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증원은 정말 오답일까?

전혜원 기자 2022. 9. 9. 07: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는 개두술이 필요했지만 당시 병원에는 담당의가 부재했다. 한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 개두술 가능 의사가 왜 두 명밖에 없나? 의사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응급환자를 진료할 125개 병원을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했다. 그중 한 곳인 서울아산병원. ⓒ김흥구

서울아산병원 간호사(37)가 7월24일 오전 6시 출근 직후 심한 두통으로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곧 의식을 잃었다. 뇌동맥 일부가 부풀어 올라 터지면서 뇌와 척수 사이 공간에 출혈이 발생한 것이었다(뇌 지주막하 출혈). 이런 경우 머리를 열어 부푼 뇌혈관을 금속 집게로 묶는 ‘수술(개두술)’을 할 수도 있고, 머리를 열지 않은 채 허벅지 쪽 혈관을 통해 뇌출혈 부위에 백금으로 된 얇은 철사를 채워 넣는 ‘시술(색전술)’을 할 수도 있다. 검사 결과 이 간호사에게는 개두술, 즉 수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 아산병원에서 개두술로 해당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 두 명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한 명은 일요일이라 지방에 체류 중이었고, 한 명은 휴가로 해외에 있었다. 이 간호사는 그날 오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6일 뒤인 7월30일 숨졌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개두술을 하는 의사 두 명과 색전술을 하는 의사 한 명을 합해 총 세 명이 온콜(호출 대기)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일에는 색전술을 하는 의사가 온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 환자는 색전술이 불가능해 최대한 빨리 치료받게 하기 위해 전원 조치를 했다”라고 말했다. 개두술 담당의는 올해 봄까지만 해도 세 명이었지만, 한 명이 다른 병원으로 이직해 두 명이 되었다고 한다.

휴가를 번갈아 쓰더라도 두 명이 1년 365일 빈틈없이 당직을 서기는 어렵다. 의사도 사람이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개두술 가능 의사가 두 명뿐이었다면, 둘 중 한 명이라도 온콜 근무를 해야 했을까? 그러니까 아산병원이 24시간 내내 뇌출혈 관련 개두술이 가능하도록 대처해야 했을까? 환자가 소속 간호사든 아니든 말이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의료관리학)는 그렇다고 본다. 정부는 ‘중증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할 전국 40개 병원을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응급환자’를 진료할 전국 125개 병원을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해 일부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데, 아산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윤 교수는 “응급의료기관은 응급환자를 24시간 진료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 장비를 운영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다만 세부적으로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를 24시간 두라는 기준은 없다. 제도를 허술하게 만든 정부에 1차 책임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병원이 뇌출혈 수술이라는 응급진료 기능을 최소한도로만 유지했다는 점은 도덕적 해이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다. 정부나 병원의 책임만큼 크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 의사 두 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 것 역시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산병원은 병상 수가 2732개로 국내 1위다. 신경외과 전문의만 25명에 달하지만, 이 중에서 뇌출혈을 치료하는 의사는 세 명이며 그 가운데서도 개두술 가능 의사는 두 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 개두술 가능 의사가 왜 두 명밖에 없을까?

이에 대해선 ‘병원이 개두술 가능 의사를 더 뽑을 수 있는데도 뽑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병원이 진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민들로부터 걷은 보험료로 진료비 일부를 각 병원에 지불한다. 이때 병원이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게 아니라 의료행위별로 가격(수가)을 매긴 뒤 이에 맞춰 급여를 지급한다. 개두술 같은 뇌혈관외과 수술의 경우 수가에 비해 인건비 등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발생빈도가 낮은데도 24시간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병원 경영에는 득이 되지 않는다. 아산병원과 함께 소위 ‘빅5’에 해당하는 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대·서울성모 병원도 신경외과 의사는 병원마다 각각 20명 안팎이지만 그중 개두술을 하는 의사는 3~4명 수준이다.

2020년 8월26일 의사 파업 첫날, 시민들이 아주대학교병원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뇌혈관은 대부분 중환자로 위험부담 높다”

개두술을 하는 의사인 김용배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는 지난해 자신의 ‘원가실적 현황’을 조회했더니 이익률이 –4%로 적자였다고 말했다. “병원 입장에서 적어도 손해는 안 보겠다고 판단해야 의사를 더 뽑지 않겠나.” 그에 따르면 뇌출혈 수술에 필요한 각 의료행위의 수가는 한국이 일본의 20~30%대에 불과하다. 일본은 수술의 복잡도에 따라 여러 가산제도가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병원도 돈을 벌어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는 사업장인데 적자를 강요할 수는 없으니, 개두술처럼 꼭 필요한 의료행위의 수가를 지금보다 올려야 병원들이 관련 의사를 더 뽑으리라는 논리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병원들은 일반 기업과 다른 ‘비영리 의료법인’으로서 나름의 공적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또한 개두술 등 수술은 수가가 낮다 해도 검사료나 영상진단료 수가는 비교적 높아서 원가를 웃돈다. 병원들은 장례식장·주차장·식당 등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병원들이 객관적으로 뇌혈관 수술 의사를 고용할 만한 여력이 없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빅5 중 나머지 병원이 코로나19로 적자를 낸 2020년에도 아산병원은 132억원, 세브란스병원은 264억원 순이익을 냈다.

