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멧돼지 차단 전기울타리, 효과없어 보완해야"

이연경 2022. 8. 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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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울타리 야생동물 못막아
여름철 불법 사설 설치 잇따라
감전 인명사고 여러 차례 발생
멧돼지 천적 없어 개체수 증가
피해 막으려면 수렵 활성화를
동물별 효과적 전압 연구해야
 

환경부가 지원하는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을 통해 설치한 정부 공식 전기울타리 모습. 감전 방지를 위해 노란 팻말이 붙어 있는 게 눈에 띈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는 인식 때문에 불법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그로 인한 인명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목숨 걸고 하는 거라 연중 설치하진 않아요…….”

불법 전기울타리가 설치돼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기 포천시 영중면·영북면 일대를 취재하다가 만난 지역 농민은 말꼬리를 흐리며 자리를 떴다. 영중면에서 9917㎡(3000평) 쌀농사를 짓는다는 한 농가는 “동네 인심 사나워질까 봐 말은 못하지만, 몇몇 주민이 논밭에 불법으로 전기울타리를 설치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8월부터 불법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벼꽃이 지고 낟알이 여물어가는 시기에 멧돼지 습격이 심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2일 충북 옥천에서 불법 전기울타리에 감전돼 2명이 목숨을 잃는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같은 비극이 전국적으로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2009년엔 강원 강릉에서 관광객 2명, 2011년엔 강원 평창과 경기 파주에서 지역주민과 군인이 감전돼 사망했으며 이후에도 인명사고는 수차례 발생했다.

이같은 사고는 모두 환경부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을 통해 설치한 정부 공식 전기울타리가 아니라 농민이 임의로 세운 불법 전기울타리에서 발생했다. 이런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는 불법 행위다.

공식 전기울타리 설치에 정부지원금을 60%나 받을 수 있는데도 불법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이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 이유는 공식 전기울타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학계에서는 시설 유지·관리만 잘되면 공식 전기울타리가 분명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현장 농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공식 전기울타리의 경우 접촉이 계속되면 누전이 되거나 자동으로 전기가 차단된다. 여름철 잡초가 자라 울타리에 지속적으로 닿기만 해도 자동으로 전기가 차단돼 정작 야생동물에 전기 충격을 줄 수 없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설치와 관리 매뉴얼’을 발행하고 제초제를 뿌리거나 직접 뽑아 잡초를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는 농가의 애로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유기농 농가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시행 이후 일반 농가도 제초제를 함부로 뿌릴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김진복 충북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아래서 자라는 잡초뿐만 아니라, 여름철 기승을 부리는 칡넝쿨이 위에서 늘어져 (전기울타리에) 닿기만 해도 전기가 자동으로 차단되는데, 이게 어떻게 멧돼지나 고라니를 막겠냐”며 하소연했다.

바닥에 방초시트(풀이 못 자라게 하는 패드) 등을 깔라는 지침도 있지만 농가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기울타리를 설치하는 지역은 보통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토지 평탄화 작업조차 안된 곳이 대부분이라 현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야생동물 출몰지역의 몇몇 농가는 “공식 전기울타리를 설치했다가 효과가 없어 철거한 집도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전기울타리의 설계 표준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사고가 발생한 충북 옥천군 안내면의 이웃농가는 “공식 전기울타리는 사람도 따끔하고 마는 정돈데, 가죽 두꺼운 멧돼지가 놀라기나 하겠냐”고 한숨지었다.

보통 정전기 전압이 최대 1만5000볼트 정도인데, 정부 공식 전기울타리의 충격 전압은 최대 1만볼트 정도로 알려졌다. 멧돼지가 아니라 사람이 닿아도 겨우 움찔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수렵을 활성화하는 등 야생동물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창용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는 “설치비용과 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전기울타리는 한계가 있는 차선책”이라고 설명했다. 경작지 주변에 지주대를 깊이 박은 철망울타리로 완전히 둘러싸는 게 효과면에서는 가장 좋지만 이경우 지형에 따라 설치가 어렵고 시설비는 과다하게 드는 반면 유지·보수가 어려워서다.

최 교수는 “만약 고라니나 멧돼지 피해가 발생할 경우, 가장 적극적인 대응 방법은 지방자치단체에 ‘유해야생동물 포획허가’에 대한 민원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연적인 천적이 없는 국내 상황에서는 수렵이 근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현실적으로 민원을 청구해 야생동물을 포획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며 “수렵장을 활성화해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전기울타리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국내 환경에 맞는 후속 연구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동물별로 효과적인 전기울타리 전압이 연구되기도 한다.

또 전기울타리에 ‘테이저건(경찰이 난동을 제압할 때 인체에 쓰는 전기충격기)’ 원리를 채택할 수 없냐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테이저건의 전압은 5만볼트 정도로 전기울타리보다 강력하고, 무엇보다 인체에 단자를 접촉해 전류가 흐르게 해 난동자를 마비시키는 게 주요한 원리다.

농업 현장에서는 “정부는 가뜩이나 개체수가 늘어난 야생동물과 공존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수렵 확대 등 농민을 위한 보다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포천=이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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