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학과의 30% 없애고..총장이 매일 '취업현황' 챙긴다 [송의달 LIVE]
전남 무안군 무안읍에 있는 초당(草堂)대학교는 백제약품과 초당약품 창업자인 고(故) 김기운(金基運) 박사가 1994년 세웠다. “나무를 키우는 마음으로 사람을 키운다”는 건학(建學) 이념에서였다. 무안군 총인구는 현재 9만명 남짓하다. 서울에서 326㎞쯤 떨어진, 국토 남단 소읍(小邑)에 위치한 이 학교가 생존하는 힘은 뭘까?
지난달 16일 기자가 찾아간 학교는 정문 입구부터 남달랐다. 교명(校名)이 적힌 탑 위에 대형 항공기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하단 측면에는 ‘미래를 향해 날아오르는 초당인의 기상’이라는 글자와 함께 항공학부 산하 5개 학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學長제 폐지...학생 수 절반으로
김경조 교무부총장 겸 입학처장은 “초당대의 간판이 항공학부임을 알리는 상징물”이라며 “신입생 총 모집인원 760명 중 항공학부가 216명으로 가장 많다”고 했다. 올해 28살의 ‘청년(靑年) 초당대’가 건재하는 비결이 자신이 잘 하는 곳에 역량을 쏟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는 말이다.
학교는 이를 위해 2014년 말 6개 학부 24개 학과이던 학제(學制)를 4개 학부 17개 학과로 축소했다. 입학 정원도 1800여명에서 760명으로 줄였다. 배영찬 한양대 교수(전 DGIST 부총장)는 “7년 새 전체 학과의 30%에 해당하는 7개 학과를 없애고 입학생을 절반 이하로 줄인 것은, 말은 쉬워도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국내 4년제 종합대학교에 있는 ‘학장(學長)’, ‘학부장’ 자리도 초당대에는 없다. 모든 학내 업무를 총장과 학과장, 처장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 대신 초당대는 항공·간호·조리를 3대 특성화 분야로 정해놓고 거의 모든 예산과 자원을 쏟아붓는다. 전형적인 강소(强小) 대학 모델이다. 김경조 부총장은 “3개 특성화 분야 소속 8개 학과에서 뽑는 신입생(500명)이 전체 입학생의 66%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3개 특성화 분야 경쟁력은 전국 왠만한 대학을 뺨친다. 23명의 비행 교수와 정비사 10명이 교육용 항공기 16대를 갖고 파일럿·정비사·승무원을 양성하는 항공학부는 철저하게 실무(實務) 위주 교육을 한다.
◇특성화 학과 경쟁력, 전국 수준
민간 항공사 기장(機長) 출신인 김창용 항공운항학과장은 “인접한 무안국제공항과 해남군 산이면에 이착륙 전용(專用) 활주로와 비행장을 갖고 있다”며 “외부 업체에 위탁훈련을 많이 하는 타 대학과 달리 우리는 ‘콘도르비행교육원’과 ‘항공기술교육원’을 캠퍼스 안에 직영해 학생 교육의 품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항공기술교육원은 호남(湖南)에서 유일하게 국토교통부 인가(認可)를 받았다.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제주항공·진에어 등 유수의 항공사들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승무원 취업에도 앞서 있다. 서준영 학생(25·항공운항과 4년)은 “부산에서 고교 졸업후 첫 1년은 기숙사에서 보냈고 지금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다. 비행 실습을 새벽과 밤에도 맘껏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박희관 교수(항공정비학과)는 “무안국제공항 인근 항공정비특화산업단지(MRO)가 올해 12월 완공되면, 정비 관련 취업 문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는 전국 4년제 종합대학교 중 최초로 항공드론(drone·무인 비행기)학과를 개설했다. 무인(無人)항공기(UAV) 산업 급성장과 군사용 무인 기술의 민수용 허용 등을 내다본 조치였다. ‘드론 월드(drone world)’로 이름 붙인 항공학부 강의동 4층에는 실습실 8개와 정비실, 드론 조종 시뮬레이터 장비, 소형 취미형부터 고가(高價) 대형 드론까지 다양한 실습용 드론이 갖춰져 있다.
양명섭 항공드론학과장은 “내년 초 30명이 졸업하는데 올 8월 4명의 선(先)취업이 확정됐다”며 “드론 운용은 기본이고 제어와 시스템 개발 역량까지 갖춘 세계적 수준의 드론 엔지니어 배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4년제 대학 가운데 전국에서 두 번째인 1995년 문을 연 호텔조리학과는 동문 숫자와 축적된 노하우가 풍부하다. 기자가 찾아간 올해 8월16일은 방학 중이었지만, 국제요리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이 레시피를 만들며 실습 훈련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돈독한 사제 관계...실습실 24시간 개방
정해옥 교수는 “학기당 120여명의 학생들이 보통 3개 국내외 요리대회에 출전해 금상(金賞) 50여명을 포함해 70명 안팎이 상을 받는다”며 “실습실을 24시간 개방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학생들이 대회에 나갈 때는 교수들도 새벽 2~3시에 모여 함께 출발할 정도로 사제(師弟·스승과 제자) 관계가 돈독하다”고 말했다.
건물 1층 전체를 10개 각종 요리 실습실로 꾸며 놓고 특1급 호텔 총주방장, 제과기능장, 조리기능장, 월드 마스터 세프 출신 교수들이 일대일 도제(徒弟)식 교육을 한다. 라채일 호텔조리학과 학과장부터 서울 리츠칼튼호텔 총주방장 출신이다. 그는 “해외 호텔, 관저(官邸) 조리사로 취업하는 경우를 포함해 2021년도 졸업생 기준 취업률은 90%를 넘었다”고 말했다.
