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빛보다 빨랐다.. 물에서 튀어나와 사슴 덮친 비단뱀

정지섭 기자 2022. 6.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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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전매특허이던 전광석화 수중매복공격 포착
독없고 온순한 종류로 알려졌지만, 동족포식도 서슴치 않다
뒷발의 자취 보여주는 발톱은 도마뱀으로부터의 진화과정 보여줘

수중매복공격은 사실 악어의 제왕인 크로코다일의 주특기입니다. 아프리카 나일강의 나일악어들은 목을 축이러 오는 영양들 앞으로 스텔스기처럼 존재를 감추고 접근해 단 한번의 습격으로 몸통을 나꿔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죽음의 성찬을 벌입니다. 이 가련한 초식동물들은 저 물속 깊은 곳에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괴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타는 목마름을 축여줄 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발짝 두발짝 물가로 왔다 변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일진이 나쁘면 산채로 네 발이 찢겨나가는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차라리 일찍 숨통이 끊어지는게 복이지요. 그래서 크로커다일은 매복공격의 달인으로 자리매김돼있죠. 이 명성을 인도의 비단뱀이 질투했나봅니다. 나도 저놈들 못지 않은 수중매복공격의 고수임을 당당하게 과시하고 싶었나봐요. 동물영상 전문사이트 ‘로링어스(Roaring Earth)’에 최근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사파리 관광객이 카메라를 보는 앞에서 보란듯 공격을 성공시킵니다. 몇 해전 인도 마사라슈타주의 한 초원에서 벌어진 상황이에요. 한 무리의 사슴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웅덩이로 모여듭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것을 보면, 이들도 천적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도의 생태계에서 사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연 호랑이와 표범입니다. 인도에도 크로커다일이나 가비알 등의 악어류가 서식하고 있지만, 덩치나 성질머리면에서 아프리카나 호주의 동족들에 비할바가 못됩니다. 표범의 주특기야 숲속 나무위에서 덮치는 매복공격일테니 이 사슴들은 기껏 해야 호랑이 정도만 조심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방심이었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상대적으로 굼뜰 것으로 예상했던 비단구렁이가 이토록 전광석화처럼 공격할줄 몰랐던거죠. 사슴의 코앞에서 솟구쳐나와 머리를 물며 급습합니다. 한 마리가 찰나의 방심을 해서 목을 불과 몇센티미터 앞으로 내미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요. 뱀에게 목덜미를 물린 사슴이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이미 뱀의 주특기인 전신 조이기가 시작됩니다.

물속에서 튀어나와 사슴을 급습한 비단뱀이 공중제비를 돌듯 사냥감을 휘휘 돌린뒤 땅으로 내리꽂고 있다. /Roaring Earth

사슴의 흰 꼬리가 파르르르 떨립니다. 주인을 보고 달려오는 강아지의 꼬리같아 더욱 섬뜩하고 처연합니다. 이 녀석의 삶에서 저렇게 처절하게 꼬리를 흔든적이 있을까요? 이렇게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외침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어떻게 마무리됐을지는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강력한 조임새는 사슴의 혈과 맥을 가차없이 끊었을 것입니다. 비단뱀이 입을 열고 사슴의 머리부터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기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음의 냄새를 맡고온 파리떼들이 왱왱 거리며 주변을 덮었을 것입니다. 가끔씩 제 덩치보다 더 큰 먹잇감을 삼킨 뒤 배가 터져죽는 일이 종종 발생하지만, 이 사슴은 그저 가벼운 한 입거리에 불과해보입니다. 보아, 보아뱀, 비단구렁이, 비단뱀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보아과의 거대 뱀들은 사실 엄청난 덩치에서 뿜어져나오는 조이는 힘으로 악명높지만, 성질은 그렇게 사납지는 않고 상대적으로 온순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뱀의 전매특허인 독도 없고요. 하지만, 이 동영상을 보면, 이 뱀의 무리들은 온몸으로 조이는 거대한 파워에 전광석화 같은 민첩성까지 갖춘 살상병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무리의 잔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튜브 <ojatro>의 동영상입니다.

