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명산 안일왕산] 大王소나무는 울진 산불에도 의연했다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 2022. 8. 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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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안일왕산
대왕송을 마주하자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람하면서도 외경심을 갖게 하는 풍채다.

하늘·나무·풀·구름·물소리·새소리, 이들은 자연과 계절이 만드는 싱그러운 이웃이지만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는지?

토요일 아침 대왕소나무를 만나러간다.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대광천 초소가 기점이다. 큰 빛내 개울의 돌다리 올라 나지막한 오르막길, 물푸레·개암·낙엽송·서어·쪽동백·난티나무, 관중·사초·멸가치·우산·삿갓나물. 화전민 터에는 돌무더기와 연두색 풀, 집이 있었던 흔적, 보부상 주막 터에 쇠솥이 놓였다. 초록 잎을 매단 나무는 하늘 높은 줄만 아는지 위로 죽죽 뻗었고 제 철을 만난 파릇한 생명들, 낙엽송은 어느덧 숲의 주인이 됐다.

1968년 울진·삼척무장공비들이 화전민으로부터 식량과 정보를 받거나 은신처가 될 것을 우려해 1970년 초까지 산에서 내려오도록 이주정책을 폈다. 화전민들이 밭으로 일궜던 자리에 빨리 자라는 낙엽송을 심었다. 화전火田은 숲에 불을 놓아 만든 밭으로 몇 년 동안 작물을 재배한 뒤 땅심이 약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보리·밀·콩·옥수수·감자·조·메밀 등을 심어 먹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토지조사사업과 쌀 수탈로 굶주리게 되자 화전민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입에 풀칠 하며 불안정했지만 외부의 간섭은 피할 수 있었다.

들머리인 대광천초소.

군데군데 돌탑을 만들었는데 마치 호식총 같다. 호식총虎食塚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돌무덤. 그 자리에서 화장하고 무덤을 만든다. 시루를 씌우고 부엌칼을 꽂아 원귀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 태백·정선·삼척 등 백두대간에 일제강점기까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흔했다.

땀을 몇 번 닦으면 썩바위 폭포, 원래는 돌과 바위가 많아서 석바위 폭포다. 벌써 물 한 병 다 비우고 계곡물 가득 채운다. 오르막길에 우산나물 새순이 많이 올라왔다. 몇 개 따서 씹으니 입안에 알싸한 나물 향기. 독초 삿갓나물과 닮아서 조심해야 한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 끝이 다시 브이 자로 갈라지는 것이 우산나물, 삿갓나물은 잎이 더 깊게 패였다.

낙엽송이 하늘을 덮는다.

화장실 깨끗하게 쓰는 오소리

한편에 조그만 굴이 있는데 밖에 흙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오소리 똥 굴. 오소리는 화장실용 굴을 따로 만들어 쓰는데 고양이만큼 정갈스럽다. 똥 굴이 가득 차면 그 옆에 새로 판다. 오소리길이 오솔길이 됐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마다 그을음이 붙어 있다. 1980년대 산불 난 지역인데 아직도 숯 검댕이 그대로 있고, 불 먹은 소나무는 밑둥치 갈라져 애처롭다. 폭포에서부터 쉬엄쉬엄 땀이 나긴 하지만 그다지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오르막 삼거리 못미처 벗겨진 수피에 새살이 돋아 겨우 회복된 나무도 있다. 굴참나무 군락지. 껍데기 통째로 살을 뜯긴 나무들이 애처롭다. 수십 년 전 피해를 입은 것인지 밑둥치 부분은 오래되어 까맣고 위쪽은 겨우 목숨만 붙었다. 굴참나무 껍데기 널빤지로 지붕을 만든 것이 굴피집이다. 반면 소나무·전나무를 얹은 것은 너와집, 개마고원·태백산 지방에서는 느에집·너새집이라 했다.

망부송. 가지에는 부엉이방귀나무가 있다.

과거에는 코르크층이 발달한 굴참나무줄기를 벗겨 바다그물을 띄우거나 표시하는 부표浮標, 낚시찌·방수재료·병마개 등으로 다양하게 썼다. 그러나 와인 마개만큼은 아직도 굴참나무 코르크를 쓴다. 스티로폼 종류로 바꾸고 있지만 술맛이 못하다는 것. 생나무를 벗겨 가공한 코르크는 비윤리적이므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삼거리에 있는 망부송望夫松은 성황당길 오르는 지아비를 기다리는 나무. 몇날 며칠 걸리는 보부상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낙의 염원이 소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껴본다.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래선지 이 소나무에 반지 모양의 불룩한 기형 가지들이 많은데 소나무 혹병이다. 산불로 송이 산을 다 태워버린 일행은 '송이방망이'로 부르며 이런 곳에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한다.

