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맨 손으로 쌓은'매미성'은 태풍 견뎠을까

조윤화 기자 2022. 9. 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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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탓에 맘 편히 명절을 보내지 못한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힌남노는 사라(1959년)와 매미(2003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강한 태풍인데요. 포항에선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매미성주 백순삼 씨가 매미성을 배경으로 미소를 띠고 있다. 김태훈·이세영PD


라노는 강풍이 다가오자 경남 거제의 ‘매미성’이 걱정됐어요. 매미성은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68) 씨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장벽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직접 돌을 쌓아 올린 성인데요. 지금은 SNS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인증샷만 24만 여개에 이를 정도로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힌남노 상륙 직전 인터넷커뮤니티에선 ‘첫 실전에 들어가는 매미성’ ‘과연 매미성이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글들이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라노가 지난 7일 거제도를 다녀왔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거제를 할퀴고 간 흔적. 농막이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다. 김태훈·이세영PD


거가대교를 지나 매미성 아래에 도착해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무렵. 한 시민이 “이것도 좀 찍으라”며 라노를 붙잡습니다. 그곳엔 온갖 기구들이 나뒹굴고 있었어요. “태풍 때문에 농막이 다 휩쓸려 가버렸어. 주차장 앞에 쌓여있던 자갈들도 싹 날라 갔다니까.”

백순삼 씨가 옮겨놓은 화강석. 한 개당 무게가 40~60kg에 달한다. 김태훈·이세영PD


매미성에 오르니 한창 돌을 옮기고 있던 백 씨가 라노를 반깁니다. 백 씨는 “힌남노 피해는 거의 없었다. 태풍에 대비해 작업 도구를 실내로 옮긴 것 말고는 달리할 게 없다”고 하더군요. 더 큰 태풍이 와도 매미성 만큼은 끄떡없을 거라고 백 씨는 자신합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대화를 나눴습니다. 경북 영덕 출신인 백 씨는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하면서 거제와 인연을 맺습니다. 은퇴하고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 거제 정착해 살고자 했는데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지어 농부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퇴직금 중간 정산금까지 투입해 땅을 매입했습니다.

백 씨가 ‘매미성주’로 불리게 된 계기는 태풍 ‘매미’ 때문. 전국적으로 4조2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낸 매미는 백 씨의 540여 평 땅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매미가 거제에 상륙한 때는 추석 다음 날인 2003 9월 12일. 고향에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백 김 씨는 “태풍으로 밭이 다 사라져 있었다. 내 꿈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하늘을 원망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때 백 씨는 제방을 직접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토목기사에게 ‘어떻게 복구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길도 좁고 구불구불해 중장비가 올라오기 어려워 돈이 많이 든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 혼자 직접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9년째 오롯이 백순삼 씨의 근력으로 지어지고 있는 매미성. 오른쪽은 백순삼 씨의 작업도구. 김태훈·이세영PD


이때부터 백 씨는 40~60kg 에 달하는 화강석을 구입해 차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까지 옮긴 다음 농지까지는 하나씩 직접 옮겼습니다. 돌을 날라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메우는 ‘무한도전’을 19년째 하고 있는데요. 은퇴 전에는 주말·공휴일이면 첫차를 타고 밭에 도착해 일하다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은퇴 후 지난해 11월 말 매미성 가까이로 이사한 그는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미성은 설계도 한 장 없이 지어졌는데요.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자연과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매미성을 보며 “마치 가우디 건축물 같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태풍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지으려고 해요.”

매미성 전경.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어 매미성에 오르면 거제도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김태훈·이세영PD


백 씨의 의도대로 매미성은 이제 거제도를 찾는 관광객에겐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미성 덕분에 주변 상권도 살아났는데요. ‘매미’가 들어간 음식점이나 카페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백모 씨는“ 매미성이 없으면 여기서 장사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거제시도 관광객이 급증하자 14억 원을 들여 굴곡도로 225m를 개량하는 한편 주차장 95면 조성 공사를 지난해 5월 끝마치기도 했습니다.

‘관람료를 받을 생각은 없느냐’는 라노의 질문에 백 씨는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고 손사래 치면서도 “아들이 ‘매미성 한 켠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 어떨까’하고 고민하더라. 방문객들에게 커피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매미성을 더 예쁘게 쌓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백 씨가 첫 돌을 옮기기 시작한 나이는 49세. “누구나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누군가가 매미성에 쏟은 한 인간의 집념과 열정을 보고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백 씨는 오늘도, 내일도 해가 뜨자마자 매미성을 계속 쌓을 겁니다. 라노도 ‘매미성주’를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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