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처 몰랐던..아내의 '집안일'[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면바지에 뭘 묻혀놨어?"(나)
"여기 또 묻혔네. 어디서 묻힌 거야?"(나)
빨래를 처음 하는 내가, 과거의 내게 묻고 있었다. 그러게, 어디서 묻혔더라. 왜 왼쪽 주머니 밑에 자꾸 묻혔을까. 아내가 내 중얼거림을 듣더니 대신 답해줬다.
"오빠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손을 거기 닦더라고."(아내)
얼룩 제거제를 쥐고 칠칠치 못한 꺼먼 얼룩을 벅벅 밀었다. 잘 안 닦였다. 잠시 둔 뒤 얼룩에 물을 묻혔다. 이번엔 비벼서 지워봤다. 잘 안 닦였다. 벅벅, 벅벅벅, 벅벅벅벅벅, 몇 번을 문지른 뒤에야 조금씩 지워졌다.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은 무더웠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닿지 않았다. 땀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바지 얼룩을 다 처리한 뒤 세탁기에 넣었다. 다음 빨래를 꺼냈다. 또 내 옷, 하늘색 반소매 티셔츠였다.
티셔츠를 들고 얼룩이 있나 또 찾았다. 백색 다용도실 조명이 새삼 어둡게 느껴졌다. 눈을 껌뻑껌뻑하며, 뭐가 묻었는지 옷을 돌려보았다. 앞쪽에 또 뭐가 묻어 있었다.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아내가 여기 오래 서 있었구나, 그걸 새삼 알았다. 결혼한 지 무려 8년 차가 돼서야.
내가 잘 몰랐던 집안일들을, 그리 하나씩 배우고 있었다.
나름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내가 집안일 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대충하고 끝내자", "내일 하자",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못 하는(실은 배울 생각도 안 했던) 영역이었기에. 2015년에 결혼했는데 무려 만 7년을 그리 보냈다.
아내와 마주 앉아 노트북을 폈다. '전체 집안일 리스트'를 쭉 쓴 뒤 나눠봤다. 역시나 아내가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상단 표 참조). 아내는 오히려 "오빠도 많이 하는데…횟수나 이런 걸 봐야 해"라고 했다. 그러나 그걸 다 고려해도 아내의 집안일이 더 빼곡했다.
내가 몰랐던 집안일을 며칠간 다 '마스터' 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야 매일 덤벼오는 집안일을 더 빨리 끝내고, 아내랑 더 오래 같이 놀 수 있으니까.
최소 세 번은 돌린다고 했다. 1. 수건과 속옷, 2. 집에서 입는 옷, 3. 밖에서 입는 옷. 그에 따라 쓰는 세제도, 물 온도도, 헹구는 횟수도, 종류별로 다 달랐다. 조심히 빨아야 하는 건 찬물+울 샴푸로, 그렇지 않은 건 세제와 섬유유연제와 표백제로. 다용도실 찬장에 놓인 녀석들 정체가 뭔지 알쏭달쏭했는데, 비밀이 풀렸다.
밖에서 입은 걸 빠는 게 제일 힘들었다. 옷감이 안 상하게 찬물 빨래를 하는데, 그럼 얼룩이 잘 안 지워져 '딜레마'. 그러니 미리 얼룩 지우는 작업이 필수였다. 옷을 하나씩 들고 돌려서 보는데, 뭔가 묻은 건 죄다 내 옷이었다. 그런데 더럽게 안 지워져 진땀이 났다. 게다가 다용도실 조명은 어두웠고, 에어컨도 안 닿아 더웠다. 그것도 잘 몰랐었다.
"힘들었겠다. 내가 뭘 자꾸 묻혀서. 이제 조심할게."(나)
"괜찮아, 내 일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려니 했지."(아내)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빨래가 끝난 결과물을 보며 알았어. 세제를 얼마나 쓸지, 온도를 어떻게 맞출지. 어떨 땐 세제가 너무 많아서 거품 나고, 아니면 많이 적기도 하고. 그러면서 맞췄거든."
빨래 후 목이 늘어진 옷을 보며, 아내가 속상해하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다. 이제야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를 진심으로 끄덕일 수 있었다.
빨래를 이어갔다. 첫 번째 빨래가 끝나고 건조하고, 건조한 건 다시 개고. 갠 건 옷장에 넣고. 또 빨래하고, 건조하고, 개고, 옷장에 또 넣고. 마지막 빨래를 돌리고, 묵직한 걸 흰 바구니에 넣어 들고 오고, 얼룩이 지워졌나 살피고, 건조대를 꺼내고, 옷걸이에 걸어서 널고.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옷장에 넣고. 빨래가 다 끝나면 세제 통을 꺼내어 씻고, 남은 물을 빼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마른걸레로 통 테두리를 닦고.
뽀송뽀송한 옷과 속옷, 수건, 양말 뒤에 숨은 길고도 복잡한 노고들을, 깊게 상상하지 못 했다. 빨래가 건조대에서 말라가는 동안 냄새를 킁킁 맡고, 앞뒤를 뒤집어 보게 되었다. 나 홀로 뿌듯해했다. 아내도 그동안 그랬었다. 그런데 그걸 알아주지 못했다.
