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캐나다에 거친 바람이 분다[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8)

2022. 7. 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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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있다. 1837년 즉위 후 64년간 영국 여왕으로 재임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캐나다의 직접적인 통치자였다. 그 당시 생긴 빅토리아 공휴일이 1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현재 캐나다는 독립국이지만 과거 영국 통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영연방국가 중 하나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캐나다의 공식적인 수장으로 아직 존재한다. 캐나다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의회 의원 총선에서 뽑힌 총리로,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 여왕이 영국 버킹엄과 윈저에 거처하는 관계로 여왕을 대변할 총독을 임명해 캐나다로 보낸다.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2020년 여왕의 손자 해리 왕자가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될지가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권이 없는 총독이지만 캐나다와 영국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곳 역사의 잔재다.

지난 5월 21일 캐나다 토론토를 덮친 강풍으로 인해 나무가 쓰러졌다. / 정봉석 제공


빅토리아 공휴일은 여왕의 탄생일 직전의 월요일로 지정돼 있다. 이날을 전후해 캐나다인들은 긴 연휴를 즐긴다. 올해 연휴의 시작이었던 5월 21일 토요일은 날씨도 맑고 좋아 많은 사람이 주변 공원을 찾아 5월의 자연을 즐겼다. 나도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했다. 갑자기 주변 모든 휴대전화에서 경고문자가 울렸다. 평소 경고문자를 잘 보내지 않는 이곳에서─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도 보내지 않았다─다가오는 날씨 변화를 경고하는 긴급 재난 예보 문자였다. 허리케인이나 태풍 같은 재난이 거의 없는 토론토에서 의외의 경보였다. 주변 날씨는 여전히 맑고 화창했다. 단지 남서쪽 멀리서 성벽처럼 보이는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곧 폭우와 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성인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평소와 다른 강풍의 위력에 아파트 창문의 흔들림과 압력 차이를 실감했다. 전기도 끊기고, 토요일 오후 내내 암흑 속 집에서 고립됐다.

폭풍우 데레초 캐나다 환경부는 폭풍우가 발생했을 때 온타리오와 퀘벡 지역에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라디오를 통해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폭풍우와 관련한 경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상학자들은 이 사건을 역사적인 데레초(derecho)라고 지칭하며 가장 강력한 폭풍우 중 하나로 설명했다. 이름도 생소한 데레초는 직선 폭풍, 즉 지면을 휩쓰는 바람의 벽을 뜻한다. 토네이도가 회오리바람을 뜻하지만 데레초는 성벽처럼 직선의 전선을 이루는 바람으로 국지적으로는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다. 특히 이번 데레초는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 퀘벡시·윈저 회랑─북동부의 퀘벡시와 남서부의 온타리오주 윈저 사이 1150㎞에 걸쳐 펼쳐져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캐나다 인구의 약 절반인 1800만명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4대 대도시 중 3곳(토론토·몬트리올·오타와)을 포함한다─에 영향을 미쳐 피해를 키웠다.

이번 강풍은 지난 5월 21일 낮에 약 1시간가량 지속됐다. 풍속은 키치너에서 최대 시속 약 132㎞,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는 시속 120㎞에 달했다. 피해 지역의 가옥들이 뒤틀리거나 전봇대가 넘어져 전선이 늘어지고, 뿌리째 뽑힌 나무와 파손된 건물 잔해가 도로를 막아 차량 통행이 마비됐다.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1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대다수는 갑작스러운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희생됐다.

온타리오 전역에서 전신주 800개가 파손돼 전력망에 타격을 입혔다. 특히 187개의 전신주가 손상된 오타와에 재난 피해가 집중됐다. 이는 1998년의 기록적인 눈폭풍 재난 피해 규모보다 더 컸다. 온타리오에서는 15만여명이, 퀘벡에서는 약 14만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정전으로 휴교도 잇따랐다.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오타와-칼튼 교육청은 안전을 이유로 지난 5월 24일 모든 학교와 보육센터를 폐쇄했다. 광역토론토에서도 이날 더럼 지역의 8개 학교와 토론토의 1개 학교가 정전으로 휴교했다.

거세지는 바람 노아(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올해 대서양의 허리케인 시즌이 평균 이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연속으로 정상 시즌을 뛰어넘는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번 시즌의 허리케인이 평균 이상일 확률을 65%로 예상했다.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시즌에는 최대 시속 63㎞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4~21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중 6~10개는 최대 시속 119㎞ 이상의 허리케인급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 가운데 3~6개는 3등급 이상인 최대 시속 179㎞ 이상의 중대 허리케인일 것이라 경고하면서 이에 따른 대비를 요청했다.

첫 시작은 미국 플로리다였다. 지난 6월 4일 알렉스로 명명된 첫 번째 폭풍우가 발생했다. 시속 97㎞의 바람을 지닌 2등급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 남부 전역에 홍수를 일으켰다. 마이애미에 있는 미국 국립기상청(National Weather Service)에 따르면 남부 플로리다의 일부 지역에 305㎜ 이상의 비를 내렸다. 토요일 수백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며 남부 플로리다 지역의 교통이 마비됐다.

평상의 허리케인 시즌과 다른 극단적인 날씨는 기후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대기에 존재하는 수분의 양이 증가하면서 지구의 물 순환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인다. 증발이 증가한 대지는 더 건조되고, 단단해진 땅의 특성으로 비가 왔을 때 물을 흘려보내 폭우와 함께 대규모 홍수의 위험을 높인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미 2020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기후 변화가 허리케인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1979~2017년 열대성 폭풍의 위성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강도 증가를 확인했고, 이는 지구온난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예상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결과에 따르면 3등급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0년당 약 8%씩 증가한다. 그들의 예측대로 열대성 폭풍의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올해 역시 평균 이상의 허리케인 시즌이 예상된다.

물론 기후온난화가 폭풍우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대기는 폭염, 가뭄, 산불의 위험을 높인다. 최근 미국 국립기상청은 미국 남서부에 화씨 100도(섭씨 38도)가 넘는 폭염을 예상하며 지역 주민들의 대비를 경고했다. 다시 더워지는 캐나다 밴쿠버는 지난해 기록적이었던 열돔현상과 산불의 악몽을 되뇌게 만든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상승한 해수면은 인구가 밀집된 해변 도시에 바닷물 범람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몰디브처럼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구라는 냄비 안의 물 온도가 끓어오르고 있다. 급변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에너지 대란에 가려져 냄비 속 물의 온도 변화엔 사람들이 둔감해져 버렸다. 끓는 물 속의 죽어가는 개구리는 점차 우리의 모습이 돼가는 중이다. 탈출할 기회는 남아 있다. 냄비의 뚜껑이 아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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