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똥장군의 추억

2022. 7. 29.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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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장군을 아시는가? 을지문덕 장군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웬 똥장군? 장군 앞에 더러운 똥 자를 붙이다니, 장군에 대한 모독 아냐? 모르시는군.

똥장군, 그 생긴 몸매는 자랑할 만한 근육질의 사내 몸매도 아니고 펑퍼짐한 시골 아낙을 닮은 몸매.

올여름엔 장독대 옆에 저절로 자란 돌콩 덩굴이 똥장군을 사랑스러운 듯 끌어안고 있었어.

똥장군과 돌콩의 동거는 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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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장군을 아시는가? 을지문덕 장군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웬 똥장군? 장군 앞에 더러운 똥 자를 붙이다니, 장군에 대한 모독 아냐? 모르시는군. 똥장군은 세상의 어떤 장군 못잖게 장한 일을 하던 장군. 자, 내 얘기에 잠시 귀 기울여보시라.

똥장군은 사람의 분뇨를 넣어 지고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사용했던 농사 그릇이었지. 주로 봄에 변소에서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밭으로 옮겼어. 우리 조상들은 왜 똥장군이 필요했을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분뇨를 모아 퇴비를 만들어 거름으로 사용했거든.

이젠 농부들도 똥장군을 사용하지 않아 농업박물관이나 가야 볼 수 있지만, 작은 농업박물관이기도 한 우리 집에는 장독대 옆에 오래된 똥장군이 있지. 흙으로 구운 옹기라 깨질까 봐 이사 갈 때마다 조심조심 끌고 다녔어. 똥장군, 그 생긴 몸매는 자랑할 만한 근육질의 사내 몸매도 아니고 펑퍼짐한 시골 아낙을 닮은 몸매. 몇해 전엔 난 키우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그 똥장군을 거실에까지 들여놓고 귀한 풍란을 붙여 키우기도 했지. 똥장군과 풍란. 천민과 귀족의 격의 없는 어울림이랄까. 똥장군에 붙여 키운 풍란이 꽃을 피웠을 때 그 묘한 감동이란!

올여름엔 장독대 옆에 저절로 자란 돌콩 덩굴이 똥장군을 사랑스러운 듯 끌어안고 있었어. 똥장군과 돌콩의 동거는 자연스러웠어. 아내가 억지로 풍란을 붙여 꽃을 피운 동거보다 자연스러운 동거라 더 아름다웠지. 얼마 뒤 똥장군엔 돌콩이 보랏빛 꽃을 피웠어. 똥장군이 피운 꽃인지 돌콩이 피운 꽃인지 구분이 되지 않더군.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소농인 아버지는 봄이 되면 똥장군에 분뇨를 가득 담고 지게에 얹어 산밭으로 가곤 하셨지. 이따금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셨는데 풀풀 날리는 똥 냄새가 싫어 코를 움켜쥐고 아버지 뒤를 따라갔던 아련한 기억. 산밭에 도착한 아버지는 지게에 지고 온 똥장군의 입을 열고 밭고랑에 분뇨를 쏟아부으셨어. 옥수수와 감자를 심은 밭이었는데 수확할 때가 되서 밭에 가면 어른 팔뚝만큼 자란 옥수수와 아이들 머리통만 한 감자를 거둘 수 있었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진북학의>를 보면 옛사람들이 얼마나 사람의 분뇨를 소중히 여겼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어.

“한 사람이 하루에 배설하는 분뇨로 하루 먹을 곡식을 생산해내니, 백만섬의 분뇨를 버리는 것은 백만섬의 곡식을 버리는 것….”

오늘 내가 까마득한 똥장군의 추억을 소환한 것은 화학비료와 제초제 같은 농약으로 황폐해진 우리 농토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야. 한줌의 건강한 흙 속에는 지구 인구수만큼의 미생물이 살아 있다고 해. 아주 드물지만 분뇨로 미생물이 살아 있는 건강한 옥토를 만들려고 옛날식 변소를 만들어 사용하는 멋진 농부들이 내 주위엔 있어.

밥이 곧 하늘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야. 먹을 식량을 내어주는 땅이야말로 거룩한 하늘이 아닌가. 지금은 농업박물관에 가야 겨우 구경할 수 있지만, 똥장군이야말로 밥의 근본인 땅을 하늘로 섬기던 농기구. 식량위기가 코앞에 닥친 시절, 그럼에도 자본 증식의 욕망에 코가 꿰여 무엇이 근본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중한 박물, 똥장군!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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