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발해 내것..아메리카 인디언도 중국인"[김지산의 '군맹무中']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2. 9. 1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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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덩샤오핑

#논쟁은 뒤로 미루고 함께 개발부터 하자.

덩샤오핑 중국 국가주석이 1978년 10월 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로 중일간 갈등이 한창일 때였다.

중국 사정에 밝은 익명의 외교 전문가는 "영유권 갈등 속에서 두 나라가 공동 개발이 어려울 테니 골치 아픈 문제는 후대에 미루고 일단 경제적 이익을 함께 누리자고 제안한 것"이라며 "그러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라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들만의 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은 1984년 10월 공산당 원로 모임 중앙고문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드러난다. 덩샤오핑은 방일 당시를 기억하며 "도서 주변을 공동 개발해 공동 이익을 얻게 되면 싸울 필요 없고 담판도 필요하지 않다고 봤다"며 "댜오위다오는 오랫동안 세계지도상에 중국령으로 돼 있던, 분명한 중국 영토"라고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이 한중수교 30주년, 중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7월부터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을 진행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 고대사 연표에 넣지 않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고대사 연표를 아예 철거하기로 했다. 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한 상황에서 한국 내 반중 감정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들이 나왔다.

이것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배려, 양보일까. 중국 결정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과 내지 화해의 손길이 되려면 고구려, 발해 역사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한중간 역사 분쟁의 한 대상이어야 한다. 마치 가족간 재산 분쟁 중 어느 한 쪽이 휴전을 요청한 것과 같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국면이다. 고구려, 발해 역사는 논란,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나라에 손을 내밀어 삼국통일을 이뤄냈던 신라의 근시안적이며 치욕적인 행태 반대편에 있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한국으로부터 빼앗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중국은 알지 못한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중국이 연표를 철거할지언정 역사왜곡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이 댜오위다오를 놓고 그랬듯 '고구려, 발해사는 누가 뭐래도 중국사'라고 못박은 것과 다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항의는 그저 코흘리개의 생떼에 불과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과거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중국 동북공정은 통일 한국 시대에 대비한 것"이라며 "훗날 있을지 모르는 영토 분쟁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적 지도자이며 지성인으로 여전히 추앙받는 저우언라이는 1963년 6월 중국을 42일간 방문했던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랴오허 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분명 실패한 침략이었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고구려 영웅 양만춘 장군, 안시성에서 당태종 부대를 격퇴했다)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다...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중국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한국고대역사연표. 고구려와 발해 부분이 빠져있다. /사진=웨이보 캡처

#김종미 베이징대 한국인 1호 교수이며 현 'it茶(잇다)' 대표가 2004년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을 보면 중국의 유명 문화인류학자 왕대유는 저서 '용봉문화원류(龍鳳文化源流)'에서 아메리카 인디언과 마야 문명 뿌리를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중국인의 흔적은 모든 환태평양 지역에서 발견된다. 중국인의 조상은 고대에 환태평양 일대에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겼으며 중화 문화와 중화 문명을 널리 환태평양 지역에 전파했다. 올메카(Olmeca), 마야(Maya), 톨텍(Toltec), 아즈텍(Aztec), 믹스테카(Mixteca), 잉카(Inca) 등 문명은 중화 문명이 동천하여 이룩한 분화의 결과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중화 민족과 뿌리가 같다. 중국 대지는 현재 지구상 황인종의 고향이며 중화 선조들은 적어도 5000~6000년 전에 이미 중화 문화를 특색으로 하는 태평양 문화권을 형성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인종적 기원에 대해 학계는 오랜 세월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추장 복장이 시베리아 샤만들과 비슷하다고 해서 몽골, 만주족의 후예라는 추론에서부터 시베리아와 유라시아인 피가 섞인 종족이 북극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런 식으로 치면 한국은 시베리아 주인이던 몽골족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인디언들을 형제라고 불러 마땅하다. 튀르키예(터키)가 북방 유목민, 즉 한민족 친척쯤 되는 돌궐족의 후예이기 때문에 튀르키예를 형제국(6·25 참전국과 별개의 의미)으로 대접해야 한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니 한국은 친척들을 통해 중국을 지배했었다고 해도 된다.

중국은 자신을 지배했던 몽골의 원나라도 자기 역사로 취급한다. 1995년 '몽골국통사' 3권을 출판하면서 몽골 영토를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몽골이 반발하자 '그저 학술활동일 뿐'이라며 뭉갰다. 통일 한국을 대비하듯 네이멍구자치구에서 분쟁 가능성에 대비한 차원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신장위구르, 티벳도 중국 역사에 편입시켰다. 심지어 베트남 역사에도 손을 댔다. 광둥과 광시 지역이 고대 베트남의 한 나라였던 남비엣 땅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서다.

역사 문제에 있어 중국은 학계가 억지 주장을 하고 정부가 소리소문 없이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이 거칠면서도 고전적인 역사왜곡 방식을 많은 나라들은 이미 알고 있다. 미국과 패권다툼이 한창인 이때 존경받는 나라로서 세계 시민들을 향해 다가서기는커녕 스스로 반중정서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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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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