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지각 시말서", "폭우 때 출근하면 어류"..직장갑질119에 올라온 사연

조해람 기자 2022. 8. 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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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놀러 다니냐” 질책에
반차·연차 등 유급휴가 차감
출근전쟁 ‘자조 개그’ 쏟아져
“경위 보고 아닌 반성 강요는
양심의 자유 침해하는 위법”

“폭우에도 출근 걱정하는 사람은 삼류다. 폭우에 출근 못하는 사람은 이류다. 폭우에 출근하는 사람은 어류다.”

115년 만의 폭우가 수도권을 강타한 지난 9일 온라인에 유행한 ‘자조 개그’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방송인 이상민의 말을 패러디한 이 개그에 자연재해에도 꼬박꼬박 출근해야 했던 직장인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이날 정부는 재택근무를 권고했지만 일부 대기업 종사자를 제외한 대다수 직장인은 폭우를 뚫고 일터로 향했다.

‘출근 전쟁’의 끝엔 훨씬 무서운 ‘지각으로 인한 갑질’이 기다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4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1분 남짓 지각해도 이를 빌미로 갑질·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다수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폭우 같은 자연재해와 초장거리 출근의 난관을 뚫고 회사에 도착했지만 1~2분 늦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거나 징계 등을 받은 것이다.

대체로 시말서 등 기록에 남는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많았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계약직인 A씨는 최근 폭우로 2분을 늦었지만 “회사에 놀러 다니냐”는 질책과 함께 시말서 제출을 요구당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잦은 야근에도 불구하고 늘 오전 9시 전에 도착하고, 오전 9시에 거의 맞춰 출근한 것은 딱 3번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의 상무는 이 ‘3회 지각’을 이유로 시말서를 요구했다. 지문인식으로 출퇴근을 기록하는 회사에 다니는 C씨는 “대중교통이 지연됐든 지문인식이 안 됐든, 1분이라도 지각하면 경위서를 작성하고 인사평가에 반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지각은 직원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잦은 지각은 징계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지각을 이유로 시말서를 강요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10년 대법원은 시말서를 단순히 사건 경위 보고 목적이 아니라 사죄·반성을 위해 시켰다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한 업무명령”이라는 판례를 남긴 바 있다.

지각을 이유로 반차·연차 등 유급휴가를 차감한다는 제보도 많았다. 직장갑질119 김현근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연차유급휴가 시기를 정할 수 있는 권리는 노동자에게 있으므로 지각·조퇴 등을 이유로 연차를 차감하는 사용자의 지시나 방침은 법 위반”이라며 “이로 인해 사용하지 못한 연차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인 5명 중 1명은 출퇴근길에서도 업무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6월10일부터 같은 달 16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응답자 20.4%가 출퇴근시간에 업무 관련 일을 한다고 답했다. 저연차급인 30대(27.0%)가 관리직급인 50대(16.5%)보다 높았고, 비정규직(25.0%)이 정규직(17.3%)보다 높았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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