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아니, 모두 죽인다" 햄릿이 휘두르는 복수의 칼

김성현 기자 2022. 9.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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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스맨'. 유니버설 픽쳐스

언제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는 심사숙고형 햄릿과 목표를 향해서 돌진하는 행동파 돈키호테. 인간형을 둘로 구분한 러시아 문호 투르게네프 때문에 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노스맨’(감독 로버트 에거스)을 보는 동안에는 햄릿에 대한 고정관념은 잠시 잊어도 좋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북유럽 전설의 왕자 ‘암레트’(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영화 주인공. 아버지인 국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숙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초반 설정은 같다.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한 뒤 결과적으로 아들을 저버리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영화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 왕자에 대한 성격 묘사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되뇌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소심한 모습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암레트는 근육질 상체를 당당히 드러내고 복수의 칼날을 가는 전사에 가깝다. 셰익스피어의 고풍스러운 심리극이 할리우드 스타일의 정통 복수극으로 바뀐 셈이다.

미국 드라마 ‘바이킹스’처럼 북유럽 신화나 역사를 다룬 작품에는 일종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정형화된 틀이 있다. 노출이나 폭력 강도가 높고 야만적인 남성상도 거리낌 없이 묘사한다는 점이다. ‘노스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잔인한 살육 장면 때문에 국내에서도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화 '노스맨'의 니콜 키드먼. 유니버설 픽쳐스

하지만 맞춤형에 가까운 호화 캐스팅은 영화의 미덕.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과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의 주인공 스카스가드가 근육질 왕자 암레트 역을 맡았다. 니콜 키드먼은 비정하게 아들을 저버린 왕비 역,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여주인공 애니아 테일러 조이는 암레트의 연인 ‘올가’ 역으로 출연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오필리아가 연인과 가족 사이에서 흔들리는 비극적 주인공이었다면, 영화의 올가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인상으로 묘사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이선 호크가 영화 초반에 살해되는 비운의 국왕 역을 맡는 등 조연과 단역까지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맡았다. 육박전에 가까운 전투 장면 묘사도 빼어나다.

북유럽 전설의 철저한 세속화라고 영화를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환골탈태와 역발상에 능한 작가였는지 되돌아볼 기회가 된다. 북유럽의 거친 전사를 고상한 덴마크의 왕자로 변모시켰으니 말이다. 어쩌면 암레트를 햄릿으로 재창조한 것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공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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