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본 가족의 의미 - '나의 해방일지' 엄마라는 구심점으로 뭉친 가족 in

한혜리 기자 2022. 9.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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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엔 지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 한 명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결혼, 그리고 가족도 그렇다. 같은 결혼 생활도 없고, 같은 가족도 없다.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사람들. 보편성의 시선을 깨고, 가족이라는 참된 의미 아래 묶인 이들을 바라본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부쩍 '가족'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까지 가족의 일상, 구조, 역할, 심지어 위기까지 관찰하며 다룬다.

1인 가구, 핵가족이 많아지는 사회적 현상과 달리 가족의 본질 문제와 삶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중 가족의 이야기들을 담은 네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아직 작품을 못 본 사람이라면 이 점 주의하길. 
 

사진 : '나의 해방일지' 공식 포스터 ⓒJTBC
사진 : '나의 해방일지' 공식 포스터 ⓒJTBC

 "으이구, 으이구"

염가네 가족에겐 엄마의 핀잔이 끊이지 않는다. 철없는 첫째 딸, 더 철없는 둘째 아들, 말 없는 막내딸. 조용하지만, 바람 잘 날 없는 경기도의 가족. 끊임없는 핀잔처럼 엄마의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 

마흔을 코앞에 둔 첫째 딸 기정은 파마가 잘못됐다며 출근하기 싫다고 운다. 둘째 창희는 자동차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걸 그새 잊어버리고 또 자동차를 사겠다고 징징댄다. 막내딸은 말이 없어도 너무 없다.

부모가 바라는 결혼한 자식은 하나도 없고, 다들 아직도 이팔청춘처럼 소란스럽게 산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왠지 풀지 못한 숙제를 쌓아놓은 마냥 묵직하다. 

그렇지만 엄마는 걱정만 하고 있을 틈이 없다. 출근할 땐 아침을 차려야 하고, 오후엔 남편을 따라 밭일, 공장 일을 도와야 한다. 또 짬을 내서 새참을 만들고, 집에 들어와 퇴근할 아이들을 위해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

이놈들은 한 번에 제시간에 맞춰 들어오면 좋으련만, 야근이다, 약속이다 해서 제각기 다른 시간에 집에 들어온다. 그럼 또 엄마는 치웠던 상을 다시 차려내야 한다.

"하이고, 염병. 논두렁에 꼬라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쳐야 하니."

엄마의 한탄스러운 대사처럼 트럭이 논두렁에 꼬라박히는 일상의 이벤트를 아무리 겪어도 엄마의 루틴은 깨지지 않는다. 밥은 먹어야 하고, 빨래는 해야 하고, 밭일은 해야 하니까.

엄마의 일상이 어그러지면 무너지는 건 염가네의 일상이다. 고집스럽게 옛날 모습을 지키는 가정, 고집스럽게 평화와 규칙을 지키는 가정은 결국 일상을 모두 바치는 엄마의 희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날 엄마의 일상에는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맏딸의 남자친구를 보게 된 것. 매번 남자가 없다, 사랑하고 싶다고 울던 맏딸이었기에 엄마는 그의 결혼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던 터다.

그러던 맏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엄마는 맏딸의 허락을 받고 식당 옆자리에서 몰래 두 사람을 지켜본다. 아이가 있는 남자라 걱정하던 것도 잠시, 훤칠하고 다정한 남자친구의 모습에 엄마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결국 엄마는 모른체한다던 맏딸과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두 사람의 식삿값을 지불하고 반가움을 표했다. 엄마의 걱정거리가 하나 덜어진 순간이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직 집안의 고민거리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저녁밥까지 안쳐둔 채.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던 건, 갑작스럽게 퇴사하여 백수 생활을 하던 둘째 창희다. 엄마의 타박을 가장 많이 받고, 가장 덜 어른스러운 둘째.

아버지는 "내가 가족을 건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누라와 자식들이 날 건사하고 있었던 거야"라는 말처럼, 가족의 구심이 되어주지 못한다. 말수 없고, 다정하지도 않고, 무심한 아버지.

뉴스에 나오는 비정한 아비처럼 때리지도 않고, 바람 피거나 실수도 하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잘해준 기억도 없다.

그저 아버지가 했던 역할이라면, 염가네 식구가 산포에 자리 잡도록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는 거? 그마저도 실상은 엄마의 일상적 희생이 뒤따랐지만 말이다.

자식들은 아마 엄마의 희생을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군말 없이 농사일을 돕고 산포를 떠나지 않았겠지. 감정적 교류도 적고, 엄마를 희생시킨 아버지와의 사이가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 가족의 구심점이 되지 못했다. 결국 자식들은 엄마가 떠나자마자 회전력을 잃은 행성들처럼 서울로 튕겨 나갔다. 

얼마 전,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TV 인터뷰에서 "원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우연한 이유로 생명이 된다. 그것이 우리이고, 우리가 다시 원자로 돌아가는 죽음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뿔뿔이 흩어질 뿐, 나무가 되거나 지구의 일부분이 되어 계속 존재하게 된다고. 원자는 영원불멸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원자 형태로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드라마는 염가네 가족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해방을 꿈꾸게 된 계기부터,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해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인물 각자의 삶에 맞춰 그려낸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선 '해방'의 계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경기도를 넘어 서울이라는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부모의 지겨운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아직도 어린아이로 머물러있는 자기 자신에게서의 해방.

또 다른 말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그런 성장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엄마와의 이별을 결정적 계기로 활용한 게 아닐까. 

지루하고, 위태하고, 힘에 부치는 현실을 살던 아이들을 산포로 모이게 했던 염가네 엄마는 곁에 없다. 남매들을 산포로 불러올 존재가 사라졌다.

남매들은 아버지를 떠나 산포를 떠나 서울 강북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그런데도 남매들은 매년 엄마 기일이나 명절이면 산포로 돌아온다.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엄마의 존재, 엄마의 자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어쩌면 엄마는 영원불멸 원자의 형태로 산포집 부엌에, 혹은 밭에, 혹은 남매들 마음속에서 여전히 구심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로 돌아간 염가네 자식들의 모습은 산포 때와는 사뭇 다르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땐 사고뭉치 철없는 어린아이들 같았는데, 엄마가 떠난 뒤의 삼 남매는 꽤 '어른'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염창희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데, 창희는 앞서 말했듯 극 중 가장 어린아이 같던 인물이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그런가, 사고도 많이 치고 솔직하게 감정을 내뱉던 염창희. 쉴 새 없이 말이 많던 염창희는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진다. 그러곤 이렇게 말한다. 

"차오른 말을 꾹 눌러 담을 때 어른이 된 것 같다." 

그제야 이들이 겪었던 성장 과정은 소년 만화에서나 보던 '희망찬 성장'이 아니라 세상에 스며드는 '현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염창희의 전 여자친구 미정은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계란 흰자'라고 빗대어 표현한다. 엄마라는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계란 흰자 같은 자식들. 그것이 염가네 식구들의 모습이다.
 

사진 : '나의 해방일지' 공식 포스터 ⓒJTBC
사진 : '나의 해방일지' 공식 포스터 ⓒJTBC

한혜리 기자 news@wedding21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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