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리포트]호기심의 끝은 파멸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친구가 건넨 파스 한 장. 병원에서 처방받았다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에 덥석 붙였다. 나른했다. 한동안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은 하루, 다음은 반나절, 3시간, 지속시간은 줄었다. 대신 약효가 끝나고 다시 파스를 붙이기 전까지 지옥이 찾아왔다. 그게 아편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사범은 450명이다. 전체 마약류사범의 2.8%로, 큰 비중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빠른 증가세다.
2017년 0.8%(119명)에서 4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20대 역시 증가세가 가파르다. 20대 마약류사범 비중은 15.0%에서 31.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4년 전만 해도 마약류사범 대부분이 30대 이상이었는데,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검거된 청소년 마약류사범이 450명이라는 말은 적어도 1만 3000여 명의 청소년이 불법마약류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추정한 국내 마약류사범 암수율(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율)은 28.6배다. 마약류사범 한 명이 검거됐다면, 아직 검거되지 않은 27.6명 더 있다는 소리다.
마약이 언제부터 이렇게 쉬워졌나
우리는 여러모로 마약에 익숙하다. 일상에서도 ‘마약’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인다. 중독성 있는 맛집에는 어김없이 ‘마약 떡볶이’ ‘마약 빙수’라는 이름이 붙는다. 진짜 마약에 관한 이야기도 서슴없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소년비행’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등의 드라마는 청소년의 마약 범죄를 소재로 다뤘다.
의료용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줄어든 것도 마약의 일상화에 한몫했다. 엑스터시는 나쁘다고 인식해도, 수면제를 많이 먹는 데는 거부감이 없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ADHD 치료제, 수면제(졸피뎀), 진통제(펜타닐), 식욕억제제 등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에도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며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처방받은 약을 먹는 데는 경각심이 없다”고 말했다.
의료용 마약을 접한 뒤 불법 마약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 온라인으로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세태가 낳은 결과다. 이전에는 마약이 클럽, 바 등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유통됐다. 판매책에 접근하는 일조차 소수에게만 허용된 일이었다. 최근에는 마약 판매가 온라인으로 확대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모바일, 인터넷 활용도가 높을수록 마약에 노출될 확률도 높아진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류사범 중 대다수가 소셜미디어(SNS),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마약을 구입했다.
이 센터장은 “코로나19로 청소년의 스마트폰 영상 시청 시간이 늘면서 마약 노출 빈도가 늘었다”며 “유튜브만 검색해도 마약 복용 후기 등의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주변 친구들의 영향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이 센터장은 “청소년 무리에서 한 명이 마약에 노출되면 전체로 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1번 정신병원에 입원해도 끊기 힘들어
마약의 유혹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아무도 당신에게 “마약 한 번 해볼래?”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솔깃할만한 이야기를 한다. ‘기분 좋게 해줄까?’ ‘꿀잠’ 자고 싶니?’ ‘천재 음악가가 되고 싶니?’ 하고 말이다. 실제 온라인에서 마약 판매자들은 마약을 합법적인 물질로 가장하거나,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한다.
반면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자세히 알기 어렵다. ‘두통’ ‘환각’ ‘구토’ 등 의약품에 으레 붙는 부작용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마약의 많은 문제는 중독성에서 나온다. 마약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해 어마어마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게임에서 승리했을 때 쾌감보다 30배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다. 같은 양을 복용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시간이 짧아진다.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미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단계다. 실제 중학교 때부터 25년간 마약을 하다 끊는 데 성공한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실장은 “마약은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라며 당시의 시간을 회상했다. 마약을 끊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마약이 하고 싶은 갈망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는 “마약중독자가 된 뒤 당뇨 등 신체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고통이 함께 찾아왔다”며 “마약을 끊기까지 정신병원에 11번 입원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중독의 문제는 청소년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젊은 성인에 비해 마약 및 처방약을 처음 접했을 때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성인과 비교해 청소년의 뇌가 마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불법으로 유통하는 마약의 경우,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 센터장은 “실제 엑스터시를 구입했는데 받아보니 쥐약이었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종마약이 빠르게 개발되며 성분 관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마약류사범 처벌은 유엔 마약위원회(CND)에서 정한 협약을 기반으로 하는데, 러쉬, 합성대마 등 신종마약은 제대로 규제되지 않고 있다.
마약을 더 이상 금기어로 두지 말라
마약은 재범률이 가장 높은 범죄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 전체 마약류사범의 36.3%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셋 중 하나는 검거된 뒤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센터장은 “센터를 찾아온 마약류사범 대부분은 절대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중독 사실을 인정해야만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범률이 높은 이유다.
마약에 중독되는 과정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것과 같다. 종착역은 파멸이다. 이 센터장은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미끄럼틀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굴러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마약류사범 1만 6153명 중 44%는 집행유예 처분됐다. 실제 법무부에서는 초범의 경우 반성과 재사회화의 기회를 주는 편이다. 이 센터장은 “때로는 법보다 사회가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고등학교 상담사의 사례를 들려줬다. 당시 상담사는 학생 중 하나가 불법 약물을 투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를 공론화했을 경우 당사자 학생은 물론 학교에 미칠 피해가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마약에 대해 모를 것이라며 사건을 덮으려 한다”며 “보수적인 판단이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를 해서라도 문제 학생을 제대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중독자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도 바뀔 필요가 있다. 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고 어렵지만,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박 실장은 “처음에는 마약을 끊겠다고 혈서를 써도 사흘을 채 못 버텼다”며 “마지막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에게 처음으로 나를 마약중독자라고 인정했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회복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 공급책에 대해서는 강력히 처벌하는 동시에 중독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7월호, 호기심의 끝은 파멸, 청소년 마약 중독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