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사망' 이천 상가건물 화재.. "전기 차단 안하고 방화문 열어둔 채 철거작업"

김태희 기자 2022. 9. 1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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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간호사 등 5명이 사망한 경기 이천시 관고동 병원 건물 화재 현장에 지난달 8일 경찰과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2차 합동 감식을 위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5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이천 상가건물 화재는 철거 업체 관계자들이 위험요인을 차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발생한 사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남부경찰청 이천 화재 수사전담팀은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철거업자 A씨(59)를 구속하고, 또 다른 철거업자 2명 등 화재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A씨 등 철거업자 3명은 화재 당일인 지난달 5일 오전 7시10분쯤 이천시 관고동 학산빌딩 3층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작업했다. 이들은 당시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현장에 있던 선풍기와 에어컨 등 냉방기기를 작동했다.

오랜 기간 작동하지 않았던 선풍기와 에어컨의 전원을 켜자 냉방기기 배수펌프 전원 코드에서 스파크가 발생, 화재로 이어졌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골프장에는 4개의 방이 있었는데 화재는 창고로 쓰인 1번 방에서 발생했다. 1번 방은 골프용품을 비롯해 습기와 먼지가 쌓여 화재 위험이 큰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1번 방 벽면에 설치된 선풍기와 에어컨 배수펌프 전원 코드에서는 단락흔(전기 회로의 절연이 잘 안 돼 접속된 흔적)이 발견됐다.

철거 작업을 하면 전기 차단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만 A씨 등은 이런 안전조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작업 중 불이 나자 그대로 건물 밖으로 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3층 방화문에 소화기를 받혀 놓고 열어둔 상태에서 작업했다. 이 때문에 화재와 함께 발생한 연기가 계단 통로를 통해 빠르게 4층으로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 과정에서 건물 시공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3층과 4층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화 구획이 설정되려면, 벽면 내부에 세워진 철골 H빔 형태의 기둥 내부가 벽돌과 회반죽으로 막혀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3년 학산빌딩 준공 당시 해당 구간은 이 같은 시공 없이 외장재만 붙은 상태로 지어졌다. 이로 인해 화재 당시 H빔 기둥 주변의 빈 공간을 통해서도 다량의 연기가 4층 병원의 신장 투석실로 유입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를 통해 형식적인 감리, 안전을 무시하는 공사 관행 등이 확인됐다”면서 “제도개선책을 관계기관에 통보해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병원 내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화재 당시 숨진 현은경 간호사등 10여 명의 병원 관계자들이 33명의 투석환자를 대피시키려 노력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직후 연기가 투석실로 들어왔는데,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대피시키는 행적이 3∼4분간 영상에 담겨 있다”며 “의료진들은 투석기에 달린 줄을 잘라 내고 필요한 조처를 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달 5일 이천 관고동의 한 4층 높이 상가건물에서 발생했다. 불은 건물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발생했으나 연기가 위층으로 유입되면서 4층 투석 전문 병원에 있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과학수사대, 피해자보호팀 등으로 꾸린 71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편성하고 압수수색 3차례, 합동감식 3차례, 관계자 71명에 대한 89차례 조사를 하는 등 수사를 벌여왔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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