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별서 지나, 정약용 노닐던 곳에서 피서 한번 즐겨볼까

한겨레 2022. 7. 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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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작가, 계곡과 냇물이 있는 조선시대 피서지를 찾다
옛사람들 '탁족'하던 피서지..지금도 서울시민 더위 달래줘
남산골한옥마을에 옛 청학동천을 재현한 작은 숲과 계곡

동천과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묘경 몇몇 곳에 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양도성 안에 백운동천, 청학동천, 쌍계동천, 옥류동천, 삼청동천 등이 있었고 한양도성 자하문 밖에는 백석동천, 삼계동천, 청계동천 등이 있었다. 동천에는 별서를 만들어 머물기도 했으며, 정자, 누각 등을 짓고 여름이면 경치를 즐기며 노닐고 탁족을 즐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피서법이었다. 조선시대 한양에 있던 동천이 가진 묘경은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유효하다. 한양에서 서울까지 탁족 피서지를 돌아봤다. 옥류동천·삼청동천 흔적 남아, 한양 주민들 ‘피서 지혜’ 전해줘
안평대군 별서가 있었던 수성동 계곡
세검정서 친구들과 약주 하던 정약용
조선시대 뱃놀이터인 한강 서호·동호

남산의 청학동천을 재현한 남산골한옥마을 속 작은 숲과 냇물

청학동천은 남산 북쪽 기슭에 있는 숲속계곡이었다. 현재 서울남산초등학교와 남산예장공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아우르는 곳이라는 견해와 남산골한옥마을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해진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는 청학동천 녹천정이 있던 곳이다. 남산골한옥마을 안에는 청학동천에서 이름을 딴 연못 청학지와 천우각이 있다. 서쪽 숲에는 옛 청학동천 계곡을 재현한 작은 계곡이 있다. 계곡과 숲은 작지만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숲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하지 않다.

백악산(북악산)의 삼청동천, 그 희미한 흔적을 찾아서

삼청동천도 조선시대 피서지 중 한 곳이다. 그 경치와 탁족을 즐기려는 마음은 나라에서 출입을 금지한 규정도 뛰어넘었다. 양반집 부인들이 삼청동 계곡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 탁족을 즐기다 관원에게 발각되어 해당 관청까지 끌려갔던 일이 있었다. 남편들이 와서 용서를 빌어 풀려났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삼청공원 북쪽 계곡에 있는 웅덩이

같은 경우로 잡혀 온 깨복쟁이 아이들은 호되게 혼쭐난 뒤 집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현재 국무총리공관 길 건너편 절벽에 삼청동천의 입구라는 뜻인 삼청동문 각자(새긴 글자)가 있는데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삼청테니스장 북쪽에 삼청동 계곡이 조금 남아 있다. 출입금지 구역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계곡에서 숲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인왕산의 으뜸 묘경 옥류동천, 수성동 계곡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옛 옥류동천의 본류다. 옛날에는 그 일대를 인왕동이라 했다. 옥인동 47번지 일대에도 옥류동천의 또 다른 물줄기가 흘렀다. 그 마을 위쪽 바위 절벽에 옥류동 각자가 남아 있다.

수성동 계곡은 지금도 암반바위와 수직 절벽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절경을 만든다. 계곡 상류에는 작은 폭포도 흐른다. 이곳에 안평대군의 별서가 있었다고 한다. 경치 좋은 곳에 몸을 두고 탁족을 즐기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피서지 중 한 곳이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수성동 계곡의 그림이있다. 계곡 절벽에 놓인 기린교를 건너 숲을 거니는 사람들 모습이 그림 속에서도 여유롭다. 그림 속 기린교를 닮은 다리가 지금도 있는데, 옛날 그 다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은 지금도 인기 있는 서울의 피서지다. 비가 제법 온 뒤에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적당할 정도의 물이 흐른다. 어른들도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논다.

이름만 전해지는 백운동천과 쌍계동천백운동천과 쌍계동천은 옛 풍경이 대부분 사라졌다. 인왕산과 백악산(북악산)이 만나는 자하문 고개 인근에서 시작된 물줄기, 청계천의 최상류 지역을 백운동천이라 했다.

지금은 옛 모습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백운동천 각자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부근 숲에 남아 있다. 경기상고 안에는 백운동천의 비경 속에 터를 잡고 살았던 조선시대사람 성수침의 집, 청송당 터를 알리는 청송당 유지 각자가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서 청송당 옛 풍경을 보았다. 쌍계동천은 낙산 기슭에 있던 피서지였다. 두 물줄기가 흐른다고 해서 쌍계동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경기상고 안에 있는 청송당터 푯돌

자하문 밖 백석동천과 홍제천, 삼계동천과 청계동천

청학동천, 삼청동천, 옥류동천, 백운동천, 쌍계동천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안에 있던 대표적인 묘경이자 피서지였다. 한양도성 창의문 밖에도 유명한 경승지가 있었으니, 삼계동천, 청계동천, 백석동천이 그곳이었다.

