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 부산 북구 '북이백세누리센터' 강이근 센터장

고영삼 부산디지털개발원장 2022.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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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이전은 실패와 불운의 세월이었다.

62세인 올해부터는 부산 북구청에서 설립한 공유경제형 복지 모델인 '북이백세누리센터'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후덕한 인상의 강 센터장이지만 백세누리센터를 설명하는 목소리에서는 사업에 관한 애정과 신념이 묻어 나왔다.

내친김에 그는 복지 현장으로 더 들어가고 싶어 교수직을 그만두고 연제구 거제종합사회복지관과 북구에서 6년 동안 관장으로 재임하다가 올 3월부터는 북이백세누리센터 초대 센터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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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까지 실패 뿐이던 삶, 전국구 새 복지모델 설계 꿈꿔

50세 이전은 실패와 불운의 세월이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20년을 넘게 힘겨운 나날이 지겹도록 이어졌다. 그런데 50세가 되던 해 우연히 요양보호사교육원을 운영하게 됐고, 그 뒤 노인재가복지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복지계로 접어들어 교수가 됐고, 복지관 관장도 역임했다. 62세인 올해부터는 부산 북구청에서 설립한 공유경제형 복지 모델인 ‘북이백세누리센터’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일모작 인생에서 한 번도 열매를 맺지 못했던 그는 이제 보란 듯이 이모작을 경영한다.

부산 북구 ‘북이백세누리센터’ 강이근(가운데) 센터장이 직원들과 센터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 되는 게 없던 일모작 인생

- 장애인고용공단 지원 받아 차린
- 의류 부자재 공장 IMF로 문닫고
- 운영맡은 친구 레스토랑도 망해

# 사회복지계 발들여 인생 전환

- 모교 대학총장 비서실서 일하다
- 대학원 과정 밟고 55세 교수 돼
- 현재 북이백세누리센터 센터장

◇ 강이근의 인생Tip

공부하라. 다르게 바라보라. 할 일이 보인다

-북이백세누리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북이백세누리센터는 50세 이상 북구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북구청에서 평생교육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100세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애초 ‘백세건강센터’로 구상되었으나, 건강만이 아니라 복지·문화, 평생교육 서비스도 함께 제공해서 ‘백세누리센터’라는 이름이 붙은 거죠. ‘북이’는 북구의 상징적 용어입니다.

-이곳이 다른 복지시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몇 가지 면에서 좀 특별합니다. 첫째, 공유경제형입니다. 대개 공공에서는 복지시설 하나 설치한다고 하면 부지 매입비 신축 비용 등에 많게는 100억 원 이상 들어가는데, 우리 센터는 이미 설치된 경로당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시설과 민간시설을 활용합니다. 둘째, 접근성이 아주 좋습니다. 주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니 정말 15분 거리 서비스인 것이죠. 셋째, 전문서비스가 융합적으로 제공됩니다. 요즘은 복지 문화 건강 교육 등 공공서비스가 너무 전문화되어 오히려 불편한 측면이 많은데, 우리 누리센터는 이 서비스를 한 기관에서 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주민에게는 어렵지 않아 좋지요. 아마 공유경제형으로는 전국 최초 시도일 것입니다.

후덕한 인상의 강 센터장이지만 백세누리센터를 설명하는 목소리에서는 사업에 관한 애정과 신념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듣기로는 그는 엄청난 시련과 불운 속에서 인생 일모작 시절을 발버둥쳤다고 한다.

-젊은 시절 참 힘들게 지내셨다고 들었는데 이야기 좀 해주시겠어요?

강이근 센터장이 2020년 7월 부산 연제구 거제종합사회복지관장을 퇴임할 당시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문제에 뛰어들다 보니 졸업하고서 변변찮은 직장을 다녀보지 못했습니다. 전전긍긍하던 중 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조그마한 의류 부자재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역부족이더군요. 직원들 월급 날짜는 어찌 그리 빨리 오는지. 결국 IMF 구제금융 위기와 맞물리면서 처절하게 망했습니다. 그때 나이 38세. 제 삶의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꼭 잘되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주시던 어머니는 자식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아파하시다가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후 어떻게 살아내셨나요?

