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시끌벅적 하동여행[8인8색 여행특집]

2022. 6. 2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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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섬진강 접한 지리산 자락..목장 체험 추천
6월 5일(일) 오전 5시. 알람 소리에 깬 아이들이 뒤척거리지도 않고 벌떡 일어난다. 여러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은 없었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1차 시험발사를 보러 갔을 때보다 무려 2시간이나 빠르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약한 경남 하동군 옥종면 해뜰마을 체험에 늦지 않고 닿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주말에는 오전 10시와 오후 1시 30분 두차례 체험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날 오후 시간대는 이미 매진이었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 있는 해뜰목장에서 양과 염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다. / 주영재 기자


하동군은 전라도의 남원·구례, 경상도의 함양·산청과 함께 지리산 한자락을 차지한다. 남으로는 푸른 다도해와 접한다. 재첩으로 유명한 섬진강은 구례와 공유한다. 산과 강, 바다가 어울린 하동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여행객의 발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하동군은 약 10년 전부터 ‘한국의 알프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였다.

코로나19로 3년째 취소되긴 했지만 해마다 3월 말~4월 초 열리는 ‘하동 화개장터 벚꽃축제’를 비롯해 5월 초 열리는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7~8월 하동군 송림공원과 섬진강 일대에서 열리는 ‘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와 같은 지역 축제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환인과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이 돌탑과 호수로 유명하고, 편백 20만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룬 옥종 편백자연휴양림은 힐링 명소로 꼽힌다. 길이 3.18㎞로, 아시아 최장이라고 하는 금오산의 짚와이어는 높이 849m의 산 정상에서 바다를 향해 최고 시속 120㎞로 하강한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지만 쉽게 지치고, 격한 레포츠를 즐기기 어려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목장 체험을 권한다.

해뜰목장에서 젖소에게 당근을 주고 있다. / 주영재 기자


해뜰목장, 여기가 한국의 알프스

해뜰목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조랑말이 반긴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양과 염소가 지내는 방목형 축사가 나온다. 축사 너머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앞으로는 구릉지대라 시야가 확 트였다. 목장 뒤편에 있는 높이 614m의 옥산을 비안개가 휘감고 있다. 이날 1㎜ 정도 올 거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아이들이 비가 와서 ‘해안뜰목장’이라고 말하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비가 와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체험프로그램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시작한다. 이날은 날이 개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순서를 바꿔 아이스크림과 치즈, 피자 만들기 체험을 먼저 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모두 8팀, 약 30명이 체험교육장에 모였다. 목장 관계자가 체험에 앞서 반추동물을 설명했다. 한번 삼킨 먹이를 게워 내 다시 씹는 ‘되새김질’이 특징이라면서 나중에 먹이를 줄 때 잘 관찰해보라고 했다. “양, 염소, 낙타, 사슴 같은 친구들은 소처럼 풀만 먹고, 발굽이 2개예요. 그래서 되새김질을 합니다. 염소랑 말이 주위에 먹을 것도 없는데 껌을 씹는 것처럼 우물우물 씹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그럼 ‘아, 저 친구는 되새김질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스크림은 만들면서 먹는 것? 주걱으로 재빨리 긁어내지 않으면, 단단하게 얼어붙어 힘들어진다. / 주영재 기자


아이스크림 체험 도구를 받았다. 큰 그릇 안에 굵은 소금이 담긴 얼음물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그릇이 얹혀 있다. 초콜릿 분말과 거품기, 주걱도 받았다. 우유와 초콜릿 분말을 작은 그릇에 넣고 거품기로 저은 후 바깥의 냉기로 얼어붙는 가장자리부터 주걱으로 긁어준다. 목장 관계자가 설명한다. “제일 중요한 건 주걱으로 긁어주는 거예요. 안 긁으면 밖의 냉기가 안으로 전달이 잘 안 돼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소금이 왜 들어가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어는 점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얼음과 소금을 3 대 1의 비율로 넣는데 소금물의 어는점은 물의 어는점보다 낮아 얼음이 녹게 된다. “얼음이 녹으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아 더 차갑게 되죠. 눈이 내렸을 때 염화칼슘을 뿌려 녹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초콜릿 가루 대신 과일을 갈아 넣어도 되고, 젤리를 토핑처럼 올려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한번 알고 나니,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건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트링 치즈가 결대로 찢어지고 있다. 스트링 치즈를 피자 도우 둘레에 넣고, 토핑 위에도 올려 놓는다. / 주영재 기자


다음 순서는 치즈와 피자 만들기다. 강사가 치즈를 만드는 전체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전 세계 치즈의 종류가 1500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치즈가 저온살균한 우유를 씁니다. 63도에서 30분 이상 저온살균한 후 온도가 낮아지면 유산균을 넣고 배양합니다. 그후 우유 응고효소(렌넷)를 넣어주면 우유가 굳어집니다. 물인 유청과 덩어리인 커드(curd)로 분리되는데 유청을 빼고 덩어리인 커드를 모아놓은 게 여러분 앞에 있는 거예요.” 팀별로 두부 반모를 조금 넘는 크기의 커드를 받았다. 이 커드를 손톱 크기로 뜯어내 80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40초 정도 넣었다 빼 뭉쳐주면 모차렐라 치즈가 된다.

