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 25% '깡통전세' 쇼크..올해 떼먹은 전세금 3407억
전국 아파트 단지의 약 25%가 전세 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매맷값 보다 높은 '역전세'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중앙일보가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신고된 올해 4~6월 데이터를 토대로 전국 아파트의 전셋값과 매맷값 차이를 비교해본 결과 '깡통전세'라 불리는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최고가 기준)이 80% 이상인 단지가 4729곳으로 조사됐다. 조사 기간 전세와 매매 거래가 각각 1건 이상 이뤄진 전국 아파트 단지는 1만9164곳으로 '깡통전세' 아파트는 전체의 24.7%를 차지했다.
실제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전세가율이 위험 수위에 다달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B부동산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지역의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75.4%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월(75.5%) 이후 1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충남의 경우 78.9%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고, 경북(78.6%)과 충북(77.0%) 등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조사 기간 최고가 기준 전셋값이 매맷값을 뛰어넘은 '역전세' 아파트 단지도 전국에 510곳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갭투기 몰린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 '역전세' 위험
전문가들은 지난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 매수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역전세' 위험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충북 충주시 호암동의 A아파트(616가구)의 경우 지난 3개월간 전용면적 56.9㎡의 평균 매맷값은 5500만원, 최고가는 7150만원이었다.
하지만 전셋값 평균은 6614만원, 최고가는 7000만원을 기록했다. 전세 평균값이 매맷값을 뛰어넘은 역전세가 나타난 것이다. 전남 광양시 중동 B아파트는 조사 기간 전용면적 59.8㎡의 전세 최고가가 8500만원인데, 매매 최고가는 8300만원으로 역전세가 나타났다.
이들 아파트는 지난해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 매수가 유행할 당시 갭투자자의 집중 타겟이 된 곳이다. A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9월 한달에만 111건의 매매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전셋값과 매맷값 차이가 1000만~2000만원에 불과해 소액 투자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정부가 공시가격 1억원 이하인 경우는 주택 수에 상관없이 기본 취득세율(1.1%)을 적용한 것도 이를 부추긴 요인이 됐다.
'전세 사기' 의심사례도 포착됐다. 206가구 모두 전용면적 60㎡로 구성된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C아파트는 조사 기간 4건의 매매가 이뤄졌는데 평균 가격은 2억2713만원이다. 최고가는 2억4950만원이며, 현재 매물 호가는 2억1000만~2억5000만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전세는 56건이 신고됐고, 평균 가격은 3억259만원, 최고가는 4억2000만원으로 나타났다. 평균 가격으로 전셋값이 매맷값보다 7546만원 비싸며, 최고가 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1억7050만원 벌어진다.
십정동에서 영업 중인 D공인중개사는 "전문업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전단지 광고, 전·월세 거래 전문 사이트 등을 통해서 세입자를 모아 비정상적인 역전세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전세 사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세 사고 금액 역대 최고...곳곳에 위험신호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 금액은 3407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사고 규모의 58.8% 수준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HUG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한 뒤 추후 구상권을 행사에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역전세의 경우 세입자 보호가 더 어려워진다. HUG 관계자는 "전세금 반환 전세보증보험의 경우 전셋값과 선순위 채권의 합이 주택 가격 이내여야 가입이 가능하다"며 "전셋값이 매맷값을 크게 웃도는 역전세의 경우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이런 경우 세입자가 전세권 설정 등을 통해 임대차 보호법상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추는 방법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아파트값이 비싼 서울 등의 경우 소액 갭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깡통 전세' 위험이 적지만 지방의 저가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율이 높을 수밖에 없어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임차인들이 전세 계약 전 매매가격 등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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