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 우람한 포대능선, 꼭대기엔 바위제국..엄홍길 집터도
그림같은 원도봉계곡, 신라 그리는 망월사..사패산서 본 풍광도 압권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도봉산의 산세는 사방팔방으로 울뚝불뚝하다. 자운봉-만장봉-선인봉이 육체미 자랑을 하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도봉주능선이 힘차게 뻗어 오봉능선과 보문능선, 우이남능선으로 갈라진다.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바위봉우리들이 울룩불룩한 포대능선과 사패능선이 이어지면서 산 아래로 다락능선, 송추북능선, 안골능선이 내려간다. 능선 사이로 도봉계곡, 원도봉계곡, 송추계곡 등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고, 곳곳에 유서깊은 사찰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의정부 사람들은 도봉산을 원도봉산으로 부른다. 본래 도봉산은 경기도 땅이었으나 1949년 도봉산 정상과 도봉계곡이 서울 도봉구로 개편됨에 따라 다락능선 이북의 도봉산을 원래, 또는 으뜸이라는 의미를 붙여 원(元)도봉산으로 부르는 것이다. 원도봉산은 비공식적인 이름이지만 원도봉계곡은 정식 지명이다. 원도봉계곡은 원도봉유원지라고 불렸을 만큼 물가에 음식점과 놀이시설이 가득했으나 환경오염과 안전문제로 대부분 철거하여 본래의 자연계곡 모습을 되찾고 있다.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두고 자릿세를 받던 영업도 사라져 국립공원다운 품위도 복원되고 있다.
도봉산은 역세권 산이다. 전철 1호선(도봉역/도봉산역/망월사역/회룡역), 7호선(도봉산역), 의정부 경전철(회룡역/범골역/의정부시청역)을 이용해 등산로나 둘레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말의 전철은 언제나 등산객들로 넘쳐난다. 기자는 망월사역에서 내려 원도봉계곡을 통해 포대능선과 사패산에 오르고, 회룡계곡으로 내려오는 산행을 간다.
◇ 망월사역~원도봉계곡~망월사~포대능선 3.5㎞ "예쁜 계곡, 유서깊은 사찰, 우람한 포대능선"
망월사역에 내려도 망월사는 없다. 3㎞의 길을 오르며 땀 좀 쏟아야 절이 있다. 역 바깥으로 나와 신한대학교 캠퍼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도봉산 암봉들을 바라본다. 그곳을 향해 오르는 길은 좀 어수선하다. 오래된 골목길 풍경의 상가들을 지나, 공룡 같은 외곽순환도로 밑의 아스팔트 길을 올라, 원도봉상가의 언덕 끝에 닿는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계곡 하류의 남루했던 음식점 대부분을 헐었다. 원도봉계곡의 곱고 예뻤던 원형이 복원되기 바란다.
쌍용산장 삼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 금방 초록숲과 하얀 계곡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숲길이다. 길 초입에 이곳의 식물과 곤충, 이끼, 숲을 설명하는 자연해설판이 쭉 설치되어 있는데, 보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국의 국립공원에 가보면 해설판 앞에서 노트를 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길 옆으로 약간의 평지가 풀밭을 이룬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런 곳은 과거의 집터다. 그 흔적 중 한 곳에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살던 곳'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히말라야 16좌를 오른 산악영웅이 어릴 적부터 37년간 살았던 곳이다. 기자는 이곳과 인연이 있다.
20여 년 전 이곳에 사망사고가 날 만큼 큰 수해가 나서 계곡변에 난립되어 있던 상가들을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때 엄홍길 대장의 집만은 남겨 기념관으로 하자는 요청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주에 응하지 않던 주민들이 많아 예외를 둘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몇 년 전 엄홍길 대장과 지리산 산행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한 방을 쓰며,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니, 엄홍길 대장이 “그게 당신이었냐?”고 놀랬다. 그날 술 한잔 한 끝에, 주민등록증을 '까서' 형·아우 하기로 했다.