정전기 청소포를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 쓸어내렸다. 물걸레로 하면 먼지가 뭉쳐서 닦기 힘들단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쪼그렸다가 섰다가, 온몸을 써가며 하나하나 닦아냈다. 40년산 허리가 욱신거렸다.
서재를 닦을 땐 일하던 아내가 잠시 일어났다. 그동안엔 내가 늘 일어나는 쪽이었다. 내 손이 지나간 곳마다 먼지가 시원스레 사라졌다. 아내에게 말했다. "닦을 게 참 많다. 이걸 언제 다 했어…."
내가 주로 일하는 거실 테이블 먼지도 닦았다. 거기에 온갖 물건을 다 늘어놓았었다. 그 상태로 먼지를 쓸어내려니 거추장스러워 다 치워야 했다. 그래서 아내가 하나씩 내려놓았었구나, 무심하게 보냈던 장면이 새삼 기억났다. 물건을 다 치웠다가 먼지를 닦고, 다시 원위치로 올려놓는 것도 귀찮은 일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제야 오래 그냥 뒀었던 거실 테이블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치웠다. 고작 1분이면 될 일. 그걸 안 해서 아내가 분주히 치우고 또 놓느라, 10분은 더 걸렸을 터였다.
소파에 뻗었다. 10분만 자려고 알람을 맞췄는데, 사뿐히 1시간이 흘렀다. 낮인지 밤인지 한참을 생각하며 잠을 깼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다음 집안일은 또 뭘까?"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내는 힘들 거라며 좀 더 쉬라고 했다.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잘 모르는 주제에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 아내는 내가 모르는 일이 또 있다고 했다(심쿵).
아내는 내가 잘 몰랐던, 우리 집 '걸레받이 몰딩(이하 걸레받이)'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그곳엔, 한겨울 첫눈처럼 소복소복 쌓인 먼지가 한없이 이어진다고 했다. 태백산맥 능선이 한반도에 굽이굽이 이어지듯이 집안 어디를 향해도 이어진 그곳.
'에이, 설마, 먼지가 얼마나 많겠냐'며, 정전기 청소포로 걸레받이 위를 쓱 훑어보았다. 길게, 새까맣게, 먼지가 '좌악' 묻어났다. 얌전히 쌓여 있는 것 같아 그대로 두고 싶었다.
빨리 끝내자고 맘먹었다. 노동요를 틀어 이어폰을 꽂고, 반려견 똘이가 '똥꼬스키'를 타는 자세로 집안 여기저기 다니며 걸레받이를 청소했다. 먼지를 쓸 때마다 평소 잘 안 쓰던 "으악", "아악", "우왓",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다 닦고 나니 하얀 청소 포가 새까매졌다.
여름철은 특히나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단다. 화장실로 향했다. 아내는 내가 주로 쓰는 변기를 가리켰다. 잘 보라고 했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봤다. '분홍색 테두리'가 동그랗게 쳐져 있었다. 이 아름답지 않은 건 대체 뭐냐 물으니 '그 유명한 분홍 물때'라고 알려줬다. 꺼림칙했다. 뉴스를 찾아보니 곰팡이는 아니라 인체에 해롭진 않은데, 그냥 놔두면 안 좋단다.
욕실 청소를 시작했다. 무척 습하고 덥겠다 싶었다. 태초 인간의 모습이 되어 허물을 벗고, 자연인처럼 걸어 들어가 화장실 문을 닫았다. 땀날 때마다 샤워기로 머리에 찬물을 뿌릴 참이었다. 청소액을 뿌리고 구석구석 솔질했다. 욕실은 좁다란 공간이라 잔뜩 웅크리고 쪼그린 채 힘쓰는 게 힘겨웠다.
특히 변기의 '분홍 물때'를 닦는 건 고역이었다. 욕실 하수구의 미끄덩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정체불명 때를 닦는 것도 그랬다. '다 내게서 온 것'이라 도를 닦으며, 쓱싹쓱싹 닦아내었다.
'내게서 오지 않은 것'을 닦아야 했을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겠다 싶었다. 진작 내가 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찬물로 시원하게 헹구고, 땀에 찌든 내 머리도 씻어내고, 복잡하고 미안한 마음만 남겨두었다.
아내는 요술봉처럼 생긴 '식물 토양 습도계'를 가져왔다. 흙에 꽂아서 '말라 있다(Dry)'는 표시가 뜨면 주면 된단다. 습도계를 들고 흙에 하나씩 꽂아보았다. 물을 줄 때가 된 화분이 5개였다. 황칠이, 동글이, 동백이, 환타지아, 엔젤스킨까지(이름은 외우기 쉽게 내 멋대로 지었다).
우리 집 환경과 계절에 따라, 물 주는 주기가 다르다고 했다. 여름엔 동백이는 4일에 한 번, 다른 네 화분은 10일에 한 번 준다고 했다. 화분을 하나씩 베란다에 가져와서 물을 주었다. 화분 밑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흠뻑 주면 된다고. 작은 식물들이라 금세 물이 흘러나왔다. 졸졸졸, 물 마시는 소리에 마음이 상쾌해졌다.