국내 10대 간호학과 중 하나로 선정된 간호학과는 재학생의 70% 정도가 비(非)광주·전남 지역 출신이다. 학교에서 만난 최하늘 학생(23·간호학과 4년)은 “교수님들이 수시로 야간 수업을 하며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고 현장 실습도 충실하다”고 말했다. 졸업생 중 상위 20%는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에 매년 취업한다.
◇교육부 차관 출신, 8년째 대학 경영
박종구 총장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는 비밀 병기이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수도권 대학교 총장·이사장을 역임한 뒤 8년째 초당대학교를 이끌고 있다. 청와대 교육 담당 선임행정관 출신인 임준희 전(前) 경남도 부교육감은 “교육부 차관을 지낸 인사가 인구 10만명도 안 되는 지역 사립대학 총장을 맡아 10년 가까이 재임하는 경우는 전례(前例)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총장은 학교 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디테일 경영’을 한다. 일례로 그는 학과장들의 학과별 취업률 현황 보고(報告)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그의 매주 첫번째 일정도 취업 대책회의이다.
목포에 거주하며 출퇴근하는 박 총장은 매일 아침 7시30분쯤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국내외 출장 때도 학과별 취업률 보고는 거르지 않고 꼭 챙긴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수시로 학과별 간담회를 열어 취업 애로사항을 듣고 부족한 부분에 예산·인력 등 학교 차원의 맞춤형 자원을 투입한다.
◇광주·전남 전체 대학 중 취업률 3위
2021년 2월 초당대 졸업생들의 취업률(71.6%)이 광주·전남지역 전체 대학교 가운데 3위, 4년제 사립대학교 중 2위를 기록한 것은 그 결실이다. 같은 기간 전국대학 평균 취업률(61.1%) 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지역 대학’ 한계를 넘어 학생들의 글로벌 마인드 함양에 힘쓰는 것도 초당대의 색다른 면모이다. 2019년, 2020년 겨울방학 마다 매회 2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상대로 ‘글로벌챌린지 프로젝트’라는 장학(獎學)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학교가 총비용의 80% 이상을 지원해주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2020년에는 해외 배낭여행 20개팀과 15명의 개인 배낭여행 학생들이 미국·유럽·호주·일본·중국·동남아 등 희망 지역을 탐방했다. 정행준 학생성공진흥원장은 “코로나 팬데믹이 공식 종료되는 대로 이 프로그램을 즉시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학생, 오직 교육, 오직 취업!...‘학생 성공시대’ 여는 게 목표”
[박종구 초당대 총장 인터뷰]
“저와 교수, 교직원들의 목표는 딱 하나입니다. ‘오직 학생, 오직 교육, 오직 취업!’ 정신으로 학생 성공시대를 여는 겁니다. ‘취업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한다고 보고 거기에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박종구(64) 총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행정 및 대학 경영 전문가이다. 미국 시라큐스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아주대 교수(재정학 전공)로 있다가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으로 공직에 입문해 국무총리실 정책차장을 거쳐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2008~09년)을 지냈다.
2010년 아주대 총장직무 대행을 시작으로 한국폴리텍대 이사장(2011~14년)과 초당대 총장(2015년~현재)까지 대학 경영만 올해로 13년째이다. 2020년 말부터 광주광역시 소재 죽호학원 이사장도 맡고 있는 박 총장을 지난달 16일 초당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 총장으로서 경영 좌표라면?
“학생 중심(Customer First), 핵심 경쟁력 제고(Core Competence), 인성(Character)을 뜻하는 ‘3C’를 토대로 ‘취업에 강한 대학’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인재를 양성·배출하는 게 비전이자 목표다.”
- 학내 구조조정을 많이 했는데.
“지역대학은 생존 자체가 절박하다. 취업에 강한 강소(强小) 대학을 만들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우리 대학은 ‘취업사관학교’이다. 면학 분위기 조성과 취업률 상승을 위해 1700명을 수용하는 학생 기숙사에선 매일 밤 12시부터 와이파이 등 인터넷 사용을 차단하고 있다.”
그는 “20대 후반에 국적 항공사 부기장이 돼 8000만~9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 우리 학교 졸업생도 여럿”이라며 “현재 17개 학과 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3분의 1정도는 모집 학생을 계속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회 간부·학부모들과도 소통
-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영향은?
“코로나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위축돼 졸업생 취업에 일부 영향이 있었다. 그래도 지난해 항공학부 입학 경쟁률은 3.7대 1을 기록했다. 그만큼 경쟁력과 평판을 인정받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매년 평균 5대 1이 넘었다. 올 하반기 항공 관련 기업들이 살아나면 졸업생 취업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 학생들과도 소통하는 총장으로 알려져 있다.
“총학생회 간부들과 매학기 2차례 식사 또는 티타임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총장실에서 햄버거나 도시락 점심을 종종 한다. 삼겹살 저녁 회식도 하는데 그때는 알코올(술) 없이 맑은 정신으로 대화한다. 학부모님들을 학교로 초청해 관심사를 의논하기도 한다.”
- 취업 외 인성(人性) 교육은?
“학생들의 소통력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증진하기 위해 매년 ‘총장 추천도서’ 200권을 골라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고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도서 목록을 매년 조금씩 교체한다. 1학년 때부터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진행하는 ‘초당 인성교육’을 필수과목으로 모두 듣게 하고 있다.”
- 중앙부처 고위 관료를 지내다가 지역대 총장으로 8년째 봉직하는데.
“같은 지역 대학이라도 국립대와 사립대가 처한 여건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지역 사립대의 살 길은 실용(實用)과 실사구시이다. 교수들이 한명 한명의 학생들을 정성과 애정, 관심으로 보살피도록 독려하고 있다. 교수와 공직자, 총장·이사장으로 일한 경험과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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