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숲 향기로 샤워하는 사려 깊은 숲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2. 9. 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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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쪽 들머리의 사려니숲길. 빼곡한 삼나무숲 사이로 강처럼 길이 이어진다.

제주는 숲의 땅이다. 한라산 백록담을 꼭짓점으로 바다를 향해 사방으로 뻗어 가는 제주도의 중산간 지대까지는 그야말로 숲 천지다. 그것도 도로를 제외한 인공 시설이 거의 없이 순도 100%의 숲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꼬메오름 능선에서 조망하는 노로오름과 윗세오름으로 치고 오르는 숲의 바다가 그렇고, 법정악이나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만나는 원시림도 마찬가지다.

정점은 백록담이다. 감동 그 자체인 이 숲을 만나는 최고의 길이 한라산국립공원의 탐방로들이다. 그러나 등산을 하지 않고 제주 숲의 진면목을 만나고 싶다면 사려니숲길만 한 곳도 없다.

물찻오름과 한라산. 왼쪽 가운데 녹색 건물이 선 곳이 물오름이고, 그 앞이 성판악 들머리다.

제주 걷기길 중 가장 많이 찾는 숲길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보전지역인 사려니숲길. 제주의 단일 걷기길로는 가장 많은 이가 찾는 곳일 게다.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표선면 지경 남조로의 붉은오름까지 한라산 동쪽 원시림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해발고도 500~600m대에 위치한 10km의 숲길이다.

걷는 동안 90년이 넘은 수령의 삼나무를 비롯해 수많은 종류의 원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전형적인 온대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많고,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편백나무 등이 뒤섞인 숲의 바다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신록에 갇힌 풍광 속을 걷는 탐방객들.

'사려니'는 '솔안이' 또는 '살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살' 또는 '솔'은 신성한 곳이나 신령스러운 곳을 가리킬 때 쓰는 제주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 신령한 숲인만큼 신비로운 물찻오름을 품고 있다.

사려니숲길은 제주의 그 어떤 숲길보다 길이 넓다. 온 가족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걸어도 넉넉할 정도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어린아이나 부모와 함께 걷기에도 좋다. 그래서 가끔씩 유모차를 끌며 이 숲을 즐기는 젊은 부부를 만나기도 한다.

사실 사려니숲을 관통하는 넓은 길은 20년쯤 전까지만 해도 차량통행이 이뤄지던 곳이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차량의 출입을 막고 본격적인 탐방로를 조성해 국제트레킹대회를 치르면서 현재 제주를 대표하는 명품 숲길로 거듭났다.

자, 들어서 보자. 숲의 감옥으로!

교래곶자왈의 좁은 오솔길이 그 아름다운 원시 숲에 맞춤한 길이었던 것처럼, 사려니숲길의 넓고 평탄한 길도 이 광활하고 짙은 제주 산간의 수풀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일상의 모든 긴장의 끈을 풀고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유유자적하며 '놀멍 쉬멍' 걷기에 좋다.

사려니숲길은 걷는 내내 신록으로 샤워 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마음 깊은 곳까지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스며드는 듯해 이 숲의 감옥에 오래오래 갇혀 있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숲길 중간에서 만나는 물찻오름 표석.

비자림로 입구 쪽에 있는 도종환 시인의 시 '사려니 숲길'처럼 인생을 살면서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오래 걷고 싶은 길이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이번 제주여행은 대성공이다.

1년에 딱 한 번 갈 수 있는 오름

조천읍과 남원읍, 표선면의 경계선상에 솟은 물찻오름은 사려니숲길의 중간쯤에서 탐방로가 연결된다. 붉은오름 쪽 입구에서 5.4km, 비자림로 입구에서 4.6km 들어선 지점이다. 표석이 선 곳에서 오름탐방로를 따라 600m쯤 들어서면 분화구 전망대에 닿는다. 이후 화구벽을 따라 150m 진행한 전망데크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코스다.

정상의 굼부리에 물이 고여 있고, 낭떠러지를 이룬 오름 둘레가 '잣'[城]과 같다고 해서 '물찻'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엔 숲으로 뒤덮인 오름이 검게 보여서 '검은오름'이라고 불렀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물찻오름의 화구호. 1년에 딱 한 번 탐방로가 열리는 오름이다.

화구호는 오래 전, 오름 자락에서 표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풀어놓았다는 붕어를 비롯해 개구리, 물뱀 등이 다양한 습지식물과 함께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물찻오름은 훼손방지를 위해 출입을 통제 중이다. 1년에 딱 한 번, 제주도와 한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사려니에코힐링체험' 행사기간(통상 5월 중)에만 한시적으로 길이 열리니 탐방이 무척 까다로운 오름인 셈이다.

그것도 치열한 사전예약에 당첨되어야 출입이 가능하니 가고 싶다고 맘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행사 일정이 잡히면 한라일보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된다.

물찻오름 탐방로는 여느 오름보다 좁고, 숲을 비집고 길이 나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탐방은 숲해설가의 인솔 하에 이뤄지니 안전하고, 물찻오름과 제주 숲에 대한 재밌는 해설도 들을 수 있어서 즐겁다.

이토록 눈부신 신록의 값은 얼마일까. 길멀미 나도록 걷고 싶은 곳이다.

물찻오름 표석이 선 곳에서 오름을 탐방하는 데는 1시간쯤 걸리고, 사려니숲길을 다 포함하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필요하다. 원래의 정문은 비자림로 쪽이지만, 이곳은 제주에서도 손꼽을 만큼 숲이 좋고 울창한 곳이어서 주차장을 조성하지 못해 절물오름 근처까지 가서 주차 후 걸어서 와야 한다.

최근엔 여행자들이 주차하기에 편리한 남조로, 즉 붉은오름 쪽 들머리를 애용한다. 그러나 붉은오름 쪽에서 들어서면 계속 오르막길이다.

반대로 비자림로 쪽에서 시작하면 날머리까지 전체적으로 내리막이어서 걷기가 수월하다. 11km 길이의 숲길을 걷는 내내 식수를 구할 곳이 없으니 물을 꼭 챙기는 게 좋다.

신록의 숲에 갇힌 물찻오름의 정상부 전망데크.

교통

제주버스터미널에서 231번, 232번, 제주공항에서 131번, 132번 급행을 이용해 남조로의 '붉은오름'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비자림로 입구로 가려면 제주버스터미널에서 212번, 222번, 232번 버스를 이용한다.

주변 볼거리

렛츠런팜 제주 한국마사회가 세운 우리나라의 경주마 육성을 위한 목장이다. 65만 평이 넘는 부지에 마사와 초지, 의료시설 등을 갖추고 우리나라의 마필 생산과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일부 공간이 개방되어 멋진 목장 풍광을 살펴보며 산책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토끼와 제주마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도 가능하다. 널찍한 밭엔 해바라기와 양귀비, 청보리 등이 철따라 꽃을 피워 사진 명소로도 잘 알려졌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 문의 064-780-0131.

맛집

삼다수숲길 입구에 닭칼국수를 잘 하는 '숲애'가 있다. 교래리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표고버섯을 사용하며, 손 토종닭 칼국수와 손 버섯칼국수, 빈대떡, 냉메밀소바 등을 내놓는다. 모두 맛이 괜찮다.

주소 제주시 조천읍 교래2길 7

문의 064-782-6464.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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