소나무 혹병은 가지에 앉은 부엉이가 방귀를 뀌면 독해서 혹이 만들어진다는 것. 참나무 포자가 바람에 날려 소나무에 생기는 병인데 부엉이방귀나무라 불리는 복을 주는 나무, 복력목福力木이다. 새, 솟대, 쌀독의 됫박을 만들었고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부엉이 소리가 "부엉 부엉 부흥 ~ " 나중엔 부흥으로 들린다 해서 부흥富興상회 이름도 많았다. 부자 되어 잘 산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불탄 낙동정맥. 지난 봄 울진삼척 대형산불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시 필자는 산림청장과 함께 산불진화에 힘썼다.

안일왕의 전설이 깃든 산

산길 오른쪽에 도발적인 과부송을 만난다. 대왕송과 가까이 있으니 왕비송이라 부르자고 한다. 둥굴레·우산나물·삽주, 산조팝·굴참·서어·꼬리진달래·철쭉·쇠물푸레·박달·신갈·소나무 지나서 대왕소나무 옆길로 잠시 숨 고르다 안일왕산(해발 819m) 정상에 서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푸른 물결 동해를 창파蒼波, 또는 창해蒼海, 강릉의 예국濊國, 삼척 실직국悉直國, 울진 파단국波但國을 창해삼국이라 했다. 2,000여 년 전 일이다. 이들은 자주 전쟁을 벌였는데 실직국이 파단국을 침략하나 예국으로부터 실직국도 공격당해 안일왕安逸王은 이곳 산성으로 피신했다. 예국은 고구려에, 실직국은 사로국에 병합된다.

안일왕산과 왕피천은 왕이 피난 와서 붙여졌고, 인근의 통고산은 적군에 쫓기다 재가 높아 통곡했대서 통곡산通谷山, 통고산通高山(1,067m)으로 이름이 굳어졌다. 성터에는 군데군데 널브러진 돌이끼에 점령당한 석재들, 모든 것이 발아래 있으니 천연의 요새다.

진달래는 활짝 폈는데 꼬리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았다. 이른 봄에 피는 진달래와 다르게 이른 여름 무더기로 하얀 꽃이 핀다. 경상·강원·충청·평안도에 산다. 단양 제비봉이 집단서식지, 산양山羊이 좋아하는 먹이라서 꼬리진달래 자라는 곳에 꼭 산양 배설물이 있다.

대왕송을 관람하고 있는 일행들.

화마에서 금강송 지키기 위해 사투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지난 3월 우리들이 밤낮없이 지켰던 금강소나무 군락지에 그을린 임도가 보인다. 멀리 검붉게 생채기진 낙동정맥의 산하. 저기가 바로 백마고지다. 화마와 밀고 밀리던 곳. 그 무렵 강풍과 극심한 가뭄으로 울진·삼척·영월·강릉·동해 등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울진·삼척에서만 2만여 헥타르가 소실됐다.

내려가는 길, 신발이 미끄러지며 산성 터 돌이 굴러간다. 이끼에 싸여 수천 년 묵은 돌이다. 돌 하나에 애환과 돌 하나에 이야기와 돌 하나에 전설이 깃들었을 것이다.

드디어 독야청청 낙락장송獨也靑靑 落落長松. 천년 신송을 알현하니 거룩한 존호는 대왕송이다. 300년 노송老松을 거쳐 만고풍상 다 겪은 고송古松의 시기를 지나면 신송神松, 600세라지만 700세 더 되겠다. 이곳에 서면 희망과 열정,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다.

우람하면서도 외경심을 갖게 하는 소나무는 솔이다. 솔은 으뜸·높음·우두머리·신성·태양의 뜻. 나무의 우두머리·태양의 나무다. 소도, 솟대도 솔에서 나왔다. 고구려는 나라 이름을 천하제일 의미로 솔내·솔본이라고 불렀으니 겨레의 나무인 셈이다. 껍데기가 붉어 적송赤松, 내륙에 자라 육송陸松, 곰솔에 비해 잎이 부드럽고 줄기가 늘씬해서 미인·미녀송으로 부른다. 소나무는 선비의 절개와 충절의 상징이다. 어떤 임금이 소나무 아래서 소나기를 피해 나무에게 벼슬을 내렸는데 목공木公으로 부르도록 했다. 품계의 최고인 공작이다. 공公·후侯·백작伯爵이므로 가장 훌륭한 나무, 한자표기 송松=木+松이 됐다.

