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낸 뒤 절필..그녀가 55년간 소설 안 쓴 이유 [사이언스라운지]

이새봄 2022. 7.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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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라운지] 포스트잇과 스팽스, 아이폰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치와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 등 가장 성공적인 발명품에는 '창의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개봉됐던 한국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 등장하는 남주인공은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7년째 슬럼프를 겪으며 후속작을 내지 못한다. 이렇게 속칭 '대박작품'을 내고는 후속작을 쉽사리 내지 못하는 사람을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른다. 원래는 데뷔 이후 한 개의 음반, 혹은 한 개의 곡만 히트시키고 사라진 가수를 말하지만 최근에는 가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작가들에게도 쓰인다.

최근 이렇게 하나의 작품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예술가들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후속작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첫 작품이 지나치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한 상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올린공대의 마커스 베어 조직행동학 교수와 네덜란드 로테르담대학 더크 데이크만 경영학과 교수는 성공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상이나 표창을 수여할 경우 그들이 미래에 성공할 가능성이 오히려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베어 교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보기 시작한다"며 "또한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적인 아이디어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각광을 받은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얻어낸 명성과 정체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때문에 이전 작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을 경우 상을 통해 만들어진 위치와 정체성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아이디어를 내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학자들이 꼽은 대표적인 예는 '앵무새 죽이기'를 쓴 작가 하퍼 리다. 베어 박사는 "하퍼 리의 첫 번째 책인 앵무새 죽이기는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대표적인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55년 동안 새로운 소설을 쓰지 않았다"며 "이후 출간된 파수꾼이라는 책은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쓰인 책으로 사실상 앵무새 죽이기의 초안이지 후속작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상이나 인정을 받는 행위가 제작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먼저 영국의 요리작가 224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첫 번째 요리책을 낸 저자 중 약 절반만이 두 번째 요리책을 낸 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처음 요리책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잘 팔렸을 경우, 두 번째 책을 출간할 가능성이 적었다.

이들은 이어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요리서적에 대한 콘셉트를 개발하도록 요청받았다. 이들 중에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경우 후속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수상 경력에 빛나는 참신한 작품의 제작자의 경우 독창적인 작품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창작의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로에 섰을 때 정체성에 더 큰 위협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창의성은 생산자가 문제를 직면하면서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받고 다양한 지식의 아이디어를 연결·결합해나가는 과정에서 꽃을 피우기 쉽다. 하지만 수상은 이러한 창작자들 작품 환경에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에 생산자의 창의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베어 교수는 "상은 특히 참신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데, 이들의 창조적 정체성을 지나치게 타인들에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잘 한 사람을 칭찬하려는 의도로 수여하는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수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 하면서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과정의 결과인 '신제품'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결과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대해서도 보상과 인정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한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에 실패를 권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보상을 제공해 한 번의 성공을 거둔 사람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행위도 자제하라는 게 연구자들의 조언이다. 이보다는 창작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한다면, 보다 창의적인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새봄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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