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이 안팔려요".. 새 아파트 입주 못하고, 당첨 취소까지
"두달 넘도록 집보러 온 사람 없어"
7월 서울아파트 매매 7분의1 토막
전국 신규 아파트 20%가 미입주
전세 거래마저 덩달아 뚝 끊겨
세입자 못구해 보증금 분쟁 속출
11월 경기도 한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둔 김모(43)씨는 지금 살고 있는 소형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밤잠을 설치고 있다. 2019년 청약 당시 기존 집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당첨이 된 김씨는 입주 때까지 매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당첨이 취소된다. 그는 “중개업소 여러 곳에 매물을 내놓고, 호가도 내려봤지만 두 달 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우려에 주택 수요가 급감하면서 빚어진 ‘거래 절벽’ 때문에 실수요자까지 이사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씨처럼 청약 당첨자가 기존 집을 처분하지 못해 애를 먹는가 하면, 전세가 나가지 않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이 묶이는 사례도 많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극도로 위축된 주택 거래를 정상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파트 거래 역대 최저, “이사 못 갈 판”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639건으로 2006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월간 기준으로 최저를 기록했다. 작년 7월(4679건)의 7분의 1 수준이다. 8월 거래량도 아직 신고 기간이 보름가량 남긴 했지만 468건으로 7월보다 더 적다. 경기도 역시 7월 거래량이 2908건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데 이어, 8월엔 2138건으로 더 줄어들며 거래 절벽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주택 거래가 끊기면서 가을 이사철에 맞춰 이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애로를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청약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하려던 1주택자가 기존 주택 처분을 못 하는 사례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조사한 7월 전국 신규 아파트 입주율은 79.6%로 아파트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입주를 못 하는 상황이다. 미입주 원인은 ‘기존 주택 매각 지연’이 40%로 가장 많았다.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으면 분양 대금 마련도 어려워지지만, 청약 당첨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 규제 지역이나 수도권, 지방 광역시에서 2018년 12월 이후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는 입주 때까지 기존 주택의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신고까지 마쳐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전세로 살던 세입자도 거래 절벽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전세로 살던 50대 이모씨는 오는 10월 말 전세 계약이 끝나면 동작구 본인 소유 집으로 옮기기 위해 4개월 전인 6월부터 집주인에게 퇴거 의사를 밝혔지만, 집주인이 아직 후속 세입자를 못 구하고 있다. 이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나도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데 전세 거래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거래 절벽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인 장모씨는 내년 1월 계약 만기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 지난달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모든 금전적 피해에 대한 책임은 임대인이 진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임대인에게 발송했다.
◇”과도한 규제는 풀고 공급 늘려야”
전문가들은 거래 절벽으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를 막으려면 과도한 규제를 풀어 거래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규제로 2019년 12월 도입된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조치가 꼽힌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집값을 안정화한다는 명분으로 15억 대출 규제를 내놨지만, 중저가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고가 주택은 현금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이제는 정상적인 거래까지 가로막고 있어 규제를 존속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15억 대출 금지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신중한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15억원 대출 금지) 해제를 현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규제 완화도 필요하지만, 거래 활성화를 위한 가장 근본적 대책은 집값을 하향 안정시켜 수요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입지와 품질의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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