일행들은 일제히 대왕소나무 앞에 서서 고유제를 올린다.

"신臣 산림청장 ㅇㅇㅇ, 신 울진부군수 ㅇㅇㅇ, 신 남부지방산림청장 ㅇㅇㅇ는 2022년 3월 4일 울진삼척 대형산불을 당하여 9박10일간 악전고투 하면서 매일 헬기 82대·진화인력 1,000여 명을 동원 ~ ~ 금강송군락지를 사수하였습니다. ~ 대왕송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앞으로도 잘 보살펴주십시오."

당시 산림청장과 나는 헬기로 불타는 현장을 굽어보면서 조속한 진화를 위해 목숨 바쳐도 여한이 없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새재 조령성황당.

소나무 베면 곤장 100대

정오 무렵 벼락목 근처 산앵도 이파리는 앙증맞은 연록색이다. 망부송을 지나 말안장 지대에서 잠시 쉬는데 당단풍·생강·소나무 숲 사이로 안일왕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오전에 올라온 대광천으로 내려가지 않고 찬물내기로 걷는다. 소나무 아래는 어김없이 철쭉이 자란다. 이곳에 산불이 나고 40년 흘렀지만 아직도 그을린 소나무들은 썩지 않았다. 옛날 배를 만들 때 방수·방부를 위해 일부러 목재를 그을려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실감한다.

굴참·박달·소나무들은 어울려 자라는데 물박달나무는 외롭게 홀로 섰다. 1980년대 이 지역에 송이버섯이 많았지만 30년이 지나면서 차츰 능이버섯이 더 많이 난다고 일러준다.

여기저기 두 사람이 안을 정도의 아름드리 소나무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놨다. 전통 목조건축물을 수리·복원하는 데 쓰일 소나무를 150년간 함부로 벨 수 없도록 문화재청·산림청이 협약(2005.11.11)을 했다. 동해안 해송 꽃가루가 봄바람에 날려 내륙의 육송과 섞여 잡종강세의 형질이 울진금강소나무다. 숙종 때는 금강송군락지에 입산금지 '황장봉계 표석'을 설치, 소나무를 베면 곤장 100대의 태형이 내려지기도 했다.

산불로 여기저기 상처 입은 검붉은 색깔을 두고 새재성황당으로 내려왔다. 애처로운 산비둘기 소리 길게 따라오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대광천 초소 ~ 주막 터 ~ 썩바위폭포 ~ 망부송(갈림길) ~ 대왕송 ~ 안일왕산 ~ 대왕송 ~ 벼락목 ~ 삼거리(갈림길) ~ 문화재용 소나무지대 ~ 새재 성황당(약 8.2km, 약 3시간50분, 울진금강소나무숲길 4구간 예약해야 산행 가능)

교통

산행기점인 금강송면 소광리는 교통이 불편하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울진읍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 5만 원 정도. 승용차 이용 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547번지'를 목적지로 하면 된다. 주변에 주차할 수 있다.

숙식

울진읍내, 죽변항구로 나가야 한다.

주변 볼거리

북면 두천리 내성행상불망비, 불영사, 행곡리 처진소나무, 망양정, 죽변등대 등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인터넷 예약방법과 코스

숲나들이(e) → 울진금강소나무숲길 → 날짜·인원 선택(문의 054-781-7118)

1구간 두천1리 ∼ 찬물내기 ∼ 소광2리 (편도 13.5km)

2구간 전곡리 ∼ 쌍전리산돌배나무 ∼ 소광2리 (편도 9.6km)

3구간 소광2리 ∼ 오백년소나무 ∼ 소광2리 (왕복 16.3km)

3-1구간 소광2리 ∼ 너삼밭 ~ 소광2리(편도 9.0km)

4구간 너삼밭 ∼ 대왕송 ∼ 장군터 (왕복 10.4km)

5구간 두천2리 ∼ 두천1리 (편도 15.3km)

가족탐방로 금강소나무군락지(편도 5.3km)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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