 이중 일부는 서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 스페인에도 살고 있어요.

몽구스는 적게는 몇마리에서 많게는 수십마리까지 무리 생활을 한다. 강한 사회성은 몽구스가 번성할 수 있는 동력으로 꼽힌다. /Sandiego Zoo 홈페이지

기다랗고 호리호리한 몸매 때문에 족제비의 무리로 오인되기도 하는데, 분류학적으로는 가장 원시적인 맹수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 사향고양이와 아주 가깝습니다. 코브라와 맞장뜨는 용맹함으로 이름난 몽구스는 이 무리중에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회색 몽구스예요. 목덜미를 부풀어올리고 위협하는 코브라의 공격을 날렵하게 피하면서 빛의 속도로 머리를 물면서 타격을 입히고 끝내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리는 스피디한 싸움실력은 동급 최강입니다. 이렇게 잽싼 공격술을 가진 몽구스의 덩치가 여우만했어도 먹이사슬의 지형은 전혀 딴판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릅니다. 몽구스와 코브라의 속전속결 혈투를 담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유튜브 동영상 보실까요?

이렇게 뱀잡이 기술이 탁월한 몽구스를 적극적으로 수입해간 곳이 일본의 오키나와현입니다. 토종 독사 하브가 민가에 출몰해 골머리를 앓다가 퇴치 수단으로 영입됐습니다. 일종의 해결사로 스카우트된 몽구스를 활용해 지역 수족관에서는 ‘몽구스의 뱀잡이쇼’같은 관람객 구경거리를 만들기도 했죠. 1994년 몽구스의 한 종류인 미어캣이 라이온킹의 감초 캐릭터 ‘티몬’으로 등장하면서 부분(미어캣)이 전체(몽구스 가문)의 인기를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졌죠. 촐싹대지만 사려깊고, 벌레를 연명하며 정글의 평화수호자를 자처하는 미어캣 티몬의 모습은 새끼토끼를 떼로 공략해 산채로 내장부터 끄집어내 먹어치우는 잔혹한 사냥꾼과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어캣. 원래는 왜소하고 온순한 몽구스의 일종으로 별 관심이 없었지만, 1994년 라이온킹 개봉을 계기로 벼락 스타덤에 올랐다. /Sandiego Zoo 홈페이지

아직 몽구스 무리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져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이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 몇마리에서 최대 수십마리가 무리를 이루며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 사회성도 몽구스 무리의 번성의 동력으로 꼽힙니다. 새끼 토끼에 대한 잔혹한 살육도, 그저 자연의 시각에서 보자면 종족간의 협업 사례에 속하는 것이겠죠.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