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8살 베트남 소녀가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데 걸린 시간[플랫]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진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 탄(62)
비가 추적추적 내린 8일 오전 10시30분. 검은 정장 차림의 응우옌 티 탄씨(62)가 서울 중구에 있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사무실을 찾았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인 그는 목이 메어 말했다.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진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학살 목격자이자 남베트남군 민병대원으로 활동한 응우옌 득 쩌이씨(82)는 조카인 응우옌씨 곁에 말없이 서 있었다.
이날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과 만난 티 탄씨는 지난 4월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하미 마을 학살 사건’에 대한 빠른 조사 개시 결정을 요구했다. 티 탄씨가 살았던 퐁니·퐁녓 마을 인근인 하미 마을에서도 한국군 학살 피해가 발생했다. 베트남 현지에 있는 유족 5명은 지난 4월 진실화해위에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정 위원장은 비공개 면담에서 “유감”이라면서도 “진실규명 결정 여부는 확답을 못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면담을 마친 티 탄씨는 기자들과 만나 “얼마 전 하미 학살 희생자 135명 이름이 적힌 위령비를 찾아 갔다. 대부분 노인, 여성, 어린이들 이었다”며 “한국 정부가 사과하지 않아 많이 속상하다. 진실 인정과 사과를 해야 피해자를 진정 위로할 수 있다”고 했다.
티 탄씨는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 후 2년 넘게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8살 소녀였던 1968년 어느 날,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녓 마을에 한국군 청룡부대가 들이닥쳤다. “메(어머니), 찌(언니), 꼬(이모)…….” 티 탄씨가 베트남어로 열거한 희생자는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이종사촌동생 등 5명이다. 사망 당시 남동생은 6세, 사촌동생은 8개월 신생아였다. 퐁니·퐁녓 마을에서 70여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티 탄씨 역시 배에 총을 맞아 큰 상처가 남아 있다. 한쪽 귀는 못 듣는다.
청룡부대는 베트남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가 2000년 기밀해제한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 보고서에는 “1968년 2월12일 한국 해병 2여단 1대대 1중대가 마을 주변을 일렬종대로 지나던 중 저격을 받자 마을을 공격, 베트남 여성과 어린이들이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었고, 해병 1명이 부상당했다”고 적혀 있다.
티 탄씨는 그날 이후 한국인 남성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가 소송에 나선 이유는 ‘나만의 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얼굴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2018년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한 평화시민 모의법정에 나와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증언했다. 2019년에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청하며 피해자 103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청와대에 냈다. 국방부는 “한국군 전투 사료 등에는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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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증언한 참전군인, 54년만에 사과
“평생 잊을 수 없는 일… 미안하다”
한국 정부는 “진술 일관되지 않다”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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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티 탄씨와 득 쩌이씨는 사건 발생 54년 만에 참전 군인을 만나 사과도 받았다.
두 사람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참전군인 류진성씨와 만나 27분간 비공개로 티타임을 가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통역사도 함께 자리했다. 티타임에 참석한 인사는 “류씨가 가해군 중 한 사람으로서 사죄한다고 말했다”며 “티 탄은 용기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득 쩌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찾아가 사과했으면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면담을 마친 티 탄씨과 득 쩌이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은 류씨와 만난 뒤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한국 시민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티 탄은 “2015년 한국 왔을 때 (항의) 시위하러 나온 군인이 많아 분노하고 충격 받았다”면서도 “이분들 외에 나한테 찾아와 사죄하고 위로해준 참전군인도 많았다. 그분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티 탄은 “류씨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했다”며 류씨와 만난 소감을 짧게 언급했다. 좌담회에는 8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류씨와 만나기에 앞서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둘러봤다. 티 탄은 전시관 초입에 ‘대한민국은 6·25전쟁 당시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였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의 의미를 통역사를 통해 들은 후 고개를 내저으며 “사실이 아니다. 그들(한국군)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시관에 놓인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복 상의를 본 득 쩌이는 손으로 군복을 가리키며 “이 얼룩무늬 기억 난다. 여기에 방탄 조끼를 입고 있었고 군복 바지에는 주머니 여섯개가 있었다”고 말했다.
티 탄씨은 5분간 대통령 집무실 앞 인도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라’고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적힌 손팻말을 든 그는 “나는 학살 피해 생존자다. 한국정부가 베트남전 진실규명하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퐁니·퐁녓 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류씨는 지난해 11월 티 탄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4번째 변론기일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살 당시 주변 상황을 직접 증언한 바 있다. 그는 공판에서 “불 타는 가옥에서 노인이 나와 소리를 지르며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뒤에 있던 선임병이 사살했다”며 “다음날 도로 정찰을 나갔는데 70여구 가량의 시신들이 거적대기 위해 놓여져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측 변호인은 “류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티 탄씨가 직접 9일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 출석해 베트남인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대면 증언을 했다.
재판 참석 차 5일 한국에 입국한 두 사람은 8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2일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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