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여름, 42년간 '31일' 늘었다..처서 지나도 더위 한창

이미지 기자 2022. 8.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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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진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시민이 한남대교 남단 아래 평상에 누워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2.08.07. 뉴시스
22일 오전 서울대 온실가스 이동관측차량이 서울 마포구의 한 발전시설 옆을 지나자 차내에 있던 측정기의 메탄(CH4) 수치가 순식간에 수직 상승했다.

“1만ppb를 넘었어요. 이 정도면 일반적인 공기 중 메탄 농도의 5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측정기 옆 좌석에 앉아 실시간으로 수치를 확인하던 주재원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CO2)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이산화탄소보다 양은 적지만 온실효과는 28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도로 차량들이 내뿜는 배기가스 탓에 이산화탄소 수치가 500ppm(ppm은 1ppb 1000배)에서 800ppm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한국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경농도(오염원이 없는 곳에서 측정한 농도) 423.1ppm의 2배 가까운 수치였다.

이날 기자가 차량에 동승한 시간은 약 1시간 반. 그 사이 1000ppb 넘는 메탄 농도와 700ppm 넘는 이산화탄소 농도만 10번 넘게 관측됐다. 주 연구원은 “온실가스는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수백 년간 사라지지 않고 대기 중에 머물며 기온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강원의 겨울 42년간 21.6일 짧아져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속성장을 이뤄낸 국가다. 같은 기간 경제만큼 고속성장 한 것이 또 있다. 바로 기온이다. 우리나라의 기온 상승 속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월등히 빠르다. 산업화 이후(1850~2020년) 170년간 전 세계 평균기온은 1.09도 올랐다.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980~2021년 42년간 1.4도 올랐다. 전 세계 평균 대비 5배 이상 빨리 오른 셈이다.

‘수십 년간 고작 1.4도?’. 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온변화를 계절로 바꿔 이야기해보면 느낌은 달라진다. 환경연구원이 전국 61개 관측지점에서 1980년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매일 관측한 기온을 분석해 전국 10개 주요지역의 ‘여름일수’(한낮 기온 25도 이상)를 뽑아봤다.

그 결과 42년간 여름일수는 경기에서 17.6일, 강원 17.1일 전남과 경남에서 각각 16.8일과 16.4일 증가했다. 특히 서울은 31.0일이나 늘었다. 1980년보다 2021년 여름이 한 달 길어졌다는 뜻이다.

유독 서울의 여름일수가 많이 늘어난 이유는 급격한 도시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심창섭 환경연구원 대기환경연구실장은 “아스팔트 등 토지 포장 증가로 인한 도시열섬현상은 주로 최저기온에 영향을 준다”며 “서울은 밤새 ‘덜’ 떨어진 기온이 다음날 낮기온 상승을 견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계절 변화폭이 작은 것은 아니다. 일평균기온이 5도 이하인 날을 뜻하는 ‘겨울일수’의 경우 42년간 충남에서 17.4일, 경북에서 19.1일, 경기에서 19.2일 줄었다. 강원 지역의 겨울은 21.6일이나 짧아져서 서울의 변화폭(14.7일 감소)을 크게 상회했다. 지역에 따라 변화의 양상은 달라도 전반적으로 덥고 따뜻한 날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코로나로 ‘반짝’ 줄었던 온실가스, 도로 제자리

기온 상승은 단순히 덥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기온이 2도 오를 때 15~40%의 북극생물이 멸종위기에 처한다. 3도 오르면 전체 생물의 20~50%가 멸종될 수 있고, 5도 오르면 해수면이 높아져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같은 대도시들이 바닷물에 잠긴다. 6도 오르면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시작된다. 최근 국내 폭우와 해외 폭염, 가뭄 같은 극한 날씨도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타깝게도 기온 상승을 아예 막을 방법은 없다. 온실가스는 한 번 배출되면 공기 중에 길게는 수백 년간 머물며 사라지지 않고 누적되기 때문이다. 최선책은 온실가스 배출을 가능한 줄여 농도 상승폭을 최대한 줄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반도 상공의 온실가스 농도는 매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경농도는 2020년과 마찬가지로 2.7ppm 올랐다. 메탄의 경우 지난해만 22ppb 올라서 오히려 연 평균 증가치(10ppb)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상승했다.

2020년 잠시 ‘기적’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서울대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2019년 7월~2020년 9월 서울 도심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를 분석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 시행 기간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시행 전 대비 8% 감소, 증가량은 42% 감소했다. 정 교수는 “인간의 적극적인 행동(거리 두기)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정 교수가 최근까지 관측을 이어간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빠르게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던 2020년 1월 20일 32.9ppm이었던 서울 이산화탄소 농도는 ‘신천지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표된 8월 8.4ppm까지 급감했다. 그러나 2021년 7월에는 23.1ppm, 11월에는 30.4ppm을 기록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정 교수는 “올 7월 26.9ppm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더 올랐다”고 밝혔다.

봄, 여름, 여름, 여름, 가을…

환경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100년 서울의 여름은 지금보다 40.4일, 강원과 제주의 여름은 각각 59.5일, 63.8일 늘어난다. 겨울은 서울 40.3일, 강원 36.4일, 전남 46.9일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가 아니라 ‘봄 여름 여름 여름 가을 (겨울)’의 나라가 되고 있는 셈이다.

23일은 24절기 중 ‘더위가 그치는 때’를 뜻하는 처서(處暑)였다. 본래 처서가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고 산소를 찾아 벌초를 했다. 하지만 요즘 처서에 이런 일을 하다가는 더위로 쓰러질지 모른다. 2022년 처서는 ‘더위가 한창인 때’다.

한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 참여국으로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약속시한이 8년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의 겨울을 지키려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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