커드를 꺼내 반복해 접어주자 거칠었던 표면이 매끄럽게 변했다. 모차렐라 치즈를 늘리면 스트링 치즈가 된다. 가래떡처럼 길게 늘어난 스트링 치즈를 끊어내 접시에 올려놓자 본격적인 시식 타임이 시작됐다. 스트링 치즈는 마치 닭가슴살처럼 가늘게 찢어졌다. 맛과 식감도 그와 비슷했다. 나눠준 피자 반죽을 팬에 부치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고루 폈다. 햄과 베이컨, 옥수수 등 토핑을 올린 후 치즈를 뿌렸다. 반죽 가장자리에도 치즈를 둘러 감쌌다. 아이들이 조몰락거리며 완성한 피자에 강사가 친절히 피드백을 준다. “끝부분이 굉장히 두꺼운데 그대로 하면 맛이 없으니깐 살살 늘려주세요. 그래야 피자 크기도 작아지지 않고 끝도 맛있습니다.”

양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주영재 기자


동물복지 강조한 목장주

동물 먹이주기 체험을 시작했다. 젖소에게 건초와 강낭콩 정도 크기의 사료, 당근을 먹일 수 있는 시간이다. “풀을 줄 때는 한 번에 많이 잡아서 줘야 소들이 관심을 가져요. 사료는 손으로 조금 잡은 다음 입에 가져다주는데 이렇게 주는 게 무서운 분들은 소들이 먹기 편하게 가까이에 살짝 얹어주시면 됩니다.” 설명을 듣던 둘째아이가 소가 낯설었는지 “난 바닥에 떨어뜨릴 거야”라고 속삭인다.

당근을 내밀자 소가 날름 받아먹는다. 그 과정에서 침이 묻자 아이가 기겁을 한다. 그게 싫다며 사료를 소의 머리 앞에 던져놓기도 했다. “무서워도 한 번에 던지면 안 되고, 조금씩 줘야 해”라고 말하며 달랬지만 어른인 기자도 막상 사료를 손에 들고 주려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건초를 입 앞에 조심스레 가만히 갖다 댔다. 소가 긴 혀를 내밀어 풀을 감아쥐듯 입안에 넣는다. 소들은 이미 밑에 많이 깔려 있는 건초보다 별미라고 할 수 있는 사료를 더 좋아하는 듯했다. 사료를 주려 하면 고개를 내밀고 힘을 쓰다가 그만 우리에 부딪혀 철커덩댄다. 한쪽에만 주니 옆에 있던 소가 ‘푸릉 푸릉’ 입김을 낸다. 송아지에게는 우유를 먹일 수도 있다. 배가 고팠는지 아이가 딸려갈 정도로 우유통을 힘차게 빨아댔다.

염소랑 양에게 다가갔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던 애들이 당근을 보자 울타리 쪽으로 뛰어와 입을 내민다. 다 큰 염소에 치여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새끼염소들에게 먹이를 줬다. 큰 아이가 덩치 큰 염소를 보더니 “얘가 좀 보니까 욕심쟁이야. 남의 걸 빼앗아 먹고”라고 말한다. 갈색 꼬마 염소가 많이 안 먹은 것 같다고 하니 자기가 5개나 줬다며 안심시킨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체험이 끝나자 해뜰목장의 풍광이 더 여유롭게 다가왔다. 드넓은 잔디밭을 옥산이 병풍처럼 감싸안는다. 목장의 자랑거리를 묻자 해뜰목장의 안지혜 홍보팀장은 “잔디밭 너머의 능선 뷰가 한국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해뜰목장은 부모와 3남매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경영체다. 동물복지를 남달리 강조한 목장주의 철학이 돋보인다. 안 팀장은 “부모님이 원래 함안에서 낙농업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체험 목장을 하려고 하동에 정착했다”면서 “14년 전 지은 목장이지만 동물복지를 생각하며 지어 현대 목장 건축물과 비교해도 시설의 부족함이 없고, 목장 특유의 냄새도 적다”고 설명했다. 아내도 다른 농장과 달리 깨끗하고 냄새가 안 난다고 수긍했다.


해뜰목장에 비가 내릴 때도 나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 주영재 기자


치유목장에서 케어팜으로

해뜰목장은 주말에는 체험 예약만 받는다. 평일에 단체 체험과 농고생·농대생,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농촌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려면 전문적인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가족 전원이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들은 가족단위 체험과 식생활 교육, 농업 전문 교육, 문화예술 교육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청정축산 환경대상 환경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치유농장에서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돌봄과 농업’이 결합한 케어팜으로의 발전도 꾀하고 있다. 안 팀장은 “현재 동물교감치유 목장으로 동물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면서 “앞으로 치유농업을 넘어 한국형 케어팜을 꿈꾸며 농업의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목장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하동 여행을 이대로 마무리하려니 아쉬웠지만, 비가 오는 날 야외 활동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나선 터라 체력도 생각해야 했다. 원래 계획했던 한정식집 찻잎마술까지 직선거리는 가까웠지만, 지리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오후 체험을 예약할 수 있었다면 섬진강 쪽에서 점심을 먹은 후 목장으로 갔으리라. 지나고 보니 그게 딱 좋은 동선이었다. 섬진강 유람을 놓쳐 아쉽지만, 하동을 다시 찾을 이유가 생겼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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