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다주택 시대' 선언? 매물 감소 부른 눈치 없는 부동산 정책
종부세 부과기준서 주택수 삭제, 다주택 재테크 부활 선포?
급증하던 다주택자 매물 감소세로 전환
무주택자 세입자는 고금리 이자폭탄 다주택자는 감세 폭탄 비판 자초
정부 임대 3법 개정 추진, 충분한 검토 필요 차학봉기자의>
문재인 정부 실패 원인 중 하나가 주택 정책의 폭망이다. 집권 초 “집값만은 잡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집값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정권의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경제이론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행운도 따르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으로 ‘팬데믹 버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전 세계 집값이 치솟았다. 큰소리 치지 않았다면 그냥 저금리, 코로나 탓이라고 우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주택 정책은 출발 자체가 성공을 보장한다. 실패해서도, 실패할 수도 없는 호조건이다. 일단 ‘반면교사’의 스승이 널려 있고 행운도 따른다. 문 정부가 규제정책 실패를 거듭한 끝에 깔아놓은 ‘3기 신도시’ 등 주택공급 확대 계획도 있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말로 조롱을 자초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추진한 신도시와 GTX정책의 결실을 윤 정부는 그냥 수확만 하면 된다.
◇문 정부 26번 대책에도 못잡은 집값, 하락 시작
미국발 금리인상과 유동성 축소가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른바 ‘천우신조’의 시운이다. 정부가 아무 것도 안해도 집값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 거품 순위 1,2,3위 국가로 꼽히는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은 이미 집값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급 부족으로 올해에도 16% 급등한다고 하던 미국조차도 집값 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도 10주 이상 하락세를 기록했다.
임대차 3법 탓에 우려됐던 8월 전세대란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6번의 대책을 내놓으며 잡으려했던 집값이 저절로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적절한 시기에 공급대책을 내놓고 집값 하락에 생색만 내도 박수받을 수 있다.
◇ 종부세 주택수 기준 폐지, 명분과 타이밍 적절한가
그러나 현 정부는 집값 하락을 저지하는 정책을 펴는 듯한 오해를 준다. 정부가 지난 달 내놓은 ‘2022년 세제개편안’은 다양한 분야의 세제 개편내용을 담고 있다. 꼭 필요한 내용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부동산 세제개편에 대해서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감세, 집값 하락 방지용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공시가 3억원 상당의 농어촌 주택에 대해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산정 때 주택 수로 치지 않도록 하는 등 비합리적인 세제를 개편했다. 박수 받아야할 내용이 많다.
그런데도 200쪽이 넘는 관련 자료중 유독 국민의 눈길을 사로 잡은 내용은 다주택 종부세 개편안이었다. 종부세 과세 체계를 주택 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문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유례가 없는 악법이다. 폐지해야 하지만 좋은 정책에도 절차, 명분, 타이밍이 있다.
세율 자체를 낮추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조건으로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식으로 우회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를 재산세로 통폐합하는 것도 방법이다.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질 때를 기다려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발표할 수도 있다.
◇문 정부는 경제이론 부재, 현 정부는 국민 공감 능력 부재
“다주택, 집 팔 이유 사라졌다”, “다주택 대호재, 중과세 폐지” “다주택 전성시대” “중과세 폐지 기막힌 타이밍”
세제개편안에 대한 부동산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벌써 주택경기 부양책을 꺼낸 것으로 해석한다. ‘똘똘한 한채’에서 ‘돈 버는 여러 채’로 투자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보유세 부담이 줄어든 만큼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중저가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수요가 일부 살아날 수 있다. 실제 정부 발표이후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철회하면서 수도권 아파트 매물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세제개편안 발표 전날인 7월20일 서울의 아파트 매물이 6만 4668건에서 8월 7일 6만2129건으로 급감했다. 경기도도 같은 기간 12만5312건에서 11만9385건으로 감소했다.
새 정부는 지난 5월 출범 직후 다주택자 양도세 일시적 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보유한 다주택을 빨리 처분하라는 정책이었다. 실제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크게 늘어났고 집값 하락세에 한 몫했다.
종부세에서 다주택 기준을 삭제하기로 하자 이번에는 거꾸로 다주택자 매물이 크게 줄고 있다. 불과 서너달 사이에 새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새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불리한 세제를 전반적으로 개편하기 때문에 이제 다주택을 처분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다주택을 장려해야 주택공급을 늘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틀린 이론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쓰기에는 집값 폭등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이 너무 깊고 아프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다주택자들은 벼락부자가 됐지만, 무주택자들이 벼락거지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다. 문 정부는 경제 이론을 역행, 엉뚱한 정책을 폈다. 현 정부는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경제원론에만 충실한 정책을 펴려는 것일까.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을 만든 사람들은 집값폭등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깊은 갈등과 상처를 남겼는지를 벌써 잊은 듯하다”면서 “현 정부가 무주택자보다 다주택자를 더 챙긴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세제개편안”이라고 말했다.
◇정책에도 명분, 포장, 타이밍 필요
새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이라면 그동안 집값 폭등으로 고통을 겪은 무주택자를 위로하고 꿈과 희망을 주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무주택자를 위한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을 돕는 세제, 자금 지원안을 우선해야 했다. 정책 발표에도 순서가 있어야 한다.
다주택 감세는 우회로를 택하면 명분있는 감세가 가능하다. 다주택자들 중에 생계형 임대사업자도 많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다주택자 감세’도 정책을 만들기에 따라서는 임대 주택 물량 공급확대 방안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방통행식 정책으로는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다. 정책에 명분과 포장, 타이밍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런 것을 무시한 이번 발표에 대해 일부 매체와 시민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자 감세’, ‘다주택자 감세’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관련 법 개정에 야당이 반대를 공언하고 있다. 다주택 종부세 중과세를 고치려면 적폐청산하듯 밀어 붙일 것이 아니라 국민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선진국도 1주택자에 세제 혜택
추경호 부총리는 국회에서 세제개편안이 다주택자 감세라는 비판에 대해 “왜 3채에(합계 가격이) 15억원인 사람이 더 징벌적 과세를 받아야 하느냐”면서 “1채 50억이 훨씬 더 내야한다”고 반박했다.
다주택을 장려하는 듯한 발언이다. 그동안 정부 말을 믿고 1가구 1주택을 지켜온 대부분의 국민들을 허탈하게 한다. 적폐청산의 대상은 잘못된 정책이다. 잘못된 정책을 믿고 따른 1주택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징벌적 과세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것과 다주택자를 1주택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다르다. 선진국에서도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세제혜택을 준다.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시켜 사회적 기여를 하도록하는 대신에 감세혜택을 주는 것이 국제기준이다.
◇이번엔 임대차법 개정, 부작용 없나?
정부가 전월세 값 상승, 전세보증금 이중가격 형성 등 전월세 시장을 왜곡시킨 주범으로 지목돼 온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개정 작업을 본격화한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계약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이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한 ‘전월세상한제’ 와 임차인이 4년을 거주할 수 있도록 임대차법을 개정했다. 개정 법 실시후 전세매물이 감소하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월세전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개정법 시행이후 극심한 부작용을 겪었지만, 임대시장이 일부 안정을 되찾고 있다. 정부 구상대로 임대차법을 다시 개정할 경우, 전세가격이 더 안정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다시 예상하지 못한 혼선과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혜택을 본 사람들도 많다.
부작용을 최소하하기 위해서는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놓은 다음에 임대차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무리 명분이 있고 정의로운 정책도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국민을 괴롭게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임대차법 개정으로 많은 국민들이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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