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올이 정성들이는 어머니 마음으로.. 우리 문화재 지켜나가야죠"

장재선 기자 2022. 8. 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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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예올 이사장이 지난 17일 예올북촌가에서 20주년 특별전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 이사장은 “제가 입은 옷은 통영 송병문가(家)에서 100년 동안 이어 내려온 옷감을 다시 찍어 젊은 디자이너가 현대복으로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윤성호 기자

■ M 인터뷰 - "예올" 20주년 특별전 여는 김영명 이사장

전통문화의 현대화 후원

윤후명 시인이‘예올’작명

사직단 복원·정비 큰 보람

우리 문화재 영어 강좌도

‘올해의 장인’해마다 선정

새 작품 마케팅까지 지원



유기장·우산장·주물장 등

작가 17명 작품 함께 전시

“외국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하잖아요. 미국 대학에 다닐 때 외국 친구들이 제 이름을 멍멍이, 양양이로 부르기도 했어요. 그래서 영어 이름을 갖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싫더군요. 발음하기 힘들면 ‘명’으로 부르라고 했지요.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아니라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김영명(66) 예올 이사장은 웰즐리대 재학 시절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영리 문화재단법인 예올의 창립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법인을 설립한 것은 2002년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 뜻을 잉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문화를 지키고 오늘에 잇는 활동을 해 온 예올이 오는 31일 20주년 특별전을 개막한다. 전시장인 예올북촌가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 이사장은 예올 창립 멤버로서 그동안 걸어온 길이 참 보람 있었다고 했다. 결곡한 인상답게 차분하면서도 진솔한 어조로 이야기했는데, 도중에 자주 웃음을 터트려 우리 문화 지킴이로서의 즐거움을 오롯이 드러냈다.

―예올 창립의 직접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0년대에 제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 있었잖아요(웃음). 남편(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했던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활동을 돕게 된 것이지요. 외국 손님을 많이 만나며 우리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한국에 관심이 깊은 외국인들을 만나면 제가 그분들에게 우리 문화를 설명해줄 지식이 부족한 것이 부끄러워 반성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게 됐지요. 처음에는 우리 문화재 안내판이라도 제대로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저와 뜻이 통한 언니(김영자)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외교관, 해외 주재원 자녀 등 저처럼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지인들이 주로 동참했습니다.”

―예올과 북촌은 잘 어울립니다

“네, 그렇게들 생각해주시더군요. 처음엔 종로구청 옆 빌딩의 오피스텔을 빌려서 사무실로 삼았습니다. 북촌 한옥을 빌려 예술가들 창작실로 활용했는데, 2006년에 작가들이 한옥을 비워주셔서 입주하게 됐지요.”

예올은 2018년에 한옥 앞에 현대식 건물로 복합문화공간 ‘북촌가’를 지었다. 겉모습에서부터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려 한 것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오면서 특별히 고마운 분들이 있다면

“너무 많지요. 동참하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이 고맙습니다. 특히 박선희 초대 회장님은 초기 기틀을 마련하며 회원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강좌를 기획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김 이사장은 예올에 대해 ‘상류층 사교모임이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이 있었던 것과 관련, “그것을 의식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후원자 900여 명의 직업이 다양합니다. 기업인, 연예인, 파티플래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교사, 주부 등 워낙 여러 분야에서 참여해주셔서 제가 놀랄 정도입니다. 저희 이사님들은 봉사에만 뜻을 두지 예올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분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문화를 배우고 사랑하는 사교모임이라면 맞겠지요.” 완곡하지만 자부가 또렷이 깃든 목소리였다.

―예올이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윤후명 시인이 지어줬다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보통 이름이 아니지요(웃음). 윤 시인께서 참 좋은 이름을 주신 덕분에 우리가 지금까지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로부터 이어받아 온 우리 문화의 어여쁨을 귀하게 여겨 여기 오늘에 그리고 다가올 날에까지 올곧게 지켜 전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올’에 들어가 있는 ‘올올이’의 뜻을 귀하게 여깁니다. 올올이 정성을 들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문화재를 가꾸자는 의미에서요.”

―운영을 위한 재원 마련 등이 쉽지 않을 텐데요

“매년 전시와 각종 사업을 하니까 일이 많습니다. 꾸준히 도와주시는 개인 후원자분들이 있어 가능하지요. 해외 명품사인 반클리프 아펠이 3년간 후원해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올해부터는 샤넬사가 후원하는데요, 그들 회사 제품도 우리 공예처럼 장인 정신으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일 겁니다. 우리 이사님들은 알뜰시장을 열어서 그 수익금을 한국전통문화대 장학금으로 주고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사직단 보존 복원·정비 등 초기 활동은 효과가 있었나요

“문화유적지 첫 답사가 반구대 암각화였어요. 제가 울산에서 살았으니까 울주에 암각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가보지 못해 잘 알지 못했어요. 굉장히 무식했던 거지요, 하하. 저희가 그 훼손 정도를 확인한 후 보존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관련된 사안이라서 근본적 해결을 못한 상황이지요.”

그는 사직단 복원·정비 운동을 하며 청소년과 외국인 회사 직원 등에게 관련 교육을 한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했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에 토지,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안녕을 빌던 곳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공원으로 격하되며 훼손됐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우리 사직단의 역사를 몰랐던 것인가 했는데, 대학 교수님들도 똑같더군요. 그래서 위로가 되긴 했는데요(웃음), 종묘와 함께 소중히 지켜야 할 문화재인 것을 알게 됐어요. 관련 포럼을 두 번 진행하고, KBS에 제안해 한국의 유산을 소개하는 영상에 포함시키도록 했습니다.”

