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드문 용답동, 녹지 많은 성수동보다 3도 이상 높았다 [시공간으로 읽는 더위]

박유빈 2022. 8.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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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개구 기온·체감온도 측정해보니
집값 높은 마포·성동·송파·용산구
아파트 내외부에 공원·가로수 많아
실제 기온 높아도 체감온도는 낮아
골목 빽빽한 단독·다가구 주택가는
바람 적고 바닥열로 더 뜨거워
600m 거리 아파트보다 확연히 높아
부유한 지역일수록 연료비 더↑
자치구별 녹지 예산 격차 줄여야
면적 확대 어렵다면 '품질' 향상을
매일 먹는 음식, 즐겨 입는 옷, 운전하는 차,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돌아가는 집, 하루 중 수 시간을 들여 하는 노동의 종류까지 ‘모든 삶은 귀하다’지만 삶의 면면은 모두가 다르다. 소득이나 재산 규모에 따라 발생하는 생활 수준의 차이는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차이는 어디까지 얼마나 당연할까. 더구나 이런 차이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찾아오는 자연 현상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면?
녹색은 녹색인데… 차도 하나 두고 온도차 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대규모 아파트 단지 레이크팰리스와 삼전동 주택가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이다. 레이크팰리스는 단지 내 녹지가 빼곡한 반면 삼전동 주택가는 녹색 방수페인트를 칠한 옥상만 두드러져 보인다. 거리 하나를 두고 떨어진 두 동네에서 지난달 25일 측정한 기온은 1.18도, 주변 구간 온도는 2.82도 차이 났다. 하상윤 기자
세계일보는 지난달 25일 서울 네 개 자치구를 골라 같은 구 안에서도 기반 여건에 따라 동네별 기온과 체감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측정했다. 마포구, 성동구, 송파구, 용산구 네 곳에서 부동산 가격과 열분포도, 녹지면적 차이가 큰 곳을 골라 실제 온도를 쟀다. 온도 측정을 위해 기상청이 보유한 기상관측차량 두 대에 나눠 타 마포구와 용산구, 성동구와 송파구에 따로 이동했다. 차량에 부착된 휴대용 기상관측장비를 이용해 구별로 대표지점을 두 곳씩 비교했다. 바람 등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 기온은 한 곳에서 10분간 정차하며 쟀고 습도와 풍속 등까지 함께 측정해 체감온도도 구했다. 동시에 차량에 부착된 센서를 활용해 이동하는 내내 경로별 온도 변화까지 추적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낮 서울(종로구 송월동 기준) 기온은 32.0도까지 올랐다. 그러나 같은 구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측정된 기온은 상이했다.

◆더위는 누울 자리를 알고 있다

네 개 구 공통적으로 단위면적당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눈으로 보이는 녹지면적은 더 넓고 실제 기온은 낮았다. 성동구 성수동1가에 있는 트리마제는 이번에 관측한 지점 중 단위면적당 가격이 가장 높은 곳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한 올해 상반기 트리마제 매매는 총 14건이었다. 전용면적과 거래금액으로 계산한 3.3㎡당 평균 거래금액은 대략 1억3200만원이다. 인근에 서울숲공원이 있고 단지 내 조경 등으로 비교적 녹지가 풍성한 트리마제는 단지 내부나 주변에서 그늘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후 4시30분부터 정지 상태로 매분 측정한 기온은 평균 31.33도였다. 체감온도는 이보다 소폭 낮은 30.92도였다.
용답동은 성동구 안에서도 낙후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생활안전지도에서 본 서울 열분포도에 따르면 성동구 안에서도 이 지역은 특히 붉게 칠해져 있다. 나뭇가지 대신 전선이 낮게 내려앉은 용답동 주민센터 안쪽 골목은 오후 5시가 넘어 해가 꺾이는 시간에도 정지 상태에서 기온이 32.65도까지 올랐다. 같은 날 트리마제보다 1.32도 높았고 체감온도 역시 31.89도로 0.97도 더 더웠다. 용답동은 단독·다가구 주택 거래금액이 3.3㎡에 4258만원이었다.

노면 주변 온도 차이는 더 극명하다. 차량 외부에 달린 센서로 측정하는 노면 주변 대기온도는 관측차량이 이동하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다. 트리마제 단지를 빠져나와 뚝도아리수정수센터 삼거리로 나가기까지 약 5분간 매분 측정한 평균 온도는 34.86도였다. 용답동으로 이동해 오후 5시9분 답십리역 부근부터 용답중앙하이츠아파트를 지나 청운빌라 앞 골목에 진입하기까지 약 400m를 4분간 이동하며 측정된 온도는 평균 37.92도였다. 그늘을 찾기 어려운 용답동 골목은 성수동1가보다 3도 이상 더웠다.

송파구 잠실동은 단지 주변 조경이 잘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했다. 롯데월드 인근 잠실동 레이크팰리스는 몇 골목만 건너면 나오는 삼전동과 기온이 1.18도 차이 났다. 삼전동 주민센터 안쪽 골목은 관측 당시 해가 구름에 가려 그늘졌음에도 1도 이상 기온이 높았다. 이날 관측을 지원한 수도권 기상청 관계자는 “삼전동 골목이 더 빽빽해 건물 등에서 나오는 복사열과 바닥열로 공기가 더 뜨겁고 바람은 더 적게 분다”고 했다.
두 동네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녹지면적부터 차이가 확연하다. 레이크팰리스는 단지 외부에 가로수가 늘어섰고 단지 안에도 그늘을 만들 녹색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다. 단지 안에 부는 바람 역시 체감온도를 낮추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두 곳의 집값 차이는 어떨까. 지난 6월까지 레이크팰리스의 올해 매매 거래금액 평균은 3.3㎡에 대략 8860만원이다. 삼전동 단독·다가구 주택은 3.3㎡당 약 2934만원에 거래돼 단위면적당 가격 차이가 세 배 벌어졌다.