▶힘들었습니다. 희망을 잃진 않았지만 삶의 방향이 보이지 않았던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견기업을 경영하고 있던 친구가 자기 백화점에 있는 레스토랑을 운영해달라고 하더군요. 재기의 기회였습니다.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때도 행운의 여신은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모회사가 부도나고 심지어 친구는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수중에 있던 돈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44세 무렵이었는데,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나 분명히 인생 전환기가 있었겠지요?

▶인생 전환을 떠올릴 만큼 한가하지 않았어요. 아! 나는 실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점차 짙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죠. 저의 경우가 딱 그러했어요. 저에게 실패할 요인은 널려 있었어요. 몇 년을 더 불우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전환의 기회가 정말 우연히 오더군요. 모교 대학에서 총장 비서실장이 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46세 때입니다. 2년 정도 안정적으로 일했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이 인생 전환의 첫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다른 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요양보호사교육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시다가 사회복지학 교수까지 되셨군요.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더군요. 대학 쪽에 있다 보니 공부에 관한 열망이 생기더군요. 마침 제자를 위해 노심초사하셨던 모교 사회복지학과 최경구 교수님의 간곡한 바람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 강단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요. 2011년 52세 때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복지계 쪽에 들어와 보니, 이 일이야말로 정말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처럼 신나더군요. 50대 중반에 들어 비로소 제가 가야 할 길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 뒤에 신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코스도 밟았지만 55세 때는 부산경상대에 전임교수로 제자를 양성하는 보람도 느꼈지요.

강 센터장은 다리를 좀 전다. 선천성 고관절 장애 때문이다. 사무친 마음을 가진 모친은 그에게 항상 세뇌하듯 말했다 한다. “이근이 니는 나중에 나이 묵을수록 잘될 끼다.” 그는 불운이 반복될 때 모친의 간절한 그 말만 기도문처럼 되뇌었다. 자기완성적 예언이라 할까, 그런 세월을 보낸 뒤 그가 사회복지 일을 하는 것은 먼 길을 둘러 고향에 온 느낌을 준 것 같다. 내친김에 그는 복지 현장으로 더 들어가고 싶어 교수직을 그만두고 연제구 거제종합사회복지관과 북구에서 6년 동안 관장으로 재임하다가 올 3월부터는 북이백세누리센터 초대 센터장이 됐다.

-종합적으로 볼 때 늦었지만 이제 시대의 때, 인생의 때를 잘 만난 것 같군요. 이제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꿈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뉴 노멀한 복지 모델을 현장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초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이 두 융합적 요소를 창의적으로 디자인해 지역사회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성을 쌓기보다 시대와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센터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과정을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언젠가 이 공유경제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대화하다 보니 그에게서는 시대를 직관하는 언어가 느껴졌다. 평소 구상했던 것을 마침 북구청에서 추진하게 되어 기꺼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대와 호흡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꾸준히 독서를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주로 유튜브를 통해 지식을 흡수합니다. 지식은 흡입할수록 힘을 받게 되더군요. 스티브 잡스가 그랬죠. “싱크 디퍼런트 하라”고. 그러한 생각으로 뉴노멀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 늘 공부합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지요. 저에게는 이 말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인생 일모작 시기에 실패만을 거듭하던 그는 인생 이모작 경영을 하면서부터 비로소 순항하고 있다. 모친의 눈물 어린 기도가 인생 일모작의 힘든 삶을 안아주었다면, 책과 유튜브를 통한 학습 습관은 이모작의 강력한 엔진이 된 것 같다. 물론 아직 뉴노멀의 모델을 재래식 관점에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함께 지역 경로당의 새로운 모델도 만들고 싶은 구상까지 하고 있다. 그에게 60대는 5월의 신록과 같다.

◇ 북이백세누리센터

부산시 북구에서 건강 문화 복지 평생교육 등 융합서비스를 공유경제 방식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복지 모델이다. 홈페이지(사진)는 www.1003nuri.or.kr

현재 구포2동 행정복지센터 4층에 위치한 중앙센터와 지역별 4곳의 거점센터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대한노인회 북구지회 건물 1, 3층과 지역 경로당 3곳의 2층을 리모델링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점차 공공 및 민간시설과 MOU를 통해 운영 공간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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