여기까지는 ‘병원들이 의사를 더 뽑을 수 있도록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의료계와, ‘지금 상태에서도 충분히 더 뽑을 수 있고 뽑아야 하는데 일부러 뽑지 않을 뿐이다’라는 보건의료 단체의 대립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뇌혈관 수술 의사를 뽑고 싶어도 못 뽑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이 분야를 전공하는 의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생들은 학부 6년을 거쳐 의사 면허를 딴 뒤 1년간 인턴으로 여러 전문과목을 경험한다. 인턴이 끝나면 자신이 전문으로 하고 싶은 과목에 지원한다. 합격하면 3~4년을 레지던트로 일하고 시험을 봐서 해당 과목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이때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쳐 ‘전공의’라고 한다. 말하자면 대학병원에서 일하며 수련을 쌓는 의사들이다.

신경외과에 지원하는 전공의 수가 정원 대비 적은 편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2~3년간 전임의(펠로)로서 해당 과목의 세부 전공을 정할 때, 뇌혈관을 택하는 이들이 적다는 점이다. 2022년의 경우 신경외과 1~2년 차 펠로 86명 중 뇌혈관 전공은 28명(32.6%)에 그쳤다. 뇌종양이나 정위 기능(파킨슨병 등을 첨단기술로 치료하는 분야)을 택한 이는 11명(12.8%)으로 가장 적었다. 대부분인 42명(48.8%)이 척추를 택했다.

“일단 척추 분야에 환자가 제일 많다. 개원해도 수요가 많고, 병원에 취직할 일자리도 많다는 뜻이다. 또한 척추 과목의 경우 대부분 통증을 치료하는 것이지 죽고 사는 단계로 가지 않는다. 반면 뇌혈관은 대부분 중환자이고, 24시간 365일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불려다니는 데다 소송 가능성도 있다. 긴장과 위험부담이 높은데 그에 대한 보상은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지원자가 적다.” 김용배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가 말했다.

같은 뇌혈관 치료 내에서도 머리를 열지 않는 색전술을 점점 많이 하면서 개두술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다. 그 결과 수술 경험이 100차례 이상인 ‘숙련된 개두술 의사’는 133명뿐이다. 전국 신경외과 전문의(3025명)의 4.4%에 해당한다. 전국의 전공의 수련병원이 85곳임을 고려하면, 병원 한 곳당 1.6명에 그친다. 김용배 상임이사는 “좀 더 쉽고 편하고 안전한 쪽으로 의학이 발달하는 것 자체는 문제라 할 수 없지만, 아산병원 사건에서 보듯 결정적인 순간에는 개두술이 필요하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다른 필수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없어져도 된다면 이대로 시장에 맡겨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면 해당 분야의 인력 유지와 양성에 개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종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유인책’이다. 개두술을 전공하는 의사에게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든, 관련 수가를 올려 병원이 개두술 의사를 더 뽑게 하든, 병원 평가에 반영하든 해서 의사들이 개두술 전공을 더 많이 선택하고 병원이 이들을 더 뽑도록 유도하는 방안이다. 보건복지부도 뇌수술 등 기피 분야에 대해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한다는 내용으로 대통령 업무보고를 했다.

“단기적으로는 해결책을 찾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해소가 안 될 거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말했다. 왜? “아산병원 개두술 의사가 2명에서 5~6명이 되었다고 치자. 그게 어디서 온 인력이겠나? 수도권이나 지방 대형병원에서 ‘탈출’한 의사들 아니겠나?” 지원정책이 시행되면 빅5를 중심으로 한 큰 병원들은 자기 돈 들이지 않고 필수의료 인력을 보강할 기회를 얻는 반면, 나머지는 이전보다 더 공동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소한 물이 흘러야 낙수효과도 작동한다. 의사가 없는데 어떻게 의사를 뽑나? 공급 증가가 맞물리지 않으면, 다시 말해 의사 수 부족이라는 ‘메인 오류’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의료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의대 정원이 핵심이다.”

의사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핵심은 전체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 분야, 필수 과의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사 수 증원은 오답이다”(‘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 8월8일). 숫자가 아니라 인력 배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그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한국의 의사 수는 부족한가?