슬슬 가다가, 짧은 급경사 돌계단을 올라서면 두꺼비 바위 전망터인데, 이제 나무들이 많이 자라 시야를 가린다. 거기서 조금 내려가면 시야가 트인 조망점이 있다. 언제 보아도 소주 광고에 나오는 두꺼비와 닮았다. 부드럽게 올라가던 등산로는 극락교를 넘어서면서부터 가팔라진다. 땀이 솟지만 골짜기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내려온다. 덕제샘 삼거리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돌투성이 길을 맨발로 내려온다. 기자는 반달가슴곰의 '맨발'을 만져본 경험이 있다. 등산화의 밑창보다 더 단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너무 부드럽고 푹신한 발바닥이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덕제샘에서 곧 망월사, 민초샘 삼거리에 닿으니 목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의 가파른 돌길 300m를 헐떡이며 올라서면 망월사 안내도가 서 있고, 거기서 약 200계단의 고행을 해야 망월사의 상징인 영산전(靈山殿)에 닿는다. 산신령처럼 우뚝 선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바짝 다가와 영산정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세가 압도적이다. 건너편의 포대능선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서 영산전을 보면 도봉산의 바위봉우리들이 그 기운을 법당에 전해주는 풍경이 완연하다. 바깥에는 휙휙~ 바람소리 요란한데, 문을 열어둔 법당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가지 않는 듯, 참배객 두 명이 미동 없이 숙연하다.
산꼭대기 비탈의 여기저기에 축대를 쌓아 전각을 세운 망월사다. 산이 절을 품은, 절이 산을 섬기는 모습 하나 하나가 그림같은 풍경이다. 망월사(望月寺)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월성(月城/경주)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신라의 달을 그리는 절이다. 환한 보름달보다는 외로움이 서린 초생달이 비추는 절 풍경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망월사 북쪽 끝 벤치에서 산과 절의 어울림을 한참 바라보고, 포대능선으로 간다. 아무 생각없이 땀 한 바가지 쏟으며 500m를 오르니 포대능선 꼭대기의 바위제국이다. 조각처럼 빚어진 바위들이 봉우리에 얹히거나 꼽혀서 기다란 성을 쌓았고, 그 아래로 초록숲의 바다가 내려가고, 그 아래엔 도시가 건물들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금방 비를 뿌릴 듯 컴컴한 구름 아래서 도시와 바위들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 장소에 몇 번 왔지만, 올 때마다 완전히 생소한 장관이 펼쳐진다.
◇ 사패능선~사패산~회룡계곡~회룡역 7.1㎞ "사패산에서 풍경에 감동하고, 회룡폭포에서 복원을 바람하고"
산불감시초소 밑 바위무더기에서 포대능선 방향의 장관과 도시풍경을 한번 더 가슴에 담고, 사패능선으로 간다. 얼마 안 가서 소나무 고사목들이 비장하게 서있는 지점을 통과한다. 아래 기둥만 지탱되고 있을 뿐 꺾이고 부러진 가지들, 곤충과 버섯에 의해 부서지고 분해되는 잔해들을 본다. 자연스런 생태계의 순환이지만, 인생도 그러하다는 감정이입을 느낀다.
가파르고 기다란 계단에서 나는 여유있게 내려가지만, 올라오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오르다 서다를 반복한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좌우로 송추와 회룡사로 가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직진해서 1.2㎞ 남은 사패산으로 가는 능선길 옆으로 멧돼지가 흙을 뒤집어놓은 흔적이 많아진다. 확실히 인구밀도가 적은 곳에 야생동물 흔적이 많다.