버마비단뱀이 비교적 손쉬운 먹잇감인 작은 쥐를 잡아 온몸으로 칭칭감아 입속으로 밀어넣으려던 참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같은 버마비단뱀이 옆에서 접근합니다. 어쩌면 부모 자식 형제지간일 수도 있어요. 한톨의 콩도 나눠먹듯, 한마리의 쥐도 함께 나눠먹으며 동기간의 우정, 이성간의 사랑, 동족간의 일체감을 나누려는 것일까요? 인간중심적인 관점입니다. 이 버마비단뱀은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타쌍피의 일념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동족 뱀과 입에 물려있는 쥐까지 동시에 먹잇감으로 노린 것이죠. 비현실적인 시도가 성공합니다. 먹잇감을 틀어쥐는데 온몸이 곤두서있던 버마비단뱀은 노리고 들어온 동족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전신을 죄어온 몸통 공격에 버티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파리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때 결국 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며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의 가죽은 축 늘어지며 윤기를 잃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그렇게 여유롭게 동족의 입에 물려있던 쥐의 꼬리끝을 물었고, 종내에는 동족의 기다란 몸뚱아리를 모두 위장속으로 빨아들였습니다. 잔혹하고 비정한 방식으로 두 마리의 비단뱀은 그렇게 한마리로 합체됐습니다.

유튜브 <Ojatro>에 올라온 동영상 장면. 쥐를 삼키고 있던 버마비단뱀을 동족 버마비단뱀이 급습해 죽인 뒤 동족과 동족이 먹던 쥐를 모두 일거양득하는 장면이다. /Ojatro Youtube

이 거대뱀 족속에게 방울뱀이나 코브라 같은 독까지 주어졌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합니다. 조물주에게는 정말이지 최소한의 균형감각이 있는 듯 해요. 보아과에는 다 자라도 몸길이가 1m에 ‘불과’한 모래보아부터 몸길이 9m에 이르는 아나콘다까지 수십종이 포진돼있습니다. 매혹적인 녹색의 몸을 하고 있는 에머랄드 보아나 녹색 비단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동색과 노란색, 금색이 어우러진 패턴의 비늘을 두르고 있죠.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이 무리들에게는 여느 뱀들이 갖고 있는 독이 없는 대신 매우 독특한 게 있습니다. 바로 뒷발의 흔적이죠. 몸의 뒤쪽 아랫배부분에 갈고리 같은 발톱이 있어요. 뼈에 갈고리처럼 달려있는 이 발톱은 파충류가 도마뱀에서 뱀의 순서로 진화가 이뤄졌을 개연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마찬가지로 도마뱀 중에서 몸통은 온전히 도마뱀인데, 주위환경에 맞춰 사지가 퇴화한 무족도마뱀이 있거든요.

인도에서 영양으로 추정되는 초식동물을 통째로 사냥한 직후 움직이지 못하는 비단뱀의 모습이 포착된 모습. 생 떽쥐베리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모습과 빼닮았다. /Daily Mail

뱀의 포식 속도와 덩치는 반비례합니다. 어지간한 소형뱀이 개구리의 몸부림과 절규에도 발끝부터 울음주머니를 부풀리는 입까지 산채로 먹어치우는 것과 달리, 이들은 우선 온몸으로 휘감아서 숨통을 끊어놓아 반항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힘과 기교가 배합된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영양분을 비축하게 됩니다. 호주의 동물구호단체 GG(GG Wildlife Rescue Inc & WA Wildlife Displays)의 페이스북에 지난 2019년 호주올리브비단뱀이 크로커다일을 죄어죽인뒤 삼키는 장면을 포착해 올렸습니다. 무시무시한 치악력과 이빨,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악어도 덩치에서 압도하지 못하는 한, 그저 한입거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악어의 단단한 몸집과 딱딱한 비늘도 뱀의 위장에서 내뿜는 초강력 소화효소에 의해 봄날의 눈이 녹듯 흐물흐물 사라졌을 것입니다.

호주 올리브비단뱀이 악어를 사냥해 죄어죽인뒤 통째로 삼키는 모습이 지난 2019년 6월 생생하게 포착됐다. 호주 수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악어는 이렇게 비단뱀의 한입거리로 사라졌다. /GG Wildlife Rescue Inc & WA Wildlife DisplaysFacebook

지난 2015년 미국 앨라배마대 연구팀이 악어를 잡아먹은 버마비단뱀의 신체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포식한 직후 이 뱀의 각종 신진대사수치는 평소 때보다 무려 40배나 치솟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만큼 먹는데 어마어마하게 용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과도한 신체수치변화는 포식할 때가 자칫 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비단뱀 무리들은 뱀중에서도 유독, ‘식사사고’를 내는 사례가 많이 보고돼있습니다. 악어나 멧돼지 등 덩치 큰 짐승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가 몸이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마비되거나 혹은 내장과 뱃가죽이 파열되는 사례가 종종 보고돼왔거든요. 식욕은 어떤 생물에게도 제어가 힘든 본능인 것 같습니다. 그 본능욕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영원한 추격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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