우선 절대 수를 보자. 2020년 기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수는 한국이 인구 1000명당 2.5명(한의사 제외하면 2명)으로 OECD 평균 3.7명의 67.6% 수준(한의사 제외 시 54.1%)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한국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의사는 빠르게 늘고 있으므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의대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지 않는 편이다. 2020년 한국의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13.2명)의 절반 남짓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한국 의사 수가 다른 나라의 평균 이하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다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장하는 바대로 배치에도 문제는 있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서울은 3.1명인데 경북은 1.4명이다. 2015~2019년 충북과 경북, 대구, 경남에선 응급환자 중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 수보다 더 많은 환자가 사망했지만 서울에선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 환자가 가장 많이 생존했다(보건복지부, 모두 2019년 기준).

피부과·안과·성형외과는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인기 과’이다. ⓒ연합뉴스

수가 올리면 필수의료 선택할까?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도 인기 전공과 기피 전공이 존재한다. ‘돈을 잘 번다’고 인식되는 피부과·안과·성형외과(피안성), ‘몸이 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기 과로 꼽히는 ‘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정재영)’, 개원이 용이하고 기대 수입이 높은 정형외과는 정원보다 많은 전공의가 지원한다. 반면에 기피 전공은 정원보다 지원이 적다. 저출산 직격탄을 맞은 소아청소년과의 2022년 전공의 확보율은 28.1%에 그쳤다. 흉부외과(47.9%), 외과(76.1%), 산부인과(80.4%)도 정원보다 적은 수의 전공의를 확보했다(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의사를 늘린다면 서울보다는 지역에 머물 의사,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보다는 외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연 400명씩 10년간 4000명 늘리면서 그중 3000명을 ‘지역 의사’로 양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당 지역 출신을 위주로 선발해 국가와 지방정부가 장학금을 주는 대신,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제도다. 전공도 ‘지역에 필요한 필수 전문과목’으로 한정한다는 계획이었다.

지역에 필수의료 부문을 전공한 의사가 부족한 데 따른 대책이었지만, 의무복무 기간 10년이 너무 짧은 데다 그 뒤 서울에 올라와 피부과 같은 비필수과 개원을 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피부과·성형외과 개원은 전문의 자격이 아닌 의사 면허만 취득해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의사제와 함께 내놓은 ‘공공의대(폐교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역학조사관 등으로 육성하는 국립 의학전문대학원)’의 학생을 ‘시·도지사 추천’으로 뽑는다고 알려지면서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추천제에 대한 반발과 뒤섞이면서 의사 파업으로 이어졌다.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수가를 올리면 더 많은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종사할까? 2009년부터 흉부외과는 100%, 외과는 30% 수가를 가산하고 있다. 두 전공은 2009년 각각 77명(흉부외과), 322명(외과)이던 1년 차 전공의 정원을 2022년 48명, 180명으로 줄였는데도 전공의 충원율은 같은 기간 26%에서 47.9%(흉부외과), 63%에서 76.1%(외과)로 오르는 데 그쳤다. 병원들이 흉부외과 수가 가산금의 약 50%를 (전공의·전문의 인건비로 사용하지 않고) 병원의 수입으로 썼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단국대 산학협력단, 〈흉부외과·외과 전문의 수가 가산제도 개선방안 연구〉, 2017).

수가 사용처를 의사 고용이나 처우 개선으로 제한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일단 수가 개선의 기준이 모호하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무리 보험료를 올려도 다른 과목 수가를 적절히 조정하지 않는 이상 필수의료 수가만 무한정 올리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피부과나 성형외과가 인기 있는 것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수의료 행위의 수가 개선을 비급여 진료의 시장가격 기준으로 할 경우, 그 가격의 적정성은 차치하고 가격 자체가 제대로 공개되어 있지도 않다. 의사들은 비급여 가격 공개에 동의하지도, 비급여를 중심으로 수익을 내는 피부과·성형외과 의원 개원을 줄일 방법을 내놓지도 않고 있다. “저수가 진단에 동의하더라도, 이 구조를 어떻게 깰지는 다른 문제다. 과연 수가를 어디까지 높여야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할까? 간과해선 안 되는 현실은, 지금도 한국의 의사 인건비가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라고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말했다.

ⓒ시사IN 최예린

의사 수 부족을 가늠할 지표 중 하나는 의사의 가격, 즉 임금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사(전문의)의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봉직의(병원에 고용된 의사) 평균임금은 구매력 평가 기준(PPP) 연 19만5463달러, 개원의의 평균임금은 연 30만3007달러다(〈그림 1〉 참조). 봉직의·개원의 모두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OECD 나라들의 봉직의가 임금노동자 소득 대비 평균 2.7배, 개원의가 평균 4.6배를 버는 반면 한국의 봉직의는 임금노동자 소득의 4.6배, 개원의는 7.1배를 번다(〈그림 2〉 참조). 임금 절대치 평균을 보면 봉직의가 평균 연 1억8539만원, 개원의가 2억9428만원을 번다. 최근 10년간 의사 임금은 연평균 5.2% 증가했다(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시사IN 최예린

