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 빠진 대구, 새로운 K팬덤을 이끌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2. 6. 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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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7월11일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개최
브로드웨이에도 없는 뮤지컬 페스티벌에 세계가 주목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는 창작 소극장 뮤지컬부터 해외 배우들이 내한하는 대형 작품까지…. 단돈 만원에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축제가 있다. 6월24일부터 7월11일까지 대구의 주요 공연장에서 열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DIMF) 이야기다.

6월18일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에 위치한 관광안내소 앞에 마련된 특별 부스에서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티켓 판매 이벤트가 열렸다. 1인 2장씩 현금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며, 좌석은 무작위로 배정되는 이벤트 티켓을 구하기 위해 대구 시민들은 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줄을 섰다. 이 행사는 서울에도 없는 오로지 대구에만 존재하는 '뮤지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되는 특별 판매 이벤트다.

제12회 DIMF 폐막작 《플래시댄스》 관객들이 전석 기립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DIMF 사무국 제공

대구는 왜 뮤지컬에 열광할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뮤지컬이라는 단일 공연 장르만으로 전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뮤지컬 극장가가 형성돼 있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나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개별 작품들의 공연은 상시적으로 이뤄지지만, 페스티벌 형태로 단기간 모여 여러 작품을 상연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공연예술의 특징 때문이다. 영화제의 경우 촬영과 편집이 완료된 영화 프린트만 가지면 전 세계 어디든 동시다발적으로 바로 관객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공연 페스티벌은 라이브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작품 공연을 위해 특정 기간에 한 도시로 몰려들어야 한다.   

때문에 뉴욕에서도 매년 가을 3주에 걸쳐 뉴욕 뮤지컬시어터페스티벌(NYMF)이 개최되지만, 작은 규모로 개발되는 신작 중심이고 다음 단계인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한 테스트마켓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미래 가치를 알아볼 프로듀서와 평론가들의 평가가 중요한 행사인 것이다.

반면에 딤프는 대중이 바로 즐길 만한 완성된 작품을 메인으로 선정해 대극장에서 개막작과 폐막작으로 배치하고 동시에 여러 편의 중소형 창작 신작도 소개하면서 다양한 스타일과 규모의 작품들을 3주 동안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서울에도 없는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이 대구에서만 열리게 된 이유에 대해 업계 종사자와 관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바로 대구 시민 특유의 뮤지컬 열기다.

대구의 뮤지컬 사랑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시작됐지만 그보다 오래된 예향(藝鄕)의 전통이 있었다.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에 6·25 때부터 예술인들이 정착했고, 공연예술학과도 많이 생겼다.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경북대 등 주요 대학의 경우 다른 도시에 비해 음악대학이 강세를 보인다.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 수요가 이미 많고, 김광석을 비롯한 대중음악인들의 고향이기도 해서 콘서트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공연의 흥행 사례가 많았던 대구에서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사건은 2004년 국내 초연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구 공연이었다. 이미 서울에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공연이기에 대구에서도 어느 정도 흥행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이전까지 지방 공연은 주말에 이틀 정도가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2005년 1월15일부터 3월3일까지 앙코르 포함해 한 달 반을 매진시키며 대구를 지역 장기 공연의 안전한 시장으로 등극시켰다.

《맘마미아!》가 한국 중년층에게 익숙한 스웨덴 팝그룹 아바의 곡을 엮은 공연이긴 하지만, 10분이 넘는 신나는 커튼콜에서 대구 관객들이 서울보다 더 열정적인 참여를 보여줘 관계자와 배우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았다. 마치 한국의 록 페스티벌에 참여한 해외 유명 아티스트가 한국의 '떼창 문화'를 동료 스타들에게 입소문을 내주는 것과 같은 그런 효과가 벌어졌다. 이후 뮤지컬 제작사들은 앞다퉈 대구로 내려가 긴 일정의 투어 공연을 갖게 됐다.

국립정동극장 제작, 《쇼맨》 ⓒDIMF 사무국 제공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DIMF 사무국 제공
《스페셜 5》ⓒDIMF 사무국 제공
개막작 《투란도트》 슬로바키아 버전ⓒDIMF 사무국 제공
폐막작 《더 콰이어 오브 맨》ⓒDIMF 사무국 제공

정치적으로 보수색 짙지만, 뮤지컬 소재는 개방적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색이 짙은 도시로 알려져 있는 대구에서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오페라 외에도 게이, 트랜스젠더 등 개방적인 소재를 포함한 뮤지컬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는 정치적인 입장과 문화예술의 향유는 별개이기도 하고 클래식, 대중음악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 대구 시민들이 음악이나 문화 상품에 적극적인 구매력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또 하나의 뮤지컬 열풍 요인은 인프라다. 인구 238만 명의 대구에는 뮤지컬 공연에 적합한 대형 극장이 많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계명아트센터, 수성아트피아, 대구시민회관 등 10개가 넘는다. 경상권의 대표 도시로는 부산이 꼽히지만 천혜의 관광자원인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에는 오히려 극장 숫자도 적고 건립 속도도 늦어졌다.

대구의 이러한 뮤지컬 관람 문화를 확립시킨 것이 바로 딤프 개최라고 볼 수 있다. 2006년 시범 페스티벌을 거쳐 2007년에 첫 정식 개최한 딤프는 올해 16주년을 맞는다. 대구 시민들의 뮤지컬 관람 욕구를 수용하면서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성장해 왔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는 딤프가 이미 중요한 방문 코스로 정해져 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티켓 가격도 저렴하고 주말 동안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몰아서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의 매력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서 공연한 적이 없는 해외 작품이 대구에서만 공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부러 방문하는 수고를 자처할 가치가 있다. 그동안 뮤지컬의 주류인 영미권 투어 중에서 《렌트》 《금발이 너무해》 《유로비트》 《웨딩싱어》 《플래쉬댄스》 등이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딤프는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 대구에 관광객 유입 효과도 견인하고 있다.

딤프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제한적인 프로그램만  운영해 왔다. 하지만 올해 거리 두기 해제로 예전처럼 대규모 개막 축하 콘서트가 재개됐다. 개막작으로는 딤프가 2011년에 직접 제작해 초연한 《투란도트》의 슬로바키아 버전(6월24~28일, 대구오페라하우스)이 선정됐다. 한국과 중국 공연 후 슬로바키아에 수출돼 현지에서 공연된 라이선스 뮤지컬 버전이 올해 대구를 찾으면서 같은 무대에서 원작과 라이선스 작품이 시차를 두고 공연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에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국의 《더 콰이어 오브 맨(The Choir of Man》(7월2~9일, 대구오페라하우스)이다. 서양 술집인 펍에서 펼쳐지는 아홉 남자의 이야기로 브로드웨이 곡들과 건스앤 로저스, 아델, 폴 사이먼 등의 팝송들이 함께 어우러져 《맘마미아!》의 흥겨움을 재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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