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랬나

박찬일 2022. 8. 2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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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 식당 주방보조원은 이모나 아줌마 같은 정겨운 호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온정과 배려에서 소외되고, 노동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한 식당 직원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른바 파출부라고도 하고 일본말로 ‘아라이(洗い)’라고도 하는 직종이 있다. 설거지를 전담하며, 바쁠 때는 파도 썰고 직원들 밥도 하는 그런 일이다. 내가 일하던 서울 강남 어느 식당에서 알게 된 분이 있다. 다들 이모라거나, 찬모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파출부와 아라이의 또 다른 이름인. 그냥 아줌마도 되며 더러 엄마도 된다. 다만 누구도 공식 호칭인 주방보조원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알게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간혹 밤에 이런 문자가 온다. 이 양반은, 데이터 절약을 위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세푸님안녕하세요?설명절잘보내셨지요세푸님오늘음력1월14일인데명절잘보내셨는지(중략)세푸님일만하시지말구요건강꼭잘챙기세요정월대보름잘보내세요세푸님조금타뜻하면미리연락하구콕찾아뵐께요.’

내가 이분께 한 일은 다른 직원들처럼 대하는 것뿐이었다. 가장 낮은 일인 밥 하는 직종에서도 더 낮은 몫인 보조하는 사람들, 일꾼들 떠받치는 분들이 있다. 인간의 온정과 배려 같은 데서도 자주 소외되고 마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명절에 참치 캔을 한 상자씩 돌려도 정식 직원도 아닌, 파견인지 일당인지 하루살이로 오는 그런 노동자 몫이 있을 리 없다. 이 아주머니가 오시기 전엔, 파출 오시는 분들이 매일 바뀌었다. 이유는 우리 부엌 사정이었다. 식기가 무겁고 커서 손목이 나간다고들 했다. 산업재해가 인정될 리도 없는, 그냥 투명인간 같은 분들.

“세푸님. 젤 좋은 건 백반집이에요. 메라민(멜라민)이나 스뎅(스테인리스)이라 그릇이 날아다녀두 안 깨지구 세제도 잘 먹어. 백반집도 나름인데, 돌솥비빔밥집은 다들 안 갈라 하지. 뚝배기집두 별로고. 손목 파스 값이 더 나가거든요.”

무슨 이유에선지 이 아주머니는 매일 나왔다. 손목에 파스를 붙여가며. 이런 일을 하는 여자들 악력은 ‘태릉선수촌’급이다. 무거운 그릇을 쥐고 닦는데, 미끄러우니 꽉 쥐어야 한다. 그릇이 깨지면 눈치 봐야 하고, 더러 어떤 주인은 변상하라고 엄포도 놓는다. 그러니 쥔 손에 힘 들어가고 손가락 힘이라면 전설적인 만둣집에 근속한 여자들보다 세다. 만두는 피를 꼭꼭 닫아야 하니,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손가락 힘이 좋다. 그보다도 악력이 좋다는 거다.

물론 그걸 오래 하면 손가락 건염이나 관절염은 필수로 얻는다. 설거지 파출 일은 손목 건염까지 덤이다. 골프 치면 자주 걸린다는 병과 같다. 보험공단에 신고하는 똑같은 증상의 질병, 그쪽 전문용어로 동일한 상병명(傷病名)에도 각기 계급이 있다.

시내에 정형외과를 개업한 지인이 있다. 밥집 아줌마들이 오면 딱 기가 찬다고 했다. 목 디스크에 척추측만증까지. 머리에 똬리 놓고 ‘오봉’이라 부르는 밥 쟁반을 쟁여서 배달하니 그리 된다고 했다. 그는 이고 가는 밥 배달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신중하게 말한다.

“그것도 기술이니 무슨 신기한 세상 같은 프로에 나오더라고. 쟁반 4층, 5층으로 이고 시장통 같은 데 누비고 다니는 거. 난 그거 못 봐.”

여전히 그 ‘역전의 아줌마’들이 동대문, 남대문시장, 을지로, 퇴계로를 누빈다. 버릇이 되어서, 한꺼번에 나르기에 이만한 방법이 없어서. 쟁반 배달밥에도 뚝배기와 돌솥이 실린다는 거. 민족의 전통적인 여성용 운반법이라 칭하는.

‘직장의 룰’에서 제외되는 사람들

아무튼 그렇게 우리 파출 아주머니와는 인연이 되어 오래 같이 일했다. 내가 식당을 옮기면 같이 옮겼다. 우리가 해드린 건 명절날 참치 캔 빠뜨리지 않고, 4대 보험 해드리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과장, 부장 직급 부르듯 호칭 하나 만들어드린 것뿐이었다. 돈도 안 드는 일인데. 그리하여 그이는 ‘총무님’이 됐다. 총무가 어떤 일인지 다들 아실 거다. 집안 숟가락 숫자부터 온갖 허드레 사정을 뚜르르 꿰는. 처음엔 부끄럽다고 사양하던 그이에게 명함까지 하나 파서 드렸다. 총무 아무개. 그러자 아주 정색을 하고 얘기했다. 아마도 눈가가 붉어지셨던 거 같다.

“세푸님. 저는 태어나서 처음 벼슬해봅니다. 고맙습니다.”

아줌마나 이모 같은 호칭은 따스하고 정겹다. 하나 때로는 직장이란 조직이 지켜야 할 룰과 혜택에서, 예의에서 제외되기 쉽다. 우리가 엄마나 누나에게 그토록 못되게 굴었던 것처럼.

그러던 그이와 헤어졌다. 가끔 전화가 왔고, 여전히 식당 동네에서 밥을 벌었다. 단지 호칭이었을 뿐이지만, 그이는 다시 아줌마나 이모가 되었다고 했다. 영세한 식당 노동자가 겪는 그런 일, 말하자면 체불이나 임금 떼이기를 당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이는, 나를 서울 바닥의 유일한 구원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자가 급히 날아온 걸 보면.

‘박세푸님 안녕하세요? 세푸님 지금 많이 바쁘세요? 제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요. 세푸님하구 물어보지 않고 지나가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이는 문자 띄어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 사는 법엔 여전히 약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사업 크게 하고 방송에도 나오던 식당 사장이 임금을 체불한 채 폐업을 하고 소식이 끊겼다. 그이는 퇴직금에 대한 언급을 못 들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퇴직금도 ‘이모’에겐 얼렁뚱땅 넘어갔던 것이다. 법 알고 요령 있는 동료들이 독촉과 호소로 몇 푼이나마 건질 때 그이는 빈손이었다. 망한 회사 직원이 받을 수 있는 체당금 같은 제도도, 그이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모는 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랬던 것일까.

그이는 나이 일흔이 넘어 못 받은 임금을 벌충하러 점심 저녁을 파는 여의도 어느 식당에서 종일 일한다. 그 집 그릇도 묵직한 도자기라고 한다. 그이의 손목이 여전히 건재한 게 기적 같다. 파스 한 묶음을 보내야겠다.

어디선가 읽은 글인지 한 대목의 메모가 내 수첩 구석에 있다. 옮겨본다.

‘걸인으로 위장한 신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양손에 떡을 들고도 입에 떡을 물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식당은 굴러간다. 서울에만 식당이 12만 개다. 한 집 건너 하나는 ‘이모’가 일한다. 그들도 이제 늙고, 젊은 이모는 이런 노동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쎄빠지게 일해야 하는, 영세한 이런 시장에. 이모가 다 사라지는 날이 미구에 닥칠 것이다. 빤히 보인다. 밥집의 운명이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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