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가 '告示' 한 줄만 고치면..서울 3만가구 공급 1년 당긴다

이덕연 기자 2022. 8. 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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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부동산대책 이후-국토부에 달린 재건축 속도전]
1차 예비안전진단 통과된다 해도
2차서 조건부 재건축 판정받으면
公기관이 적정성 검토로 발목잡아
국토부, 고시 개정땐 문턱 낮아져
18개 단지 재건축 시계 빨리돌아
추진 손쉬운 정책부터 서둘러야
[서울경제]

윤석열 정부가 16일 첫 주택 공급 정책을 내놓은 가운데 국토교통부의 고시 개정만으로 당장 서울 핵심 입지에서 3만 가구 수준의 공급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위해 꺼내든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 기준의 변경은 법 개정 대신 국토부 고시를 바꿔 신속히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 만약 이를 실천할 경우 서울에서만 최소 18개 단지, 약 3만 가구의 재건축 시계가 1년 가까이 빠르게 돌 수 있게 된다. 이번 8·16 대책에 포함된 여러 방안들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이기에 손쉽게 추진 가능한 정책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서만 최소 3만 가구 공급 빨라져=17일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서울시·양천구청에 따르면 현재 재건축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 단계에 있는 재건축 단지는 서울에서만 18개 단지, 2만 9453가구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에 관한 고시 변경이 이뤄질 경우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곳들이다. 이들 단지를 살펴보면 지난해까지 적정성 검토를 담당 기관에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재건축 추진이 막혀 있는 단지가 14곳, 2만 2609가구, 탈락 우려 등으로 적정성 검토를 미룬 단지가 4곳, 6844가구다.

적정성 검토는 ‘기본계획 수립→안전진단→정비구역 지정→추진위 설립→조합 설립’ 등으로 이어지는 재건축 추진 단계 중 안전진단 단계에 포함된 과정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시 ‘예비안전진단’이라고도 불리는 기초자치단체의 현지조사를 첫 단계로 통과하고 나면 기초자치단체장 의뢰 하에 정밀안전진단을 두 번째 단계로 거치게 되는데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으면 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현행 적정성 검토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담당 단지 기준 2018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검토를 신청한 15개 단지 중 3개 단지만이 지금까지 최종 통과 통보를 받았다. 허들이 높은 셈이다. 게다가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면 안전진단 과정 전체를 다시 밟아야 할 수 있어 일부 단지에서는 검토 신청을 일부러 미루기도 한다. 이미 검토 신청을 한 단지에서는 담당 기관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속도를 늦추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까지 적정성 검토를 신청한 서울 9개 단지가 아직까지 결과를 통보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검토를 담당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검토를 미루기 위해 재건축 예비추진위에서 자료 제출을 미흡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제도 개편시 사실상 폐지 효과···공급 촉진 기대=정부는 이번 8·16 대책에서 현행 재건축 안전진단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적정성 검토를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시행하는 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는 지자체장이 재건축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쉽지 않아 개편안이 시행될 시 적정성 검토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지역 주민의 뜻에 반해 적정성 검토를 신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적정성 검토 단계가 사라지게 되면서 공급 속도가 빨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전문위원도 “이번 제도 개편은 재건축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한 단계를 완화해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상당수 단지의 진행 속도가 빨라져 공급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 8·16 대책에 포함된 내용 상당수(총 12개 사안)는 법률을 제·개정해야 하는 만큼 적정성 검토 기준의 완화가 지닌 파급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도심 핵심 입지에 공급 물량을 확대하기 위해 꺼내든 ‘재건축 부담금 감면’과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은 각각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을 개정하거나 도심복합개발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신규 정비구역을 지정하고 신탁사가 정비사업 시행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도시정비법을 개정해야 실현 가능하다.

반면 적정성 검토 제도 개선은 국토부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안전진단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인데 본법과 시행령 모두에 적정성 검토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강행 규정이 없다. 강행 규정은 하위 법령인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에 있는데 이는 국토부 고시다. 정부 판단에 따라 비교적 쉽게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김기용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장은 “변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시 개정을 통해 적정성 검토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도 개편이 현실화될 시 서울에서 수혜를 입는 가구는 앞서 언급된 약 3만 가구 외에도 수십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준공 연한 30년을 넘겨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가구 수는 42만 7204가구다. 이 중 11만 8013가구가 현재 재건축 단계에 들어서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어림잡아 약 30만 가구의 재건축 추진이 제도 개편으로 인해 추후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제도 개선 시기가 늦어질수록 정책 효과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개편을 염두에 두고 적정성 검토를 계속 미루는 단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상근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추진단장은 “적정성 검토를 신청할지 말지 망설이는 단지들은 당장 사업 진행을 멈추고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노해철 기자 sun@sedaily.com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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