길에서 약간 벗어나, 널따란 바위 한쪽에 기다란 바위가 얹힌 곳에서 도봉산 능선을 훤하게 조망하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뒷걸음치면 안 되는 낭떠러지다. 이어서 삼거리 두 곳을 지나면 곧 펑퍼짐한 돌언덕이 나오고, 거기를 올라서면 사패산이다. 사패(賜牌)란 임금이 가족이나 신하에게 땅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사패산은 조선의 선조가 그의 딸 정휘옹주가 시집 갈 때 선물로 준 산이다. 2000년대 초기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하면서 '사패산 터널'을 뚫느냐 마느냐가 큰 환경이슈가 되어 널리 알려진 사패산이다. 터널은 결국 뚫렸고, 연결도로 주변은 너무 시끄럽고 공기는 탁하다.
사패산 정상은 하얀 암반이 비스듬하게 펼쳐진 ‘운동장’이다. 여기 도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도봉산을 먼저 바라본다. 마치 산을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방금 지나온 봉우리에서 사패능선-포대능선-자운봉-도봉주능선-오봉능선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쫘악 펼쳐져 있다. 오봉 너머로 북한산의 상장능선이 뚜렷하고 그 위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구름에 살짝 가려지고 있다. 시선을 돌려 일산과 파주, 양주 쪽에 깔린 벌판과 산을 내려다보고, 의정부와 북서울의 하얀 도시 너머로 둘레를 친 수락산과 불암산 라인을 바라본다. 사방팔방이 감동적인 풍경이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올라온 작은 산에서 이렇게 넓고 막힘없는 풍경을 즐기다니, 사패산은 가성비가 높은 명당이다. 웅웅~ 하며 불어온 세찬 바람이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데, 이곳에서 태어나 수백 년 동안 비바람을 맞았을 소나무가 가지를 낮게 펼쳐 물결처럼 흔들린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란 단어에 딱 어울린다. 이 멋진 경관과 이토록 시원한 바람과 헤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암반에 앉아서, 누워서, 엎어져서 움직일 줄 모른다. 다 함께 자연이 된다.
다시 1.2㎞ 길을 돌아 나와, 회룡사 사거리 쉼터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니 찬 바람이 사라지고, 뜨듯한 공기가 밀려온다. 기다란 돌계단과 더 기다란 철계단 끝에 계곡물을 만나 땀을 씻는다. 입 속에 들어온 물이 차고 달아 수통에 채웠다. 능선에서 내려온 지 30분쯤 되어 회룡사를 만난다. 멋진 바위들이 모여 봉우리를 이룬 산자락 아래에 자리한 절이다. 회룡(回龍)이란 이성계가 아들(이방원)을 피해 거처하던 함흥에서 돌아와 머문 곳이라는 뜻이다. 이 때 ‘함흥에 간 사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겼고, 한양의 신하들이 이곳으로 와 정사를 논해 의정부(議政府)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절을 나와 시멘트 길을 내려선다. 왼쪽 계곡에 하얀 물줄기가 암반을 몇 굽이로 가르며 쏜살같이 내려가다 폭포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그러나 이 풍경의 반쪽은 시멘트 길이다. 계곡의 반쪽에 높은 축대를 쌓고 메운 도로다. 도로가 아니라면 '용이 돌아와 솟구치는' 모습의 회룡폭포는 천하의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풍경복원을 하면 좋겠다.
외곽순환도로 다리 밑부터는 도시다. 400년 넘은 회화나무를 지나 10분쯤 걸어 회룡역에 도착하면서 10.6㎞ 5시간 반의 산행을 끝낸다. 역 주변의 음식점과 카페에서 산행 뒤풀이가 한창이다. 등산의 최종 목표점은 집인데, 머나먼 집이다.
명산 도봉산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원도봉산, 오리지널 도봉산을 다녀왔다. 우람한 바위들이 도열한 포대능선과 세찬 바람이 몰아친 사패산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나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움과 품위를 갖춘 소나무들로부터 도(道)의 경지(峯)를 보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국립공원이지만, 가장 한적하고 여유로운 코스에서 가슴 벅찬 풍경을 즐기고 사색한 산행이었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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