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파티션을 찾아서

서울문화사 2022. 9. 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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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회사 선배들의 노력이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얇은 마분지 소재의 갈색 폴더를 사무실 책상 양쪽 모서리에 끼워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둔 사람, 책상 양쪽에 과월호를 높게 쌓아 출근 즉시 그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 책상을 넓게 쓰길 포기한 채 책상 한쪽에 컴퓨터 본체를 올려둔 사람까지.

봉지에서 막 꺼낸 국수 면처럼 빽빽하게 건물이 늘어선 도시의 빌딩 안에 또 빽빽하게 사람을 채운 모습은 그저 도시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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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짧은 직장 생활로 미루어보건대,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파티션이란 언제나 필히 사수해야 할 그 무엇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회사 선배들의 노력이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얇은 마분지 소재의 갈색 폴더를 사무실 책상 양쪽 모서리에 끼워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둔 사람, 책상 양쪽에 과월호를 높게 쌓아 출근 즉시 그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 책상을 넓게 쓰길 포기한 채 책상 한쪽에 컴퓨터 본체를 올려둔 사람까지. 파티션을 향한 그들의 지독한 갈망이 느껴졌다.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이란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특정한 거리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인류학자 홀은 이때 사회적인 구역을 최소 120cm라고 봤다. 사회적 관계 안에 있는 타인이 이 거리 안으로 진입하면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만 같은 불쾌함을 느낀다. 개인 공간의 기능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트레스 요인을 피하기 위해서, 자극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행동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 프라이버시를 획득하기 위해서 등등.

인간은 타인으로부터의 적당한 거리를 보장받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건축에서는 이를 설계 조건의 일부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휴먼 스케일에 맞고, 여러 주거 행동을 영위할 수 있는 기물의 배치나 평면 계획이 잘된 건물을 좋은 건축이라고 친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의 직장 생활이 이뤄지는 지역은 좋은 건축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봉지에서 막 꺼낸 국수 면처럼 빽빽하게 건물이 늘어선 도시의 빌딩 안에 또 빽빽하게 사람을 채운 모습은 그저 도시의 일상. 그래서 나의 선배들, 그리고 곧 직장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그토록 마분지 파일로, 과월호로, 뜨거운 김을 내뿜는 컴퓨터 본체 안으로 숨어들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사무 공간의 가구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허먼밀러가 출시한 미끈한 오피스용 파티션과 놀에서 나온 푹신한 쿠션을 단 오피스 디바이더 같은 ‘궁극의 파티션’을 알게 됐을 때의 환희감이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개인 공간’에 대한 만족도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월급보다 비싼 고급 파티션을 설치해줄 리는 만무했으니, K-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나뭇잎 모양의 이케아 뢰바 캐노피로 개인 공간의 뚜껑을 덮어보기도 했고, 국내 굴지의 기업 데스커의 고정식 파티션도 사용해봤다. 기능 면에서 부실한 것은 하나도 없고, 개인 공간도 무리 없이 지켜졌으나 날이 갈수록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파티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트라의 알그(Algue)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동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로낭 & 에르완 부홀렉 형제가 디자인해 선보인 알그는 섬세한 미역 줄기처럼 보이는 유닛 여러 개를 연결해 천장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도록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사람의 시선도 어른어른 차단하면서 장식 효과까지 뛰어난 이 디자인 아이템이야말로, 공간을 지켜주면서도 삭막한 사무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멋진 능력을 지닌 물건. 가격은 몸집 큰 오피스용 가구보다 훨씬 저렴하다. 유명한 건축가가 개인 공간을 치밀하게 계산해 설계한 사무실도, 벌판처럼 넓은 사무실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궁극의 파티션, 알그가 내 곁에 있다면.

에디터 :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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