―2003년부터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영어 강좌’를 진행했는데 호응도는

“외국 대사와 그 부인들, 외국인 회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살다 온 한국분들이 많이 참여합니다. 코로나19 이후론 온라인으로 합니다. 속상한 일이지만, 온라인은 손쉽게 더 많은 분이 본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항공기업인 보잉사에서 후원을 하는데요, 거기 한국인 직원이 소개해준 덕분입니다.”

―2013년부터는 이사장을 직접 맡게 됐습니다. 전통공예 장인 후원 사업을 본격화했는데, 그 계기는

“언니가 명예 이사장으로 물러나며 ‘이제 네가 해라’ 하시더군요. 이사장이 된 후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에 힘썼습니다. 그동안 주력했던 문화재 안내판 세우기 활동은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겠더군요. 지자체 등에서 스스로 알아서 하는 수준이 됐거든요. 장인 한 분을 선정해서 현대생활과 접목하는 디자인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그걸 상품화해서 마케팅하는 작업까지 함께합니다.”

김 이사장은 장인의 작품을 판매해주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문화재 선정은 지극히 제한적인데, 거기 뽑히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와 함께한 장인분들 중 경첩, 자물쇠를 만드는 두석장(豆錫匠) 할아버지 두 분의 작품이 특별히 잘 팔리니 참 좋습니다. 장롱에 쓰이는 두석은 전통 공예에서도 주인공은 아니고 조연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 현대 디자인을 입혀서 주연을 만든 거지요. 요즘 잘 쓰지 않는 지우산(紙雨傘)도 방수 소재로 아름답게 만들어 팔아드리고 있지요. 장인들께서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니 힘들지만, 결실을 볼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하십니다. 예올 전시를 계기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부르는데, 어떤 분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초대받았다더군요. 저희가 후원한 젊은 공예인들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면 참 보람을 느낍니다.”

김 이사장은 이번 20주년 특별전의 전시 감독인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가 정부 주최의 ‘2022 공예트렌드 페어’ 총감독으로 위촉됐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전은 그동안 ‘올해의 장인, 젊은 공예인’으로 뽑혔던 분들의 작품으로 꾸민다던데

“지난 8년 동안 저희와 함께했던 17명의 작가 작품을 북촌가에서 전시하고, 바로 옆 한옥을 따로 빌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공예품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보는 분들이 작은 작품이라도 소장하고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소비자가 장인의 후원자가 되게 하자는 것이지요.”

특별전에는 유기장, 화혜장(靴鞋匠), 우산장, 두석장, 주물장, 다회(多繪)·망수장(網綬匠), 갓일장, 완초장(莞草匠) 작품이 고루 나온다. “이렇게 다채롭고 아름다운 문화 전통을 후세대에 전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청소년 대상의 ‘예올 주니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이번 20주년 전에서도 청소년들이 우리 문화를 배우는 행사를 합니다.”

김 이사장은 예올의 기존 후원자는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2030 영예올’엔 남자 대학생, 직장인도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우리 공예를 외국에 알리는 일에 더 힘쓸 것입니다. 해외 갤러리, 박물관, 아트페어 전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서울에서 아트페어를 여는 영국 프리즈(Frieze)의 컬렉터를 초대한 것도 ‘우리 것 알리기’의 일환이다. 이른바 VVIP 수집가 30명이 31일 예올북촌가를 방문해 우리 문화를 보고 듣게 된다고 김 이사장은 귀띔했다.

■ 김 이사장의 ‘사진작가’ 꿈

“대학 3학년 때 찍은 사진 아직 간직…꿈 완성하려 요즘도 채찍질”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김영명 예올 이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하하, 웃었다. 문화 후원자로 살아오면서도 사진작가로서의 소망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60세 때 개인전을 했는데, 칠순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그런데 소재 선택에 장애가 생겨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 갤러리에서 찾아 보여줬다. 눈 오는 날에 남성의 하얀 드레스셔츠를 나무에 걸어놓고 촬영한 작품이었다. 젊었을 적부터 독특한 미감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이 개인전 작품들에도 이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제가 꿈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공개했으니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그는 미국에서 고교를 다닐 때 화가가 되고 싶어 미대를 지망할까 했으나, 세상을 보다 넓게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인문대에 들어갔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역사학에도 관심이 깊었으나, 정치 이론이 재미있어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제가 정치에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학문으로 공부한 거지요. 정치는 남편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198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 함께 가서 회화 석사 과정을 밟았을 정도로 예술 쪽을 지향했다. 그는 정 이사장이 자신의 예올 활동을 이해하고 적극 지원해준다며 고마워했다.

“후원의 밤 등에 부부 동반으로 꼭 참석해주니까요. 남편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등 외국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부부 동반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어제(16일) 시어머님 제사 때도 남녀 따로 절하지 말고 부부는 함께 절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서 그렇게들 했지요.”

널리 알려진 것처럼, 김 이사장은 김동조(1918∼2004) 전 외무부 장관의 4녀 2남 중 막내딸이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부친은 노년의 모습이다.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는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고 들었는데, 나이 드셔서는 부드럽고 너그러우셨지요.”

김 이사장은 요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땀이 나는 운동을 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수영이 좋다는데 자주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탑니다. 대학 때 했던 요가 기억을 살려 스트레칭도 자주 합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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