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더한 세부의 잠 못드는 밤, 화해의 역사인문학

2022. 8. 23. 08: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제잉과 칵테일로 유명한 바이호텔 루프탑바서 본 야경. 한층아래엔 풀사이드바가 있다.
풀사이드바
세부퍼시픽 승무원들. 때론 세심하게, 때론 명랑한 노랑미소.

[헤럴드경제, 세부=함영훈 기자] 노랑색 미소, 연두빛 친절, 때론 세심하고, 때론 발랄한 세부퍼시픽 승무원들의 ‘착륙 임박’ 알림을 듣고, 창밖을 보니 세부해협 주변이 몰라보게 현대 감각으로 변신했다.

광안대교와 인천대교를 합쳐놓은 듯한 세부-코르도바 고속화대교(CCLEX)는 한국형 하이패스를 도입하는 등 개통된 지 넉 달 밖에 되지 않은 싱싱한 모습으로 사람과 물자를 막탄섬으로 실어나르고 있었고, 첨단기술을 동원해 완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누스타 카지노 리조트, SM아레나, 오션파크, 세부의과대학, SRP타워, 바이호텔 등이 스마트 세부해협을 장식하고 있었다.

막탄섬 근해

리조트에 콕 박힌 휴양 여행에서 벗어나, 낭만과 놀이, 역사인문학을 모두 챙기는 아웃도어 여행지로서의 세부로 탈바꿈한 것이다. 코르도바대교로 연결된 막탄섬은 여전히 다이빙,호핑의 메카로 건재했다.

S채널 여행예능 ‘다시갈지도’의 옥상 풀사이드 바를 포함해 현대식으로 지어진 바이호텔에서 내려다 보면 해안가 도심에 빌딩이 숲을 이루고, 각양각색의 유라시아 퓨전음식을 파는 대형 먹빵 아케이드 건물이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다.

누스타리조트내 세부 전통 아몬드로스팅 예술카페

▶우아함, 전통미, 낭만 모두 챙기기= 여행자들이 카메라만 들고 홀가분하게 여행할수 있도록 짐 보관 핸즈프리서비스 사업도 하고 있는 김민수(40) 가이드는 아침에 한국탐방객들을 만나자 필리핀 3대 언어중 하나인 비사야어 현지 인사말부터 알려준다.

현지어를 조금 쓴다는 것은 친밀도를 부쩍 높이기 때문이다. 아침인사는 “마아용 분딱”, 점심인사는 “마아용 하뽄”, 저녁인사는 “마아용 가비”. 감사합니다는 “살라맛”, 얼마예요는 “삘라?”이다.

루스타 간이라운지

암중모색기에 큰 변신을 도모한 세부가 우아함과 전통미, 스마트함과 낭만, 모두 챙기려 노력한다는 점은 신축된 누스타 카지노리조트에서 단적으로 느낄수 있다. 세련된 내부인테리어로 단장한 누스타는 코르도바 대교와 SM아레나 근처에 들어섰다. 현재 시범오픈해 공식오픈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기엔 전통 아몬드 로스팅 카페가 있다. 아랫쪽이 뾰족한 선사시대 토기 컨셉트의 도자기 작품이 전시돼 예술카페의 분위기를 풍긴다. 로스팅아몬드를 곱게 갈아 걸쭉하게 끓인 겔 상태의 원액은 잘 발효된 강장맛과 달콤함이 섞인 풍미를 느끼게 한다.

필리핀전통 아몬드 초콜릿 원액. 누스타 카지노리조트에서 체험할 수 있다.

혈압저하, 체지방 연소 등 건강기능에 맛까지 있는데, 오래된 필리핀의 전통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쌀과자와 배합한 ‘초코리자’ 등으로 상품화하고 있다고 한다.

세부의 야(夜)심만만 낭만은 세부 탑스(Tops) 전망대 선술집 외에, 바이호텔 루프탑바에서도 짙게 풍긴다. 세부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디제잉 음악과 칵테일로 세부의 잠못드는 밤을 연출한다.

▶마젤란과 라푸라푸, 문명 화해= 세부시청 앞에 있는 마젤란십자가는 2m 길이의 나무로 만들어졌다. 마젤란은 이 십자가를 건네며 세부 추장 내외에게 포교하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토속신앙을 가진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마젤란십자가를 보관한 전각에 가면, 가톨릭무당 이라는 독특한 풍경을 접한다.

이곳에서 특이한 점은 노랑옷 입은 무당에게 돈을 주면, 신의 메신저로서 역할하며 춤을 추는 의식 벌여준다. 무병장수를 기원해주는 것이다.

마젤란이든 콜롬버스든 동양이나 아메리카로 향하는 대항해시대 중세 유럽의 선단은 군인,상인,종교인이 ‘원팀’으로 꾸려지고, 늘 남의 땅에 무단진입했다가 토착민과 마찰을 빚는데, 무장선단의 우두머리 마젤란 역시 ‘코코넛칼’이라는 변변찮은 무기를 든 현지인 저항세력 라푸라푸 장군 부대와의 전투에서 사망하는 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었다.

이런 ‘가톨릭 무당’의 특이한 의식은 서양 크리스트교와 동양 토속 신앙이 적절한 화해를 한 징표인 듯 느껴진다. 세부 주민들은 이제 라푸라푸장군과 마젤란 모두를 존경하고 있다.

라푸라푸장군 동상과 마젤란 십자가

마젤란이 세부 왕실에 제공했다던 아기예수상(니뇨)을 핵심 성물로 여기는 산토니뇨성당이 나무십자가 전각 옆에 있다.

성당 주변의 넓은 사각형 붉은 촛불 봉헌대를 둘러싸고 기도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은 동양적 사원의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에티오피아, 이집트, 그리스의 정교회도 가톨릭과 토속 공동체신앙이 접목된 양상을 보인다.

세부 주는 최근 개통한 코르도바 대교 상단에 대형 십자가상 조명 8개를 설치해 가톨릭 정신으로 운영되는 곳임을 알리고 있다. 이제 ‘1가정 1니뇨’가 될 정도로 아기예수상은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주말이 되면 니뇨 거리 퍼레이드도 펼쳐진다.

니뇨상에 경배하는 사람들
산토니뇨성당

이곳에서 동쪽으로 300m만 걸어가면 만나는 산 페드로 요새는 스페인 코루냐의 영국군 방어용 고공진지와 이름이 같다.

스페인 점령군이 1565년 5월 만든 방어 요새였다가, 세부 독립운동가의 거점, 미군 막사, 일본군의 포로 수용소 등으로 기능이 바뀌었고, 지금은 현지인과 관광객의 전망좋은 쉼터가 되었다. 그렇게 세부 사람들은 지나간 역사를 편안하게 대하고 있었다. 세부사람들의 지혜와 화해의 마음을 알게된 역사인문학 투어였다.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