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쌍의 게이 커플이 전하는 전염병 시대 이야기[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2. 7. 22. 11: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작가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잇는 3부작 마지막 작품
소설가 박상영 (C)최모레. 문학동네 제공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92쪽 | 1만4500원

두 쌍의 게이 커플이 각각 화자이자 주인공인 네 편의 단편을 이은 연작소설이다. 세계를 휩쓴 전염병 사태 전후 김남준과 고찬호, 유한영과 임철우의 삶, 일, 사랑,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네 편의 단편을 관통하며 연작을 이룬다. ‘2020년 이태원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모티프다.

주인공들이 게이이자 청년 세대라는 점에서, 주 시공간이 전염병 와중이라는 점 때문에 이야기는 불안하고 위태롭다. 이들은 존재를 숨겨야 한다. 김남준과 고찬호는 아파트를 구해 동거하는데, 부모가 방문할라치면 “냉장고에 마그네틱으로 붙여놓은 서로의 사진들”을 치워야 했다. 전염병 발생 뒤 존재의 고통은 깊어지고, 주변 혐오는 노골화된다. 격리 문제 때문에 아파트를 방문한 보건소 직원의 “혹시 격리 장소에 함께 사는 가족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고찬호는 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쓴 채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는데 영상 제목이 ‘암컷 게이가 수컷들에게 구애하는 춤’이었다.” ‘슈퍼 전파자 55번’이 이태원을 들러 논란이 커진 뒤 회사 단체채팅방에 오른 ‘짤방’이다. 회사 동기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걸 춤천지라고 부른대.” “크크크크 크크크크크크크.” 고찬호에겐 저 춤이 “일주일 내내 구겨져 있던 이들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추는 살풀이”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저 채팅방 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남준과 함께 그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비로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두 맞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적 욕망이나 사랑이라고 단순화되곤 하는 그런 감정을 초월한, 어떤 안정감 같은 것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나와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기둥들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그런 신뢰감
- 박상영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 중

‘55번 확진자’가 두 시간 머문 임철우의 이자카야는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이태원은 ‘게이’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겹쳐 홍대나 신촌 같은 곳보다 상권 회복이 더뎠다. 임철우는 옛 연인 Y의 장례식장에서 Y의 가족으로부터 “죄송하지만 조문 끝나셨으면 자리를 비워주시겠어요? 곧 교회 분들이 오실 거예요. 예배를 하기로 해서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박상영은 여성들이 당한 차별과 폭력의 이야기도 녹여낸다. 퀴어 서사에 여성 서사를 더한 셈이다. 유한영의 막내 이모 리라의 남편은 병적인 집착을 가진 개차반이었다. 방송사 아나운서였던 리라는 출세하고 싶지만 임신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리라를 폭행했다. 유산 책임도 온전히 떠넘겼다. 또 피신한 리라에게 “세상 사람 모두에게 네가 부정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협박했다.

유한영의 직장 상사 진연희는 “정성적으로도 정량적으로도 압도적인 실적”을 기록하고도 남성 동기에게 승진에서 밀린다. 진연희는 ‘대졸 공채’ 신입 사원 300여명 중 8명인 여성 사원 중 한 명이었다. 여성 사원만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회사 관습에 항의할 때 인사팀 사람에게 들은 말 중 하나는 “여자들은 복장이 자유분방하니까 회사 기강을 해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였다. 직장 동료인 황은채도 직장 내 여성 차별을 겪어야 했다.

주요 여성 인물인 황은채는 김남준과 잡지사 동료였다. 이 두 사회 초년생은 “가족”을 강조하는, 첫 직장 매거진C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대학 시절 장광설”을 늘어놓는 편집장과 “개인의 가치를 완전히 잃고 집단에 동화”된 채 “요즘 애들”이란 말을 내뱉는 선배에다 장인이 될 정도로 질리도록 만든 드립 커피 제조 같은 잡무를 최선을 다해 감당했다. “우리의 변화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믿었다. 그렇게 나다운 것들을 깨끗이 표백하고 나면 비로소 매거진C의 색깔이 입혀져 그토록 염원하던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약속받은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마쳤는데도, 정직원이 되지 못했다.

소설에서 ‘혐오와 차별’이라는 한국 사회의 지독한 질병에 대한 고발을 읽을 수 있다. 청년 세대가 겪는 불공정이나 착취 문제에 공감할 수 있다. ‘고발 소설’이나 ‘퀴어 소설’에 한정할 일은 아니다.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건 ‘일상’이다. 동시대 사람들의 일과 현실 문제에서 길어낸 서사에선 작위와 당위, 억지를 찾을 수 없다. 위트와 유머의 입담도 일상에서 비롯된다. 방송국 앵커라 존재를 드러내는 데 더 민감해 아파트에서만 머물려는 김남준에게 고찬호는 이렇게 말한다. “네 얼굴이 넷플릭스라도 되냐고, 어떻게 천년만년 계속 들여다볼 수 있겠냐고.”

시대 현상에 대한 깊은 고민도 녹았다. 임철우는 이자카야 개업 전 사진 스튜디오를 어시스턴트 일을 하던 후배에게 인계했다. 이 스튜디오는 프로필 사진 전문으로 승승장구한다. “SNS 속 가상의 자아를 더욱 비대하게 키우려는 사람들의 의식을 파고들어 갈퀴로 돈을 쓸어모은다는 그래서 아반떼에서 벤틀리로 차를 바꿨다는 소문”을 듣는 곳이 됐다.

한국 사회의 고질을 전하는 작가의 어조는 담담하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착취를 격한 분노의 언어로 표출하기보단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위안, 공감에 방점을 둔 언어를 지향했기 때문인 듯하다.

박상영은 ‘작가의 말’에 “소설을 쓰는 내내 더 이상은 누군가가 질병으로 인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니 이 책의 모든 문장에 그런 나의 염원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썼다. 또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가닿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상영은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 작가다. 이 소설은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를 잇는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믿음에 대하여’ 표지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