물 준 날짜를 다 기록한다고 했다. 그날부턴 내가 기록하기로 했다. 모든 식물의 물 주는 날짜, 주기를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모양이 헷갈리는 식물은 비루한 그림이나마 구분할 수 있게 그려놓았다. 이어 통풍이 될 수 있게 바깥 창문을 열고, 선풍기로 바람을 쐬어주었다. 빠짐없이 살아 있구나, 새삼 책임감이 느껴졌다.
하나씩 해보며 아내가 해온 집안일의 힘듦을 비로소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설거지할 때 아내가 "안쪽 유리에 물 튀면 한 번만 닦아줘"라고 했던 이유를. 그 유리는 평소 내가 닦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 닦았다. 앞으로 튀어나온 싱크대 때문에 자세가 안 나왔다. 한껏 허릴 숙이고 굽혀도, 힘을 줘서 유리를 제대로 닦기 힘들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유리를, 끙끙대며 몇 번을 씨름한 끝에 겨우 다 닦았다.
그러니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싱크대 유리 닦아보니 되게 힘들더라. 왜 설거지 끝나면 한 번 닦으라는지 이제 알겠어. 오래돼 얼룩지면 더 닦기 힘들잖아."(나)
"맞아, 그 유리 닦는 게 좀 많이 힘들었어."(아내)
"물 튀는지 잘 보고 미리미리 잘 닦을게."(나)
"응, 고마워."(아내)
물건 닦는 게 힘든데, 오늘은 안 하니까 좋다며 아내는 웃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 잘 몰랐다. 물건에 내려앉은 미세한 먼지를 쓸어낸 이를, 매일 쓰는 칫솔이며 수세미를 기꺼이 소독해주는 이를, 냄새나지 않게 쓰레기통을 조용히 닦아내어 준 이를, 베개와 이불과 쿠션 먼지를 다 털어 내어준 이를.
집안일을 다 해본 뒤에야 알았다. 열심히 해봐야 티도 잘 나지 않는다는 걸. 혼자만 '깨끗해졌어'라고 중얼거리게 된단 걸. 그러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일을, 서로 물어봐 주고 알아주면 고단한 집안일을 버티는 힘이 된단 것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기쁨이랄까.
"그런데 오빠 하는 일도 사실 힘들잖아. 나도 전에 설거지 해봤는데, 진짜 귀찮고 힘들더라고. 너무 힘들었겠어."(아내)
"별거 아냐. 자기가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잖아. 그래도 알아줘서 고마워."(나)
매일 끝없이 밀려오는 '집안일'이라는 것. 그러나 안 하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걸 난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 알았다. 엄마가 병원에 몇 달 입원했을 때, 그 자리에 당연하게 있었던 빨래가 사라지고 집안이 엉망진창이 됐을 때. 밥통에 밥이 사라지고 먹을 게 없어 컵라면만 먹어댔을 때.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과 양말이,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로 가지 않을 때.
모든 집안일을 하나씩 다 해본 뒤, 누군가 혼자서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새삼 느꼈다. 아무렴, 우리가 집에서 살아가기에 매일 생기고, 또 해야만 하는 모든 일이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생략된 주어가 있다. 그냥 '집안일'이 아니라, '우리의 집안일'이라고.
그리고 아내가 해왔던 집안일까지 다 잘 배운 덕분에, 난 '우리의 집안일'을 언제든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모르는 것 없이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아내가 직장 일에 지쳐 힘든 날에도, 몸이 좋지 않은 날에도.
에필로그(epilogue).
집안일 체험을 한다니까 장모님께서 물으셨다.
"남 서방, 그런 게 기사거리가 되는 거야? 우린 다 그렇게 살았는걸."
그래서 직접 집안일을 다 해보니 얼마나 힘든지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이렇게 집안이 깨끗하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한 움직임이 필요한 건지 잘 안다고,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장 보고 요리하고 차리고 설거지하는 매일의 귀찮음을 얼마나 견뎌야 하는지도.
엄마에게도 물어보았다. 내가 전혀 몰랐던 오래전 엄마의 집안일에 대해.
"아가 땐 똥 기저귀, 오줌 기저귀 나눠서 빨았지. 기저귀? 엄청나게 나왔었어. 밥을 처음부터 어떻게 잘했겠어. 처음 결혼했을 땐 밥을 작은 솥에다 했는데, 하루는 진밥, 하루는 된밥을 했지. 오죽하면 아빠가 자기가 하겠다고. 조기 굽다가 다 태워서 무지 놀랐었어. 너 학교 다닐 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도시락 쌌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느라 힘들었겠다고, 그때 엄마 도시락 반찬 맛있다고 친구들 난리였다고, 나도 그 밥이 제일 맛있어서 점심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그러고 보니 집안일로 이야기를 나눈 게 아주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독 말이 많으셨던 것 같다. 엄마도, 장모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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