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내줘 고맙다"..참전군과 만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학살 피해를 법정에서 증언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응우옌 티 탄(62)과 학살 목격자 응우옌 득 쩌이(82)가 사건 발생 54년 만에 참전 군인을 만나 사과를 받았다.
티 탄과 득 쩌이는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참전군인 류진성씨와 만나 27분간 비공개로 티타임을 가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통역사도 함께 자리했다. 티타임에 참석한 인사는 “류씨가 가해군 중 한 사람으로서 사죄한다고 말했다”며 “티 탄은 용기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득 쩌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찾아가 사과했으면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면담을 마친 티 탄과 득 쩌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류씨는 지난해 11월16일 응우옌 티 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4번째 변론기일에 나와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학살 당시 상황을 참전 군인 최초로 증언했다. 그는 공판에서 “불 타는 가옥에서 노인이 나와 소리를 지르며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뒤에 있던 선임병이 사살했다”며 “다음날 도로 정찰을 나갔는데 70여구 가량의 시신들이 거적대기 위해 놓여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티 탄과 득 쩌이는 류씨와 만난 뒤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한국 시민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티 탄은 “2015년 한국 왔을 때 (항의) 시위하러 나온 군인이 많아 분노하고 충격 받았다”면서도 “이분들 외에 나한테 찾아와 사죄하고 위로해준 참전군인도 많았다. 그분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티 탄은 “류씨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했다”며 류씨와 만난 소감을 짧게 언급했다. 좌담회에는 8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류씨와 만나기에 앞서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둘러봤다. 티 탄은 전시관 초입에 ‘대한민국은 6·25전쟁 당시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였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의 의미를 통역사를 통해 들은 후 고개를 내저으며 “사실이 아니다. 그들(한국군)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시관에 놓인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복 상의를 본 득 쩌이는 손으로 군복을 가리키며 “이 얼룩무늬 기억 난다. 여기에 방탄 조끼를 입고 있었고 군복 바지에는 주머니 여섯개가 있었다”고 말했다.
티 탄은 5분간 대통령 집무실 앞 인도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라’고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적힌 손팻말을 든 그는 “나는 학살 피해 생존자다. 한국정부가 베트남전 진실규명하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티 탄은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삼촌인 득 쩌이와 지난 5일 입국했다. 두 사람은 8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2일 출국한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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