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풋풋하게 만들어 준 올리비아, 고마웠어

한겨레 2022. 8. 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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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이재익의 노보세] 올리비아 뉴턴존 '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
영화 <그리스>에서 올리비아 뉴턴존과 존 트라볼타(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여름이 저물고 있다. 사람들은 올해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기상 관측사상 최악의 폭우가 서울을 마비시켰던 여름? 필자는 2022년 여름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노래 잘하는 미쿡 누나’ 올리비아 뉴턴존이 세상을 떠난 여름이라고. 실제로 그는 필자의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을뿐더러 미국 국적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필자가 갖고 있던 그의 이미지는 딱 그랬다. 이번 칼럼에서는 8월8일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뉴턴존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그는 1948년 영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이주해서 살았다. 외할아버지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 막스 보른 박사다. 양자역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의 천재성이 예술적 재능으로 바뀌어 유전되었는지, 그는 어린 시절에 가수로 데뷔해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사랑받았다. 처음에는 컨트리풍의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1978년 뮤지컬 영화 <그리스>에 출연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10대 소년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그리스>에서 올리비아 뉴턴존은 여자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았다. 요즘도 계속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그리스>에서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샌디 역을 맡았지만 올리비아 뉴턴존처럼 사랑스러운 샌디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리스> 출연 당시 올리비아 뉴턴존은 이미 서른이 넘었다. 남자 주인공 존 트라볼타보다 6살이 많고 속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미셸 파이퍼보다는 10살이 많았다. 그럼에도 10대 여자 고등학생 역할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스> 영화음악 수록곡은 모두 화제가 됐는데 특히 올리비아 뉴턴존이 부른 ‘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가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르면서 크게 성공했다.

30대에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그는 몇년 뒤에 소녀 이미지를 벗고 뒤늦게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그 유명한 노래 ‘피지컬’ 덕분이다. 그는 마돈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섹시한 이미지의 스타로 팝시장에 군림했다. 그가 직접 부른 <그리스> 영화음악 음반은 아직까지도 역대 두번째로 많이 팔린 기록을 갖고 있다(첫번째는 영화 <보디가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10주 동안 지킨 ‘피지컬’의 기록은 1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당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담으로, ‘피지컬’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들리는 가사를 우리말로 “웬일이니 파리똥”이라고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필자의 사촌 누나들도 그랬다. 실제 가사는 ‘렛 미 히어 유어 바디토크’다.

<피지컬> 음반. <한겨레> 자료사진

이외에도 올리비아 뉴턴존은 좋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데뷔 초기 컨트리 가수의 진가를 보여주는 ‘렛 미 비 데어’, 그가 주연한 또 다른 뮤지컬 영화의 주제곡 ‘제너두’ 등을 독자들께 추천한다.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이런 목소리로 직접 사랑의 속삭임을 듣는 기분은 어떨까? 독자들 중에 혹여 아직 <그리스>의 노래들을 못 들어본 분들이 있다면 여름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들어보라고 재촉하고 싶다. ‘서머 나이츠’, ‘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 두 곡을 듣고 유튜브에서 2분짜리 오리지널 예고편을 보고 나면 심장이 풋사과로 변하는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꼬마였을 때, 바닷가 마을의 작은 음반(레코드) 상점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노래를. 상점에 들어가 그의 음반 재킷을 보며 ‘이렇게 멋진 사람이 이렇게 노래도 잘하다니!’ 감탄하며 어려운 영어 이름을 외웠던 순간도 기억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몇년 전 건강이 잠깐 좋아졌을 때 한국에 와서 공연했을 때 가보지 않은 일을. 지치고 병든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예매를 포기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그를 실제로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뒤늦게나마 글 몇 줄로 그를 추억할 뿐이다.

그는 500곡이 넘는 노래를 남긴 가수이자 1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연기자였다. 한 인간으로서도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믿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주었고 말년에는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몸담았으니 천국에 갔으리라 믿는다.

여름도 가고 여름밤을 노래한 올리비아도 떠났다. 다분히 감상적인 글이 되어버렸는데, 선선한 계절이 오면 글도 더 선선해지지 않을까.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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