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고추 농가, 병충해에 울고..가격에 또 울고

김동욱 2022. 8. 26. 05: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름철 고온·수확기 잦은 비로
탄저·칼라·무름병 복합적 발생
수확량 지난해보다 22% 줄듯
작황 부진·소비침체까지 겹쳐
농가들 생산비도 못건질 상황 

경북 영양의 김형도씨(오른쪽) 고추밭에서 NH농협 영양군지부와 영양농협 직원들이 병충해 발생 상황을 살피고 있다.


“올해는 수확을 포기했습니다. 저기 밭에 보이는 고추는 싹 다 뽑아내야 해요.”

23일 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2리에 있는 김형도씨(58)의 3306㎡(1000평) 규모 고추밭은 병들고 망가진 고추만 가득했다. 수확기를 앞둔 이즈음이면 지주대를 모두 가릴 정도로 고춧대가 왕성하게 자라야 정상이지만 올해는 지주대가 훤히 보일 정도로 생육이 시원찮다. 누렇게 시들거나 죽어버린 고춧대도 듬성듬성 보였고 달려 있는 고추 가운데 성한 것이라고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고추농사 15년 경력인 김씨는 “지금껏 고추농사 지으면서 이렇게까지 엉망인 적은 처음”이라며 “여름철 고온과 수확기를 앞두고 내린 비로 탄저병·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TSWV·칼라병)·무름병이 복합적으로 번져 따낼 고추가 없다”고 망연자실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멀리서 퍼런 잎만 보면 농사가 그럭저럭 잘된 것 같은데 가까이서 달린 고추를 보면 썩고 병든 게 태반이고 위에 달린 것들은 곡과투성이라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란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김씨 고추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영양 모든 지역에는 6∼8월 기상 여건 악화로 곳곳에 병해충 발생이 빈번했다. 실제로 영양군은 6월에는 고온건조한 날씨 탓에 초기 생육이 부진하고 진딧물이 생긴 것으로 파악했다. 군은 이 때문에 칼라병과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CMV) 등 벌레를 매개로 하는 바이러스가 지난해보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7월에도 고온이 지속돼 수정불량과 함께 석회결핍과·기형과 발생이 늘었고 8월에는 잦은 강우와 일조량 부족으로 무름병과 탄저병이 급속히 번졌으며 고추 착색도 늦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군은 올해 영양지역 고추 생산량이 평년 대비 12%, 전년 대비 22% 정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윤칠 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7월 착과기에 30℃ 이상 고온이 지속되면서 불량과 비율이 평년 대비 2배 넘게 늘었다”면서 “8월 수확기를 앞두고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 바람에 바이러스도 평년보다 보름 이상 빠르게 확산돼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씨 고추밭 맞은 편에서 4959㎡(1500평) 규모 고추농사를 짓는 김순환씨(55)는 다행히 수확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병 피해가 극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착과 상태가 불량했다. 김순환씨는 “생육 초기에 제대로 못 큰 데다 병충해까지 겹쳐 올해는 지난해의 60% 수준밖에 수확을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며 썩은 고추를 따내 바닥에 버렸다.

작황부진으로 생산량이 줄면 가격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올해는 소비침체로 이마저도 시원치 않다. 전국 고추 시세 기준가격 역할을 하는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의 23일 화건 600g(한근) 평균 경락값은 9191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 가격(9014원)에 견줘 177원(1.96%)밖에 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일주일 전인 16일(1만931원)과 비교하면 1740원(15.9%)이나 하락했다.

조연수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 경매사는 “올해는 영양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추 작황이 나빠 공판장 하루 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3t가량 줄어든 4t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평소 같으면 추석 전후로 유통상인들 구매가 늘어나는데 올해는 구매도 주춤해 물량이 줄었음에도 가격이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작황부진과 소비침체까지 겹쳐 농가들이 생산비도 못 건지게 될 상황에 처하자 영양지역에서는 외국산 고춧가루류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특단의 소비촉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양봉철 영양농협 조합장은 “화건 시세가 1만3000원은 나와야 농가가 생산비라도 건질 텐데 시세가 지금 수준이면 농가들은 빚더미 위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에서 이같은 고추농가의 어려운 상황을 헤아려 외국산 고춧가루류가 어느 경로로 어떻게 유통되는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고추의 생산기반을 안정화하고 재배농가들 소득증대를 도모하기 위해 소비촉진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영양=김동욱 기자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