의사 포털 메디게이트 ‘연봉 인덱스’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신경외과 전문의(봉직의) 평균임금은 연 2억3534만원으로 정형외과(2억667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임금을 얼마나 올리면 의사가 신경외과에 지원해 뇌혈관을 전공할까? 지역에선 서울보다 높은 급여를 제시해도 의사들이 오지 않는다. 앞서의 연봉 인덱스를 보면, 봉직의 평균 연봉은 전남이 3억3854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서울은 2억950만원으로 제주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지방 소멸은 의사 증원이나 배치를 뛰어넘는 국가적 난제다. 교육과 문화, 의료 인프라가 잘 작동해야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해서 살아갈 텐데 이 선순환이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의사가 부족하니 근무가 고되고, 다시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측면도 있다. 악순환이다. 다만 어떤 유인책도 현재 의사 수를 그대로 두고는 작동하기 어렵다고 현장에서는 체감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의료 현장에 생긴 중요한 변화는 의사 수요를 더 늘린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2월부터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주 100시간을 훌쩍 넘던 전공의의 노동시간이 주 80시간으로 단축되었다. 현장에서 완벽히 지켜지진 않지만 이전보다는 의료인력의 공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다. 한국어로 옮기면 ‘진료 보조인력’인 PA들은 사실상 의사의 기능을 일부 수행한다.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영역은 ‘의사 보조’에 한정되어 있지만 응급상황에는 이 경계를 넘나든다. 보건의료노조가 2020년 8개 대학병원을 조사한 결과 PA 인력은 총 717명으로, 병원 한 곳당 평균 89.6명이 PA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시사IN〉 제675호 ‘PA 간호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 참조).

8월23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을 지나는 간호사. ⓒ김흥구

당장 정원 늘려도 12년 이상 소요

정부는 의료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PA를 제도화하려 하지만, 의협은 여기에도 반대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배우는 게 다르고 면허도 다르다. (PA를 제도화한다면 간호사들이) 의대를 가서 다시 배워야 한다. 의사와 다르게 배운 이들이 의사 영역까지 치료하다 잘못되면 환자는 누가 책임지나?(박수현 의협 대변인)”

의사단체는 의사 증원에 반대한다. 다른 직역에 역할을 일부 넘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 수술실에, 응급실에 의사가 없어서 힘들다고 호소한다. 전공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의사는 더 많이 필요해졌다. “자가당착이다. 보통은 업무가 힘들면 사람을 더 늘려달라거나 다른 부서로 부담을 나눠달라 할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모순의 귀결은 의료서비스 붕괴다. 남들이 안 하려는 필수의료부터 ‘품절’된다. 지금은 막혀 있지만 의사 정원 확대, 의사의 직무에 대한 재조정은 사회적 의제로 반드시 설정되어야 한다(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그에 따르면 “이미 늦었다”. 기존 인력의 재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 9만9492명 중 4만1988명(42.2%)이 의원에서 일한다. 한국 의사 평균연령이 47.9세다. 필수 분야 지원책이 생긴다고 해서 성형외과나 피부과 개원의가 갑자기 병원에서 뇌혈관 수술 전문의로 일하기는 어렵다.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펠로 2~3년이라는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내년에 당장 의대 정원을 늘려도 12~14년이 걸린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는 이번 사건을 의사 증원으로 연결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인력 양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의사들을 지역의 필수의료에 종사하도록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들려준 대안은 퍽 냉소적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방법은 의사를 ‘수입’하는 것이다. 동남아든 중국이든, 필수의료를 전공한 외국인 의사와 계약을 맺고 이들을 지역의 필수의료에 종사하게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시민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있겠나? 당장 수술할 의사가 없는데. ‘아산병원 간호사도 수술 못 받으면 나는?’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어떤 지역에선 이미 현실이다. 아산병원 간호사인 바람에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서울 외 지역의 주요 병원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해 운영비를 30~70% 지원해왔다. 정작 국내 최대 병원에 뇌수술 의사가 두 명이었다. 아산병원 간호사의 사인인 지주막하 출혈로 응급실에 온 환자 중에서 전원된 환자의 비율은 2020년 11%로 대동맥 박리(16.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중증 응급환자 전원율은 전국 평균이 4.1%인 데 비해 전남이 8.6%로 가장 높고 충남이 8.3%로 뒤를 이었다(〈2020 중증응급질환 응급실 내원 보고서〉).

국가가 의사 면허 수를 통제하는 이유는, 한 사회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공적인 가치를 성취하는 데 그만큼 영향을 많이 미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필수의료 확충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 시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부담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의사를 왜 양성하는가.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그를 위해 각자 무엇을 더 부담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다시 무거운 과제를 받아들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