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몰리며 '보고 또 보고'..해묵은 신파에 '고개 돌리고'

김유태 2022. 9.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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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 보낸 극장가
눈에 띄는 점 3가지
1988년 `탑건` 개봉 이후 34년 만에 `탑건: 매버릭`으로 돌아온 톰 크루즈.
서둘러 온 가을처럼, 극장가 열기도 기대와 다르게 너무 빨리 식어버렸다. 살아나는 줄 알았던 영화계가 2년간의 공백기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해져 낯 모르는 타인과 영화 보기를 꺼리는 관객들, 한 장당 1만5000원에 육박하는 티켓 가격으로 극장을 비선호하는 분위기 등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극장 공기가 늘 썰렁했던 것만도 아니었다.

'범죄도시2'는 1000만 관객을 달성했고, 외화 '탑건: 매버릭'은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육사오'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연출한 작품이 기대작을 앞질러버리는 기현상도 목격된다. 예측불가 '요물'이 돼버린 스크린의 효자와 불효자들, 영화 흥행의 방정식은 어떻게 달라진 걸까.

전염병 확산이 잦아든 뒤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전부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버렸다는 주요한 특징을 지닌다. 소포모어 징크스란 높은 평가를 받아 흥행한 작품의 속편을 제작했는데, 속편이 전편에 비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전작이 쌓아올린 기존의 명성까지 갉아먹는 현상을 뜻한다. 올해 5월 이후 개봉한 '범죄도시2' '탑건: 매버릭' '한산: 용의 출현'은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속설을 보란 듯이 깨며 흥행에 성공했다.

'탑건: 매버릭'은 전편인 '탑건'이 개봉된 1988년 이후 34년이란 시차를 두고 이제 전설적인 인물이 된 매버릭의 삶을 통해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전투기와 오토바이를 타고 레이스를 벌이거나, 탑건 스쿨의 최우수 졸업생 '아이스맨'과 시간을 뛰어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전작 '탑건'이 보여준 익숙한 세계관을 시간적으로 확장해냈다.

전편이 흥행에 성공한 경우 속편 관객들은 관람 시 스토리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비슷한 클리셰 때문에 따분해하거나 지루해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관 확장이 불가피한 이유다.

'탑건: 매버릭'이 전작의 세계관을 시간적으로 확장한 반면 '범죄도시2'의 경우 세계관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는 과감한 시도를 보였다. 마석도 형사의 무대가 1편의 금천구 가리봉동에서 베트남 호찌민으로 넓어진 것이다. 현재 3편과 4편의 제작을 준비 중인 '범죄도시' 시리즈는 많게는 8편 정도로 제작될 예정이다. 제작에 들어간 '범죄도시3'의 중심 빌런(악역)이 일본 야쿠자라는 점을 볼 때 '범죄도시' 시리즈는 베트남·일본을 넘어 꾸준히 세계관을 확장하는 영화를 선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추석 명절 극장가를 찾는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도 세계관을 확장했다. 북한의 현빈, 남한의 유해진이 연기하는 림철령·강진태 형사 캐릭터는 1편과 동일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배우 다니엘 헤니가 미국 FBI 요원으로 투입돼 배경 국가를 넓혔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영화 '육사오'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던 작품인데도 오직 입소문만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국내 박스오피스는 1위에 '육사오', 2위에 '헌트', 3위에 '한산'이 올랐다. 57억원짜리 1등 당첨 로또 복권을 주운 말년병장 천우가 바람결에 실수로 로또를 분실하고, 이를 우연히 주운 북한 병사 용호와 당첨금 지분 협상에 나선다는 줄거리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지는 '극한직업'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육사오'의 제작비는 대작에 비해 소액인 50억원이었다. 올여름 200억~300억원 이상의 텐트폴 영화가 참패한 점에 비춰 보면 유의미한 성적이다. 텐트폴 영화란 유명 감독과 배우, 거대한 자본을 투입해 제작함으로써 흥행이 확실한 상업영화를 말한다. 영화 '비상선언'과 '외계+인'은 1000만 관객을 모은 한국 영화에 다수 주연으로 출연했거나 1000만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일지라도 후속작까지 1000만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관객의 냉정한 시선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간판스타인 송강호·이병헌·전도연이 모두 출연해 관심을 끈 `비상선언`.
'비상선언'은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한국 영화의 간판스타인 송강호·이병헌·전도연이 모두 출연했다. 특히 '관상' '더 킹'을 연출한 충무로의 상업영화 귀재 한재림 감독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비상선언'은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견디기 힘들어지는 과도한 신파, 다소 억지스러운 반일감정까지 집어넣으면서 평단과 대중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작보고회에서 한 주연 배우가 "당연히 1000만 관객 영화"를 운운한 일이 민망하게 됐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SF와 사극을 섞은 기발한 상상력, '한국판 어벤져스'를 떠올리게 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시도가 신선했지만, 선악 구도가 불분명해 피로감을 주는 스토리라인 등의 이유로 관객에게 외면받았다. 절반만 공개됐고 내년 2부 개봉을 앞둔 상황이다. '외계+인'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 등을 만든최동훈 감독의 첫 흥행 실패작으로 기록되게 됐다. '오징어 게임'의 후광이 없지 않지만 처음 감독으로 나선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대중에게 호소력이 더 높았다는 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흥행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극장가에 새롭게 등장한 흥행 방정식은 'N차 관람'이다. '영화는 한 번 보고 마는 것'이란 오랜 고정관념이 이제 옛말이 됐다. N차 관람이란 같은 영화를 한 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는 관람 행위를 뜻하는 신조어다. 수학에서 자연수를 뜻하는 알파벳 'N'에 회차를 뜻하는 한자 차(次)를 붙인 용어인데, 우리말로 쓰면 '반복 관람' 내지 '재관람'이란 표현이 적당하다.

올해 영화계에서 `N차 관람`으로 주목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영화계 뉴트렌드인 N차 관람을 견인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이 영화는 당초 관객 100만명 돌파 즈음에 극장가에서 하차하는 방안이 논의될 정도로 성적이 저조했으나 N차 관람 열기에 힘입어 극장가에서 장기 상영이 결정됐고, 그 결과 '헤친자(영화 헤어질 결심에 미친 자)' '헤결앓이(헤어질 결심 앓이)'라는 신조어까지 파생시켰다.

'헤어질 결심'은 특히 관객들이 스시를 미리 사 들고 관람하다가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이 경찰서 내에서 스시를 먹는 장면에서 꺼내 함께 먹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관측되고 있다. 과거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주민들이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을 때 미리 사둔 비슷한 모양의 연양갱을 먹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헤결'에 앓는 중인 어두운 극장가의 '헤친자'들은 최근 출간된 정서경 작가의 '헤어질 결심' 각본집을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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