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앤드루스보다 더 오래된 골프장 '머셀버러 올드코스'[골프 성지를 가다③]

주영로 2022. 7. 15.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인트앤드루스보다 더 오랜 역사 기네스 인증
경마장 안에 들어선 9홀, 파34 코스
그린피 단돈 1만9500원, 히코리 클럽 대여해줘
골프규칙 처음 만들어진 곳..디오픈 6차례 열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머셀버러 올드코스의 클럽하우스. (사진=주영로 기자)
[머셀버러(스코틀랜드)=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동부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왼쪽으로 빠져 비좁은 2차선 도로에 들어서면 머셀버러 링크스 올드코스(Musselburgh Links old course)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좁은 길을 따라 2k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에 당장 말이 뛰어나와 질주할 것 같은 경마장이 보인다. 시골 마을에 경마장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온다.

골프장 입구가 보이지 않아 초행길에 행여 길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조그맣게 머셀버러 링크스 올드코스로 가는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몇 채의 집 사이로 오래돼 보이는 건물 하나가 보이고 검은색 철문에 ‘머셀버러 링크스 올드코스 골프클럽 입구’라는 팻말을 찾을 수 있다. 표지판이 워낙 작아 이곳이 디오픈을 6차례나 개최한 머셀버러 올드코스의 클럽하우스임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다.

클럽하우스 외관은 오래된 작은 건물이다. 실내로 들어서 오른쪽 문을 열면 좁은 공간에 4~5개의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나오고 그곳에 머셀버러 올드코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트로피와 기록을 담은 액자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머셀버러 올드코스 클럽하우스를 알리는 표지판. (사진=주영로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는 골프의 성지로 불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 기록에 따르면 1672년에 변호사 존 포울리스가 친구들과 머셀버러 링크스 코스에서 골프를 쳤다. 그보다 더 오래 전인 1567년 3월에는 스코틀랜드 메디 여왕이 머셀버러에서 골프를 쳤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전 골프를 친 기록이다. 머셀버러는 이를 근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으로 기네스 인증서를 받았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1400년대부터 골프를 쳤다고 돼 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머셀버러가 더욱 유명해진 건 이 골프장에서 지금의 골프규칙이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머셀버러에서 골프를 쳐온 골퍼들은 15가지의 골프규칙을 만들었고 이는 지금의 골프규칙으로 발전했다. 당시 골프규칙을 만든 문서가 머셀버러 골프장에 있고 식당에는 복사본이 전시돼 있다.

홀의 크기가 108mm로 정해진 것 또한 머셀버러에서 시작됐다. 이 골프장에서 홀컵으로 쓰던 원통의 직경이 4.25인치(108mm)였다. 1893년부터 R&A는 홀의 크기를 108mm로 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코스로 인정한 기네스 인증서. (사진=주영로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는 매우 규모가 작은 골프장으로 9홀로 구성됐다. 애초 7홀 규모로 시작해 1870년에 지금의 9홀 코스로 확장했다. 1번홀은 화이트 티 기준으로 240야드의 파3 홀이다. 첫 3개 홀은 경마장 그랜드스탠드를 따라 이동한다. 코스 주변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울타리가 있다. 경마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4번은 431야드로 파4 홀 중 가장 길다. 7번은 유일한 파5 홀이며, 전장은 479야드다. 길지 않아 버디가 많이 나온다. 총 전장은 겨우 2854야드다. 가장 긴 티가 화이트, 다음이 옐로, 레드 순이다. 9홀의 기준 파는 34다. 코스가 짧아 상급자에겐 너무 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린피 15파운드이고, 클럽이 없는 골퍼를 위해 히코리나무 클럽을 빌려준다. 대여 비용은 35파운드로 생각보다 비싸다. 메탈 클럽이 아닌 히코리 클럽을 대여해주는 건 올드코스의 감성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하지만, 라운드 중 클럽이 부러지기라도 하면 변상을 해야 한다.

프로숍은 따로 운영하지 않는 대신 식당에서 몇 가지 골프용품을 판매한다. 볼마커와 그린보수기, 타올 등 간단한 용품만 있다. 8파운드의 그린보수기는 기념으로 하나쯤 구매할 만하다.

유서 깊은 머셀버러는 1800년대에만 6차례 디오픈을 개최했다. 1874년 처음 열렸고 그 뒤 3년 주기로 1889년까지 디오픈의 코스로 사용됐다. 처음 열린 대회에선 멍고 파크가, 가장 마지막 열린 1889년 대회에선 윌리 파크 주니어가 우승했다. 모두 파크 가문이다.

머셀버러는 비교적 쉽게 골프를 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뮤어필드나 더 르네상스 클럽 등이 회원제 골프장으로 운영하는 반면, 이 골프장은 퍼블릭 코스다. 대신 연간 회원, 시즌 회원권을 구입하면 조금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면 7일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1번홀까지는 200m 정도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골프장을 찾은 10일은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클럽하우스는 오전 11시부터 문을 열었다. 그 이전에 라운드하기 위해 골프장에 온 골퍼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 코스로 나가 플레이한다. 국내에서처럼 프론트에서 인적사항을 적고 라커룸을 배정받은 다음 옷을 갈아 입고 식사를 한 뒤에 라운드를 하는 문화는 이곳에서 볼 수 없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준 직원은 2층 사무실까지 안내했다. 기념으로 스코어카드도 몇 장을 챙겨줬다. 국내 골프장에선 사라진 풍경이라 기념품으로 소중하게 간직할 만하다. 그러더니 1800년대부터 열린 머셀버러 오픈에서 사용했던 모형 우승트로피를 들고 함께 기념촬영 할 것을 제안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이어서였을까. 뒤돌아 나오는 기자를 향해 직원은 여러 번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했다. 600년이 넘은 오래된 클럽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이었다.

머셀버러에서 최초로 작성된 골프규칙의 사본. (사진=주영로 기자)
일요일 아침 클럽하우스가 문을 열기도 전에 골퍼들이 골프백을 끌고 코스로 나가고 있다. 코스 뒤쪽으로 경마를 볼 수 있는 관중석이 보인다.(사진=주영로 기자)

주영로 (na1872@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