노면 주변 온도 역시 3도 가까운 차이가 확인됐다. 오후 2시52분 단지 내 기온을 측정한 레이크팰리스 113동 앞에서 출발해 잠실학원사거리까지 이동하며 잰 평균 온도는 35.98도였다. 곧바로 삼전동으로 이동해 주민센터 앞 사거리를 지나 라온베이커리 앞까지의 600m 구간 평균 지면 주변 온도를 측정한 결과, 38.8도였다. 몇 분의 간격을 두고 잰 양옆 동의 온도가 3도 가까이 벌어졌다.

용산구 한남동 역시 원효로1가에 있는 용산경찰서 주변 주택가와 온도 차이가 확연했다. 올해 7건의 매매가 있던 한남동 더힐은 3.3㎡에 평균 1억2700만원대로 거래됐다. 용산경찰서가 속한 원효로1가 단독·다가구 주택 평균 거래가는 3.3㎡당 7528만원이었다.
삼전동 주택가. 하상윤 기자
용산구의 더위 역시 집값 차이를 알아볼까. 한남동 더힐 앞에 관측차량 위치를 고정해 두고 잰 평균 기온은 31.62도였고, 용산경찰서 정문 앞의 평균 기온은 32.73도였다. 기온 차이는 1.11도까지 벌어졌다. 용산경찰서 주변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0.62도 더 높았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총 네 단지로 구성된 대단지다. 올해 상반기에 거래된 집 모두 3.3㎡당 7020만원에서 최고 8580만원대 초반을 기록했다. 염리동 주택가는 여기서 직선거리로 400m 남짓 떨어진 곳이다. 두 지역의 온도 차는 앞선 세 구와 유사했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주변에 10분간 정차하고 쟀을 때 평균 32.58도였던 기온이 염리동 주택가에서는 33.52도까지 올라 0.94도 더 높았다. 평균 체감온도는 각각 31.96도, 32.91도로 0.95도 차이를 보였다. 노면 대기온도는 아현동 36.82도, 염리동 38.63도로 1.81도 벌어졌다.

◆도시에 진짜 녹색을 늘려 주세요

습도가 높은 우리나라 여름철에는 해가 지고 난 뒤에도 낮에 달궈진 기온이 1도 떨어질 때까지 1∼2시간이 걸린다. 지난달 25일 기온 추이만 봐도 낮 최고기온이 1도 떨어지는 데 2시간이 소요됐다. 마포구 망원동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 기록을 보면 당일 오후 3시쯤 32.3도로 최고기온에 도달한 뒤 4시에도 같은 기온이 유지되다가 5시가 돼서야 31.5도로 내려왔다. 비슷하게 날씨가 맑았던 지난달 18일 송파구 잠실동 낮 최고기온은 오후 1시에 30.0도까지 올라 오후 6시까지 29도 안팎으로 열기가 식지 않았다. 여름 한낮에 1도의 변화는 이렇게 천천히 나타난다.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 주택가에서 기상청 기상관측차량이 기온, 습도 등을 관측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그러나 녹색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거지일수록 비슷한 시간대임에도 1도 안팎의 기온 차이는 확연했다. 노면 대기온도가 2∼3도까지 벌어지는 것도 녹지와 무관한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폭염 관련 연구를 진행한 서홍덕 국립산림과학원 박사에 따르면 실내 버스정류장을 설치하고 내부를 녹색 식물로 꾸며 뒀을 때 체감온도와 얼굴 표면 온도가 낮아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서 박사는 “도시숲이 그늘을 만들고, 식물이 호흡하면서 배출한 수분이 기화하면서 온도를 낮추고, 직사광선은 반사해 주면서 온도 저감 효과가 생긴다”며 “녹지가 많으면 2∼3도 정도 온도를 낮춘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서울시 조례에도 도로가에 가로수를 7∼8m 간격으로 심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폭이 3m 이상인 도로에만 해당되는 지침이라 보통 차와 사람이 뒤섞여 오가는 좁은 생활도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낙후 지역은 주택가가 오래전에 조성된 경우가 많다. 드론으로 촬영한 주택가는 가로수 대신 옥상에 칠해진 페인트가 녹색을 대신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로수 관리 방침이 서기 전 조성된 주택가는 가로수를 식재하기 어려워 현재 기준에 미달하는 지역이 많을 것”이라며 “가로수가 풍성한 아파트 입구 등은 사유지라 건설사나 아파트 주민이 조성한 녹지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하상윤 기자
문제는 녹색 인프라 유무에 그치지 않는다. 부유하고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일수록 가구당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될 공산이 크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분위별 도시 가구의 월평균 연료비는 1분위 가구가 5만5693원, 5분위 가구는 10만5623원이었다.

현실적으로 ‘절대 면적’을 늘리기 어렵더라도 녹지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혜영 생명의숲 활동가는 “자치구별로 ‘공원 서비스 소외 지역 0%’ 달성을 목표로 이를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자치구마다 녹지 관리 예산 규모에 격차가 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녹지를 조성하기 어려운 낙후 지역은 학령인구 감소나 실내체육관 확대로 생긴 학교 부지 등을 활용해 공원숲을 만든다면 녹지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유빈·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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