사람들은 창의문보다 자하문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줄여 자문이라고도 한다. 자문 밖(자하문 밖) 풍경이 얼마나 운치있었으면 옛사람들은 자문 밖 동천으로 놀러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이 조선시대 사람 정약용이었다.

홍제천

정약용은 한여름 소나기 구경, 물 구경 장소로 홍제천 세검정을 택했다. 친구들을 불러 세검정에 모이게 하고, 하인을 시켜 술과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한 줄기 비가 쏟아진 홍제천이 우레와 같은 소리로 세검정을 감싸고 흘렀었나보다. 그 통쾌한 풍경에서 비 구경, 물 구경 하며 여름 한때를 보냈던 정약용식 피서법도 제법 그럴듯했겠다.

세검정 남쪽, 흥선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이 자리 잡은 곳은 세 물줄기가 흐른다고 해서 삼계동천이라고 불렀다. 석파정에 가면 바위에 새겨진 삼계동 각자를 볼 수 있다. 그 앞에는 수백 년 돼 보이는 소나무가 옆으로 퍼져 자라고, 소나무 앞 너럭바위 위로 계곡 물이 흐른다. 석파정을 품은 작은 숲과 계곡을 거니는 시간이 한가하다.

석파정 너럭바위

석파정 남쪽에는 청계동천이 있었다. 그 풍경을 즐기기 위해 안평대군은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반계 윤웅렬 별장도 있다. 옛 청계동천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할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한여름에도 해가 지면 서늘한 바람이 분다며 마을 자랑을 하신다.

물놀이할 수 있는 서울 계곡들

동천이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지만, 요새도 물놀이하고 발 담그며 탁족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계곡들이 있다.

도봉로에서 도봉산길로 접어들어 북한산 국립공원 쪽으로 가다보면 도봉천 물놀이장이 나온다. 계곡을 정비해서 물놀이장을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모래장난 물장구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놀이장 상류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게 탁족을 즐길 만하다.

도봉초등학교를 지나 무수천 상류로 올라가면 무수골 계곡이 나온다. 서울에서 논농사 짓는 시골 분위기다. 논 옆에 계곡이 흐른다. 아이들은 계곡에 들어가 텀벙텀벙 물놀이 삼매경이다. 부모들은 아이들 다치지않을까 계곡물 이곳저곳을 거닌다. 그 자체가 피서다. 나무 그늘은 물놀이하다 지친 아이들이 잠깐 쉬는 곳이다. 엄마 아빠는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 입으로 연신 먹을 것을 넣어준다. 이보다 아름다운 여름 풍경이 어디있으랴. 땡볕 나무에서 매미가 짱짱하게 노래한다.

은평구 진관동 진관사 계곡은 암반바위가 널린 숲속 계곡 비경이다. 바위에 파인 골로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도 그 경치에 한몫한다. 다만 국립공원이라 계곡에 들어가 놀 순 없다. 하지만 진관사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시냇물이 되어 흐르는 마실길 근린공원 숲은 물에서 뒹굴고 놀 수 있는 곳이니 진관사 계곡에서 하지 못한 물놀이를 이곳에서 하면 된다.

광진구 중곡동 긴고랑 계곡 또한 마을 아이들의 여름 놀이터다. 자맥질하는 아이들, 물총놀이를 하는 아이들, ‘오빠 나 좀 봐’라고 소리치며 용기 내어 물기슭 약간 높은 곳에서 계곡물로 뛰어내리는 아이, 그런 아이들의 여름은 그 계곡에서 무르익어갔다.

관악산 계곡도 아이나 어른들에게 인기다.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 등산로 초입에서 관악산 공원을 찾아간다. 공원 한쪽에 계곡을 정비해서 만든 물놀이장이 있다. 물놀이장 상류는 자연 그대로의 숲과 계곡이다.

잠두봉에서 바라본 서호, 매봉산에서 바라본 동호

한강의 서호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로 알려진 서호와 동호의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서호는 절두산 순교성지 부근 잠두봉과 망원한강공원, 선유도, 밤섬 일대를 흐르는 한강의 풍경이 뛰어나 붙인 이름이다. 동호는 동호대교, 뚝섬, 압구정동 앞 한강을 아우르는 묘경을 부르는 이름이다. 서호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선유도가 좋다. 선유도 자체도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동호를 한눈에 넣으려면 개나리꽃 무리로 유명한 응봉산 꼭대기에 오르면 된다. 성동구 옥수동, 중구 신당동, 용산구 한남동이 만나는 매봉산 꼭대기 정자에서도 동호의 풍경을 즐길 만하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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