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자율적 개인의 각성 담은 현대적 고전

최재봉 2022. 7.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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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에세> 는 16세기에 쓰인 책이라 현대 프랑스 사람들도 읽기 어렵습니다. 콜론과 세미콜론처럼 한국어 문장에서 쓰지 않는 부호를 즐겨 쓰고 하나의 문장 안에 다른 문장이 들어가는 식으로 길고 복잡한 문장이 이어지죠. 초역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새로운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다고 봅니다."

"몽테뉴는 이 책을 처음 쓸 때부터 자신의 정신을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내면을 향해 돌아선 반성적 의식에 의해서 자기 생각의 움직임을 알아보는 한편, 객관적 세계를 어떻게 분간하고 판단하고 그에 반응하며 행동할 것인가를 반성하는 적극적 의미가 '에세'라는 말에 들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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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 완역본 반세기 만에 나와
500년 전 사람 몽테뉴의 사유 생생
번역과 검수에 무려 15년 걸려
"현대인 위로하는 대중의 철학자"
몽테뉴 <에세> 공동 번역가인 최권행(왼쪽)·심민화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둘이서 본문을 나누어 번역했지만 서로 상대방의 번역을 검토하다 보니까 결국 시차를 두고 각각 완역하다시피 한 셈”이라고 번역 과정을 소개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에세 1~3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심민화·최권행 옮김 l 민음사 l 6만5000원

“몽테뉴의 <에세>는 16세기에 쓰인 책이라 현대 프랑스 사람들도 읽기 어렵습니다. 콜론과 세미콜론처럼 한국어 문장에서 쓰지 않는 부호를 즐겨 쓰고 하나의 문장 안에 다른 문장이 들어가는 식으로 길고 복잡한 문장이 이어지죠. 초역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새로운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교양인이자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주저인 <에세>(전3권)가 완역되어 나왔다. 1965년 손우성이 번역한 <수상록> 이후 무려 반세기여 만의 일이다. 그사이 몇몇 번역이 나왔지만 완역이 아닌 발췌본들이었다. 지난달 30일 공역자 최권행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심민화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2006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시작했는데, 번역하는 데만 10년이 걸리고 검수에 다시 5년이 걸려 이제야 책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에세>는 몽테뉴가 서른여덟살이던 1571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집안 영지인 몽테뉴 성에 머무르면서 쓴 길고 짧은 에세이 107편을 묶은 책이다. 1580년에 1권이 나왔고 1582년에 1권과 2권을 아우른 2판이 나왔으며 1588년에 3권을 추가한 최종판이 나왔다. 그러나 몽테뉴 자신이 1588년판 <에세>의 여백에 빼곡히 손으로 써넣은 추가 원고가 나중에 확인되고 그것을 반영한 새로운 판본이 20세기에 들어 발간되었다. 새로 나온 한국어판 <에세>는 바로 그 새 판본(‘보르도본’)을 완역한 것이다.

그동안 주로 ‘수상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이 책이 프랑스어 제목을 그대로 살린 <에세>로 새 이름을 얻은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에세’(essai)란 ‘시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동사 essayer에서 몽테뉴가 새로 만들어 낸 명사로, ‘에세이’(essay)라는 영어 단어로 잘 알려진 장르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심 교수는 “‘수상록’이라는 일본어 번역어에 들어 있는 한자어 ‘따를 수’(隨)가 피동적이라는 점에서 에세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몽테뉴의 <에세>를 최권행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번역한 심민화 덕성여대 명예교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몽테뉴는 이 책을 처음 쓸 때부터 자신의 정신을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내면을 향해 돌아선 반성적 의식에 의해서 자기 생각의 움직임을 알아보는 한편, 객관적 세계를 어떻게 분간하고 판단하고 그에 반응하며 행동할 것인가를 반성하는 적극적 의미가 ‘에세’라는 말에 들어 있는 겁니다.”

<에세>의 소재와 주제는 매우 다양하고 자유분방하다. 슬픔, 공포, 우정, 잠, 주벽(酒癖), 오만, 게으름, 용기, 후회 같은 주제가 있는가 하면 재빨리 또는 굼뜨게 말하는 것에 관하여, 요새를 사수하려 분별없이 집착하면 처벌당한다, 옷 입는 풍습에 관하여, 나쁜 수단을 좋은 목적에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등으로 가히 좌충우돌이라 할 정도로 소재와 주제를 넘나든다. 해당 주제에 관해 논할 때 몽테뉴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주변의 사례는 물론 그리스·로마 시대 이래의 역사적 예화들을 풍성하게 동원해서 논거를 쌓아 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과 사례 및 예화를 아우르고 통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 몽테뉴 자신의 합리적 판단이다.

“우리는 젊음이 우리 안에서 죽을 때 어떤 충격도 느끼지 못하지만 사실 그 죽음이야말로 쇠약해진 생명이 완전히 죽어 버리는 죽음, 노년의 죽음보다 본질적으로 사실상 더 가혹한 죽음이다. 비참한 존재에서 비존재로 떨어지는 것은, 한창 꽃핀 감미로운 존재에서 고생스럽고 괴로운 존재로 떨어지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에서)

“몽테뉴 이전에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자기 밖의 어떤 체제와 규범이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제약했습니다. 그러나 몽테뉴에게서는 그런 외적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자율적 개인의 각성이 보인다는 점이 중요해요. 그런 현대성 때문에 독자들은 몽테뉴의 느낌과 생각을 읽으며 공감하는 한편,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달리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볼 수도 있는 것이죠.”(심)

몽테뉴의 <에세>를 심민화 덕성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번역한 최권행 서울대 명예교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몽테뉴는 내면과 일상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서 친근하게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사실 <에세> 안에는 매우 심각한 주제도 많이 들어 있어요. 몽테뉴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근본적으로 평등주의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식인종에 관하여’라는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흔히 야만적 풍습이라 치부하는 식인 습관을 새롭게 보게 하는 내용이었죠. 그는 사형이나 고문 같은 관행에도 매우 비판적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몽테뉴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래디컬(근본적)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최)

근 500년 전 사람인 몽테뉴가 매우 현대적인 생각을 지닌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두 번역자는 거듭 강조했다. “<에세>는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향연’(심포지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화적이며 친근한 형식을 지녔다”고 최 교수가 평가하자, “몽테뉴는 인간의 가치를 말하고 고독한 현대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중의 철학자”라고 심 교수가 받았다.

몽테뉴 <에세> 공동 번역가인 심민화(왼쪽)·최권행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금 제가 <에세>를 읽으면서는, 사십대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면서 직장 생활 등에서 많이 지치고 억눌렸던 저에게 ‘너는 너야’라고 위로를 곁들여 말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돼요.”(심)

“유럽에서는 자기 전 침대에서 읽는 책 다섯권 중 하나로 <에세>가 꼽힌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독자가 위로를 받고 평화를 얻게 된다는 뜻이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어요.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서 읽다 보면 500년 전 사람 몽테뉴가 나에게 건네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최)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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